“아들과 조류 영상 사이버 박물관 만들고파”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한때 다양한 동물들이 TV 프로그램에 나오면 항상 조류학 박사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가 등장했던 적이 있다. 그는 새에 관한 독보적인 존재이다. 윤 박사의 방 4개 벽면은 평생 전국을 누비며 수집하고 연구한 자료들이 즐비하다. 지난 2006년 12월 뇌경색으로 쓰러졌지만 건강을 회복한 요즘, 그는 글을 쓰고 탐조(探照) 활동에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새’ 하면 떠오르는 고유명사, 윤 박사의 집을 찾았다.


- 우리나라서 63% 참새 멸종…철새도 1980년 이후 안 보여
- “‘태극기 집회’ 참여는 오해…사람들의 관심에 떠밀린 탓”



“나는 이 세상 8600종 새가 다 좋다”

지난달 26일 방문한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한 주공아파트의 윤 박사 자택은 새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그의 방엔 50년 넘게 전국을 누비며 수집한 새 소리 테이프 300여개와 새 이름이 쓰여 있는 동영상 테이프 1500여개가 있다.

책장에는 새 모습을 생생히 담기 위한 집음기(集音機), DSLR 카메라 수십 대, 관찰용 쌍안경과 망원경 등의 장비들이 빼곡하다.

윤 박사의 인생에 있어서 ‘새’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다.

경남 거제도 장승포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새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다.

윤 박사는 “하루는 밭에 나갔는데 머리 깃털이 정말 예쁜 새를 봤다. ‘후투티’였다. 그때부터 새를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고 새 이름들을 외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의 명함에는 윤 박사의 이름과 나란히 후투티의 모습이 찍혀 있다. 후투티는 중부 이북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흔하지 않은 여름새지만 지금은 더욱 보기 힘들다.

그렇게 새에 빠진 소년은 새들을 쫓아다니며 성장했다.
 

“음침한 곳 몰리는 새들 탓”
간첩으로 오해받기 일쑤

 

성인이 된 윤 박사는 전국을 누비며 탐조활동을 시작했다. 새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철새들에게 일명 ‘가락지’를 끼워 주기도 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그가 탐조활동을 갈 때마다 간첩으로 오해받아 조사받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며칠 동안 산속에 있다 보면 세수는 그림의 떡이다. 여기에 새를 관찰하기 위한 망원렌즈와 쌍안경 등으로 중무장했다.

그런 모습으로 사람 사는 곳에 내려오니 간첩 취급당한 건 당연하다.

당시 강화도에 위치해 있는 6~7개의 검문소를 통과할 때는 좌불안석이었다고 윤 박사는 전했다. 그는 “강화도에 철새가 많이 와 자주 보러갔다. 하지만 검문소마다 차에서 내려야 했다. 나를 보고 무조건 간첩이란다. 군인이 내 등 뒤에 총을 가져다 대기도 했다”며 “얼굴까지 시커멓게 그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휴전선이나 음침한 곳으로 몰리는 새 탓도 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2006년 새에 대한 열정을 잠시 내려놓아야 했다.

강원도 철원에서 새를 관찰하던 중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이다. 윤 박사는 “2006년 12월 16일 강원도 철원에서 두루미를 관찰하기 위해 이틀 동안 차에서 지냈다. 그런데 속이 메스꺼운 거다. 소화제를 먹었는데 효과가 없었다”며 “너무 힘들어서 저녁 때 근처 의원에 갔더니 얼른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입원을 하고 며칠 만에 상태가 나빠졌다”고 덤덤히 설명했다.

당시 1주일 동안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의 귀에 “뇌경색 환자 중 이 정도 상태에서는 90%가 가망 없다.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말이 들렸다고 한다.

