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보고 들어가셨습니다.” 요즘 LG그룹의 통신계열사 A사 사장실 비서는 부쩍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올해 들어 사장이 윗선에 경영 보고를 하느라 자리를 비우는 횟수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윗선은 물론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이다. 구본무 회장이 요즘 달라졌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 그동안 LG그룹의 주력 계열사이면서도, ‘미운오리새끼’ 신세를 면치 못했던 통신계열사를 직접 챙기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 현재 LG그룹의 통신계열사는 LG텔레콤, 데이콤, 파워콤 등 3개사. LG텔레콤은 LG전자 출신의 남용 사장, 데이콤은 정통부 차관 출신인 정홍식 사장, 파워콤은 박종응 사장이 이끌고 있다.

이들 세 사람은 LG그룹의 통신 계열사의 수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여태까지 사업적인 제휴를 맺은 적은 없었다. 가끔 외부에서 3개사의 ‘시너지 효과’를 운운할 때에도 이들은 묵묵부답이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정기적인 실적 보고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최근 이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지난 15일. 이 날 정홍식 데이콤 사장은 구본무 회장에게 뜻밖의 주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것. 데이콤의 고위 관계자는 “올해들어 정 사장이 자주 구 회장과 독대를 했다”며 “5월과 11월에 각각 전략보고와 실적보고를 하고, 이외에도 사안이 있을 때마다 자주 보고하라는 주문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는 구본무 회장이 향후에 LG그룹의 통신 계열사를 일일이 챙기겠다는 의지로 보는 분위기다. 다른 그룹의 한 관계자는 “LG그룹이 GS, LS와 분리하는 과정에서 통신 계열사가 주력사로 떠오르다보니 관심이 집중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LG그룹 내부에서는 구 회장의 지대한 관심이 일종의 통첩 수단이 되지 않을까하는 분석도 하고 있다. 데이콤의 한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통신 사업을 계속 끌고 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인지 결론을 내리기 위한 전초전이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파워콤의 한 관계자는 “요즘 통신사업에 힘이 실리는 것은 사실”이라며 “안도와 우려가 교차하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사실 이들 LG그룹 통신 계열사들이 이렇게 느끼는 데는 이들이 오래전부터 느껴온 ‘핸디캡’이 한 몫 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LG그룹은 통신사업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좋은 구조로 돼있다. LG텔레콤은 이동통신사업권을, 또 LG전자는 휴대폰을 생산하는 제조업체.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휴대폰을 만드는 제조회사와 통신사업자인 텔레콤을 모두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에 밀려 고충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지난해 12월31일을 기준으로 통신시장의 시장 점유율은 SK텔레콤이 51.2%, KTF 32.5%에 이어 LG텔레콤이 16.3% 정도로 격차가 크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LG 통신 계열사의 관계자들은 스스로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회사 순익도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31일을 기준으로 LG텔레콤의 매출은 3조2,094억원. 이는 지난 2003년 실적보다 무려 1조원이나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LG텔레콤의 매출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해 매출 원가가 지난 2003년 1조9,380억원에서 지난해 2조9,673억으로 크게 늘었고, 결국 순익은 줄어들고 말았다. 지난 2003년 이 회사의 순익은 787억원이었으나, 지난해에는 226억원으로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진 것. 더군다나 이 수익조차 회사의 영업이익과는 상관없이 배당금, 이자수익이 크게 늘고, 임대료, 기부금을 절감해서 얻은 이득이어서 회사 관계자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는 것. 또다른 통신사인 데이콤은 그나마 낫다. 데이콤의 지난해 영업수익은 1조684억원으로 지난 2003년(1조20억원)과 비슷한 상황이나, 순익은 늘어났다. ep이콤은 지난해 338억원의 순익을 냈다.

LG의 ‘미운오리새끼’ 통신사 중에서 가장 회생의 기미를 보이는 것은 파워콤. 파워콤은 이달에 정식으로 초고속 인터넷사업 인가를 받아 영업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사실상 LG그룹의 통신사들의 ‘돌파구 모색’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본무 회장이 ‘상시 보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지자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그룹 차원에서의 대책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보는 것. 하지만 이에 대해 LG그룹은 이같은 시선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LG그룹 관계자는 “지난 15일 통신회사 보고에서 회장이 특별히 주문한 것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잘라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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