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경찰 파쇼’ 문건에 이어, 검찰의 수사권 조정에 관한 현직 경찰의 논문이 나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요서울>이 단독 입수한 이 경찰 보고서에는 현행 검사 지배적 수사구조에 대한 문제점이 조목조목 언급돼 있다. 문제의 논문 제목은 ‘경찰수사권 조정에 관한 당위성’이며, 논문 작성자는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 광역수사대 소속 이상대 경위. 이 경위는 논문에서 “검사 위주의 수사구조가 권한남용, 부패, 권위주의를 양산하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는 현재 “개인적인 논문 차원일 뿐”이라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서는 이 문건이 ‘검·경 대립’의 또다른 불씨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바라보고 있다. 현재까지 이 논문이 어떤 목적으로 작성됐는지와 어느 선까지 배포됐는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논문에 수록된 내용은 일선 검찰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는 게 수사기관 안팎의 한결같은 견해다.

A4 20장 분량의 이 논문에서 이 경위는“검사 지배적 수사구조는 수사상 ‘독점의 폐해’를 양산할 수 있다”면서 “이러한 독점 체제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아 국민의 보호를 저해하고, 권한남용, 부패, 권위주의, 이기주의, 비효율의 폐해를 낳게 된다”고 지적했다. 검사가 공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하고 있는 현행 구조도 문제로 지적됐다. 그는 “공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의 검사가 수사권까지 독점하는 것은 권력 남용의 우려가 있다”면서 “‘검찰이 모든 것을 주재해야만 올바로 된다’는 생각부터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특히 소수의 검찰 조직으로는 날로 첨단화되는 범죄에 대응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현대 범죄는 날로 다양화, 지능화, 조직화되고 있다”면서 “그러나 소수의 검찰조직으로는 초동수사, 긴급배치 등 신속수사의 착수와 지휘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검찰의 수사지휘 실태를 보면 사건 발생 이후 수사경찰이 작성한 서류를 검토하는데 그치고 있다. 그나마 폭주하는 소추 업무 때문에 제대로 내용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일선 경찰서장이나 수사(형사)과장에게 수사 지휘권을 부여해야만 신속하고 효율적인 수사지휘가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경위는 이 보고서가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위는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수사권 조정이 수면으로 부각되면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놓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검찰은 경찰을 비하하는 이른바 ‘파쇼 경찰’ 문건을 배포해 경찰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국회 법사위 소속 의원들에게 돌려진 이 문건에서 검찰은 “경찰 조직의 특성상 비수사 분야 간부가 많아 내실있는 수사지휘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검찰은 특히 “경찰은 일제시대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는 식민수탈의 도구였다”면서 “해방 뒤에도 식민경찰 종사자들을 다시 채용했지만, 일제 독립투사 변호인들로 충원된 검찰이 경찰 파쇼를 견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이 논문이 검찰의 ‘경찰 파쇼’ 문건에 대한 대응차원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논문이 검경대립의 또다른 불씨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적게는 4~5통, 많게는 10여통의 로비 전화가 검찰이나 경찰로부터 걸려온다. 이들은 대부분 ‘사무실을 방문하고 싶다’ ‘의원님의 집을 찾아봬도 되겠냐’는 식의 로비성 전화”라면서 “이같은 상황에서 이 논문은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청와대는 최근 이례적으로 검찰과 경찰 사이에 끼여들었다. 검찰과 경찰의 싸움이 이전투구식으로 변질되면서 급기야는 중재에 나선 것.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21일 김우식 비서실장 주재 일일현안점검회의 브리핑에서 “최근 검찰과 경찰이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대립과 갈등을 보이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면서 “검·경은 부적절한 행동을 자제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수사권이 합리적으로 조정되도록 노력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이 경위는 “보고서 작성일이 검찰 비하 문건이 배포되기 전인 지난달 13일이었다”면서 “검찰에 대한 보복 차원은 말도 안된다”고 해명했다.

#검-경 국회 로비전도 ‘점입가경’

국회가 경찰의 수사권 독립 법안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과 경찰이 정치권을 향한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고 있다. 현재까지 분위기를 보면 경찰이 조금 우세한 듯하다.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은 최근 검사 외에 사법경찰관도 수사 주체로 명문화한 법안을 발의했다. 경찰간부 출신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이인기 한나라당 의원도 최근 고령·성주·칠곡경찰서 직원들을 상대로 특강을 가졌고,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도 최근 대구경찰청에서 ‘판사가 바라본 경찰’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는 등 경찰측을 간접 지원했다. 이에 고무된 경찰은 의원들을 상대로 잇따라 지역 경찰서 특강을 요청하고 있다.

또 사법경찰관도 수사 주체로 명문화한 법안을 최근 발의한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의 법안에 서명해 달라는 독촉전화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검찰측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특히 검찰의 경우 학맥과 인맥을 동원해 검찰 입장을 설명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설명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최근 한 검사장으로부터 로비 전화를 받았다. 한 여당 의원은 검찰이 수사권을 가져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한 페이퍼를 두차례 법무부로부터 받기도 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적게는 4~5통, 많게는 10여통의 로비 전화가 검찰이나 경찰로부터 걸려온다”면서 “이들 중 상당수는 ‘사무실을 방문하고 싶다’ ‘의원님의 집을 찾아봬도 되겠냐’는 식의 로비성 전화라서 골치가 아프다”고 귀띔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