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왕위계승 실태를 보면 반드시 혈통 위주로만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비혈통 출신이 경영을 승계하는 사례는 주로 사위그룹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사위도 자식’이라고 했으니 재벌가에서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위가 경영권을 잇는 경우는 2세들 중 남자가 없거나 설사 남자가 있더라도 경영에 뜻이 없어 경영참여를 거부하는 상황일 경우가 많다. 사위가 재벌의 총수가 되면 주변에서는 ‘처가덕’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경영권을 잇는 사위들은 한결같이 대단한 자격을 갖춘 경우가 많다. 하긴 그럴만하니 사위로 간택되었을 것이다.그러나 사위가 경영에 참여하거나 경영권을 잇는 경우에도 대부분 어느 시점이 되면 물러나는 사례가 많았다.

그 이유는 혈통면에서 ‘사위’가 갖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위가 경영권을 이은 대표적인 사례는 동양그룹이다. 동양그룹의 창업주 이양구 회장은 혜경, 화경씨 등 딸만 둘을 두었다. 첫째 사위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고, 둘째 사위는 담철곤 동양제과 회장이다. 현 회장은 검사출신의 엘리트였다. 또 담 회장은 화교출신이다. 두 사람 모두 이양구 전 회장이 작고한 뒤 그룹을 동양시멘트와 동양제과를 축으로 계열분리해 독자경영을 하고 있다. 재벌가 사위의 경영참여 자취를 보면 국제그룹이 대표적이었다. 5공 시절 괘씸죄에 걸려 몰락한 국제그룹은 한때 재계랭킹 10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막강했다. 이 그룹의 총수를 지낸 양정모 회장은 슬하에 딸만 6명을 두었다. 양 회장은 6명의 사위를 모두 경영에 참여시켜 이른바 ‘사위공화국’이라는 말도 오갔다. 양 회장의 사위로는 국제상사 부회장을 지낸 한윤구씨, 국제상선 사장을 지낸 이대황씨, 국제상사 부사장을 지낸 김정형씨, 조광무역 사장을 지낸 김주영씨, 국제종건 사장을 지낸 김덕영씨, 국제상사 싱가포르지사장을 지낸 정근씨 등이다.

당초 양 회장은 이들 사위를 모두 계열사의 부사장(사장은 본인이 직접 맡음)을 맡긴 뒤 상호경쟁구도를 만들어 보이지 않는 선의의 경쟁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한때 섬유재벌로 급부상했던 한일그룹에도 3명의 사위가 경영을 주도한 적이 있다. 김한수 창업주는 국회의원을 지낸 맏사위 이재우씨를 부국증권 사장을 맡긴 적이 있었고, 구영훈(둘째 사위), 이상빈(셋째 사위)씨를 이 회사의 중역으로 기용했다. 코오롱그룹도 이원만 창업주의 맏사위인 임승영씨를 코오롱건설 사장에 기용한 적이 있었고, 둘째사위 박성기씨는 바이런이라는 회사의 사장을 맡기도 했다. IMF의 최대 희생자로 꼽히는 쌍용그룹도 사위들이 기세등등했던 재벌기업중 하나다. 쌍용그룹에 몸담았던 오너일가의 사위로는 고 김성곤 창업주의 맏사위이자 쌍용제지 사장을 지낸 조해형씨, 둘째 사위 이승원(전 쌍용정유 사장)씨가 있다. 조·이씨는 미국 MIT대와 노스캐롤라이나대를 나온 수재로 한때 재계의 황태자로 각광받았다.

금호그룹에서는 박인천 창업주의 맏사위 배영환씨가 광주고속 사장을 지낸 적이 있으며, 둘째인 강대균씨는 금호실업에서 중역을 지냈다. 삼성그룹의 경우에는 6녀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남편 정재은 조선호텔회장이 삼성전자 부사장을 지낸 적이 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창업주 이병철 전 회장이 작고하기 직전 삼성그룹을 떠났다. 현재는 삼성에서 분가한 신세계그룹을 이끌고 있다.이병철 전 회장의 딸 덕희씨의 남편 이종기 전 중앙일보 부회장(현 삼성화재 소속)도 오래전부터 삼성그룹에 몸담았다. 이 전 부회장은 그룹의 핵심 경영인으로 활약하다가 이병철 전 회장이 작고하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병철 전 회장의 맏사위인 조운해 전 고려병원장은 의사라는 점 때문에 기업경영보다는 본업에 충실했다.한진그룹의 경우에는 좀 특이하다. 사위는 아니지만 처갓집 사람들이 경영일선에 많이 참여했었다. 고 조중훈 회장의 처남인 김형배 전 한진 사장, 둘째 처남 김건배 전 한진 전무 등이 그들이다. 섬유재벌인 태광산업에는 창업주 이임룡 회장의 처남인 이기화 전 태광산업 사장이 경영을 주도했으며, 롯데그룹에는 신격호 회장의 큰 매제인 최현열씨가 롯데산업 사장을 맡은 적이 있으며, 둘째 매제인 김기병씨도 롯데관광 등의 계열사 경영을 이끈 적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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