윤 박사는 “그때 말을 못 했지만 정신은 또렷했다. 의사의 말을 듣자 영어 원서 ‘Bird’ 149페이지에 숨겨뒀던 비자금 생각이 났다. 내가 죽으면 아내가 그걸 찾지 못할까봐 걱정됐다”며 “목련 피는 4월에 퇴원했는데 바로 은행으로 가서 돈을 찾았다”고 웃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움직임이 둔한 오른손과 오른 다리가 후유증의 심각성을 짐작하게 할 뿐 전국 곳곳에서 탐조활동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다.

그는 환경이 나빠질수록 조바심이 커진다고 한다.

제초제 등으로 인해 30년 동안 멸종된 새는 30% 이상이며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철새들은 1980년 이후 무분별한 개발로 눈에 띄지 않는다.

참새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63% 이상 멸종됐다고 한다. 윤 박사는 “두루미가 우리나라에 올 때 새끼를 꼭 데려온다. 알을 보통 4개 낳는다”며 “그런데 최근 들어오는 두루미 새끼는 1~2마리뿐이다. 점점 개채수가 없어진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탐조 종류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철새들의 가락지 부착에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철새는 국경이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일부 개인이 가락지 실태의 제반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김모씨 인천, 코리아만이 기재됐을 뿐이다. 통합적인 정보공유를 해야 한다”며 “한반도로 날아든 각종 철새의 가락지 부위가 허약한 다리에 주로 착용되지만 목 등 적정 부위에 통일화된 가락지 부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연천과 파주 등 경기 북서부 등지에서 포착된 철새들의 부착된 가락지는 유형과 색깔은 물론 어느 국가에서 서식했는지 등 구별이 어렵다는 말이다.
 

숲이 왕성해지는 5월
뻐꾸기 노래 들을 수 있어

 

윤 박사는 지난해 2월 인터넷 포털 검색어 순위를 장악했던 바 있다.

한동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서울 덕수궁 대한문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태극기 집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박사는 고개를 저으며 오해라고 전했다. 그는 “새 사진 현상을 맡긴 후 전동 휠체어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사람들이 몰려있어 궁금해서 가봤다. 사람들이 ‘새 박사’라며 반가워하더라”며 “그렇게 사람들에 떠밀려 집회 한 가운데로 가게 됐다. 한 아주머니는 내게 ‘군대여 일어나라’라고 적혀있는 팻말을 목에 걸어주기도 했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냐. 그것을 누군가 핸드폰으로 찍어서 소셜네트워크에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 박사는 또 다른 새 박사도 길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현장을 다니며 새를 보고 자라온 아들 윤종민 씨도 한국교원대에서 황새생태연구를 하고 있다.

그가 속한 연구진은 지난 2016년 8월 세계 최초로 포식자가 새 둥지에 미치는 영향을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세계적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의 자매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바 있다.

기자는 새에 관한 모든 것을 이룬 그의 남은 소원은 무엇인지 질문했다.

“아들과 함께 조류 영상 사이버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이버 박물관은 사이트에서 새 사진을 클릭하면 윤 박사가 수집한 울음소리, 영상, 서식지 정보 등 해당 새에 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형태다.

그는 “말과 글, 사진보다 영상이 더 생생하다. 사라져가는 종들에 관한 자료와 영상 및 울음소리를 담을 계획이다. 짝짓기, 새끼 낳는 장면 등을 찍은 영상이 수두룩하다”며 “국제적으로 조류 영상 박물관이 없다. 영상은 전 세계 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일반인들이 새를 보러가기 좋은 장소를 윤 박사에게 물어보자 “겨울에는 파주에 오리와 기러기 등이 수천마리 온다. 최근엔 효천저수지에 뻐꾸기가 왔다. 도봉산, 광릉, 퇴계원 등도 좋다”며 “나는 엇 그제 왼발로 개조도 안 된 차의 페달을 밟으며,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경기도 시흥 광곡지에 다녀왔다. 몇 십년동안 다녔어도 23마리의 저어새가 모여 있는 것을 본 건 처음이었다”라면서 100m 남짓에서 찍은 저어새 사진 수십 장을 보여줬다.

새에 살고 새에 죽을 뻔했던 윤무부 박사다운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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