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태광그룹 회장이 최근 ‘A4 용지 두장’의 내부문건이 노조에 유출되면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흥국생명 노조가 공개한 이 두장의 종이에는 흥국생명의 전직원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단계별 전략이 자세하게 쓰여있다. 이미 흥국생명은 올들어 두 번의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1차 해고를, 지난 3월 2차 정리해고 및 인원감축을 실시한 것. 이런 이유 때문에 사내에는 정리해고에 대한 노조측과 사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다.

노조 홈페이지에 괴문서 공개

이런 가운데 흥국생명 노조는 지난달 5일 홈페이지 신문고란에 ‘단계별 주요 Activity(행동) 및 준비사항 일정’이란 제목의 문서 2장을 전격 공개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전 직원을 일괄 정리해고한 후 연봉제로 전환한다’는 내용.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한창 이슈인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충격으로 다가온다. 특히 업계에서는 이 문서가 사실상 ‘신노비문서’라고 빗대어 말하고 있는 상황. 흥국생명 노조측은 이달 중 대대적인 집회를 계획하고 있어 노사 양측의 행보가 주목된다. 노조가 공개한 문서의 내용은 무척 자세하다. 이 문서에는 지난 6월15일까지 모든 계획을 담당할 부서는 물론, 부서별 실천 내용, 시간 등 계약직 전환과 관련한 모든 내용이 상세하게 쓰여있다. 이 중에서 임금체계 개편 및 퇴직 후 재입사와 관련된 항목은 이미 지난달 3일까지 완료된 것으로 나와 있다.

또한 연봉제 전환 과정에서 노조측이 제기할만한 ‘부당노동행위’ 여부에 대해서도 사전에 변호사의 검토의견을 달아 피해 가는가 하면, 연봉제 적용 시점을 앞두고 대내외적인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유석기 사장의 담화문 발표 시기까지 정확하게 기록돼 있다. 특히 이 문건은 계약직 전환 과정에서 발생될 만한 여지가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상당한 고민을 한 흔적이 있다는 게 노조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문건대로 흥국생명이 ‘계약직 전환’ 사업을 추진할 경우 이번 하반기부터 전 직원에 대한 전방위 정리해고가 진행되며, 해고자들은 재입사 과정을 거쳐 연봉제로 전환된다. 연봉제는 말 그대로 개별 노동자와 회사측이 1년 단위로 연봉계약을 하는 만큼 직원들은 직장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질 것이란 게 노조의 설명이다. 그러나 여전히 괴문서의 진위여부가 가려지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상황이다.

“회사측의 만행” VS “사실무근”

흥국생명 노동조합은 ‘괴문서’와 관련 “문서의 구성, 자체가 상당히 구체적이고, 계획적”이라며 허위 문서가 아닐 것이라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괴문서 진위에 대해 “우리는 문서의 진위에 대해 99% 확신하고 있다”며 “이미 사내에서 하반기를 앞두고 임금체계를 변동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했는데, 이번 문건 폭로로 사측의 연봉제 전환과 정리해고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임시직, 계약직 등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과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 직원을 계약직화해 사측의 입맛대로 인사를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은 ‘만행’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난했다. 괴문서의 진위에 확신을 갖고 있는 노조측은 이미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에 들어간 상태다. 노조 관계자는 “이미 노조 조직을 비상대책위원회 형태로 개편했다”면서 “이달 중 부당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대대적인 투쟁을 준비하고 있으며, 문건을 바탕으로 사회 공론화작업도 추진 중에 있다”고 밝혔다.

반면 사측은 이번 괴문서와 관련 노조측의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반응이다. 괴문서를 작성한 출처로 의심받고 있는 사측은 지난달 중순 “회사는 이번 ‘괴문서 파문’과 관련해 어떤 관련도 없다”는 공식입장을 밝힌 상태다. 하지만 사측 역시 괴문서의 내용이 너무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흥국생명 관계자는 “괴문서가 사측 내부 문건이라는 노조의 주장을 확인한 결과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괴문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연봉제 전환 계획’에 대해 “사내 어떤 회의에서도 전체 직원의 연봉제 도입과 계약직화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흥국생명은 괴문서를 작성한 일이 없으며, 괴문서의 핵심인 연봉제와 계약직화에 대한 계획이 현재로선 전혀 없다는 것이다.

연봉제 대신 성과급으로

흥국생명은 그러나 새로운 임금체계 개편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호봉제’와 성과에 따라 임금지급에 차등을 두는 ‘차등성과급제’로 이원화돼 있는 임금제도를 차등성과급제로 일원화한다는 계획이 사측의 새로운 임금 체계 개편안의 전모다.이에 대해 흥국생명 관계자는 “임금체계가 이원화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며 “부작용 해소 등을 위해 노조와 협의과정을 거쳐 차등성과급제로 임금체계를 일원화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그러나 회사측이 새롭게 도입할 예정인 ‘차등성과급제’ 역시 노조측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노조측이 “성과급제 역시 연봉제 내에서 이뤄지는 ‘인센티브제’를 확대한 개념일 뿐”이라고 보고 있어서다. 노동계와 금융계 전반의 시선이 흥국생명으로 몰린 가운데, ‘괴문서 파문’의 핵심은 문서의 진위로 옮겨가고 있다. 노조 관계자들은 그러나 “문서의 진위에 상관없이 여름투쟁은 진행될 것이며, 문서의 진위가 사측으로 밝혀질 경우 이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혀 행보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