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재벌의 왕권전쟁은 뒷말이 많다. 지금이야 철저하게 지분율에 따라 재벌 2세들의 역할이 정해지고, 차후 경영권 향방을 쉽게 한눈에 알 수 있다. SK그룹이 그러했고, 한화그룹이나 롯데, LG그룹 등도 철저히 자본주의 논리에 의해 경영권 이양이 이루어졌다. 이들 재벌은 대부분 경영권 이양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루어졌다.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당시에는 공개기업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대부분 선대 회장의 결정에 따라 경영권 승계구도가 결정되기 마련이었다. 이 때문에 선대의 결정을 두고 후세 경영인들간에 치열한 경영권 쟁탈전을 벌이거나 나중에는 소송전까지 벌이는 볼썽사나운 일들이 많았다. 90년대 이전 한국 재계에서 벌어진 경영권 이양 실태를 재조명해보자.사실 재벌들의 경영권은 ‘장자상속’원칙에 의해 대부분 장남들이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그럴 경우 나중에 뒷말도 비교적 적었고, 후유증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를 깨고 장남이 아닌 차남이나 3남에게 경영권이 넘어간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경영권 이양 과정에 이런저런 뒷말도 없지 않았다.

말 많은 경영권 이양

대표적인 경우가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이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장남 맹희씨를 비롯해 창희, 건희, 태휘씨 등 4명의 아들을 두었다. 결과적으로 경영권 계승자는 3남이었다. 이건희씨가 삼성그룹의 회장직에 오른 것은 이병철 회장이 작고한 직후인 1987년 12월. 이병철 회장은 작고하기 10여년 전부터 맹희, 창희씨를 사실상 그룹경영 일선에서 퇴진시켜 건희씨에게 황제수업을 시켰다.장남승계의 관례를 깬 또다른 대표적인 재벌그룹은 현대그룹이다. 정주영 회장이 작고한 뒤 현대그룹은 2세들간에 핵분열됐다. 그러나 현대그룹은 5남인 정몽헌 회장의 일가족이 이끌고 있다. 현대그룹의 정통성을 누가 잇느냐는 문제는 아직도 논란거리. 사실상 장남인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일가라는 주장도 있고, 현대그룹의 로고와 명맥을 잇고 있다는 정몽헌 일가란 주장도 있다.

이 부분은 현대가에서 누구도 섣불리 입밖에 내기 어려운 ‘복심’이기도 하다.장자가 아닌 2세에게 경영이 넘어간 또다른 기업은 동국제강이다. ‘바늘에서 선박까지’라는 모토를 걸고 동국제강을 창업한 사람은 장경호 회장이었다. 그런 장 회장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었다. 상준, 상문, 상태, 상철, 상건, 상돈씨 등이 그들이었다. 고 장경호 회장이 1975년 작고한 후 경영권을 이어받은 사람은 뜻밖에도 장상태 회장이었다. 그 후 이 그룹은 현재 장상태 회장의 장남인 장세주 회장이 이끌고 있다. 장상태 회장이 두 형을 제치고 경영권을 이어받자 세간에는 많은 말들이 있었다.중견 건설회사인 중앙산업과 대한전선그룹도 장남이 아닌 아들에게 경영권이 넘어간 케이스이다. 유명 영화배우 정윤희씨와 결혼해 세간의 이목을 모았던 조규영씨는 중앙산업 창업주 조성근 회장의 차남이다. 그러나 조 전 회장이 작고한 뒤 경영권은 맏아들 문규씨가 아닌 규영씨에게 넘어갔다.

후대에 그룹이 반쪽나기도

지난해 작고한 설원량 전 회장도 대한전선그룹 창업주의 3남이다. 창업주 설경도 전 회장은 원식, 원철, 원량, 원봉씨 등 4형제를 두었다. 그러나 작고 후 그룹경영권은 모기업인 대한방직을 설원식 회장이 가져갔고, 주축기업인 대한전선은 설원량 회장이 이어받았다. 후대에 내려와서 사실상 그룹이 두 개로 쪼개지는 결과를 가져왔다.지금은 기업이 사라졌거나 사실상 이름만 남은 기업들 중에는 장남이 아닌 사람들이 경영권을 넘겨받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재계의 떠오르는 별로 주목받았던 동광기업, 일신방직, 거화자동차, 국제그룹 등이 대표적. 눈길을 끄는 인물은 60년대초반까지만 해도 재계의 샛별로 주목받았던 신진자동차의 김창원 전 회장의 선택.

그는 신진자동차로 한국 최고 재벌의 대열에 끼여들기 직전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등이 등장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그는 회사를 정리하고 거화라는 이름의 회사를 새로 출범시켰다. 이 회사의 사장에 앉힌 아들은 3남인 김용식씨. 그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느닷없이 거화의 경영권을 장남인 김남식씨에게 주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우여곡절이 계속되는 와중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던 김 전 회장이 다시 거화의 경영 일선에 나서 이복형제간의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이 곡절은 나중에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사건으로 이어져 끝내 거화는 침몰하고 말았다.5공시절 괘씸죄로 침몰한 국제그룹은 창업주 양태진 전 회장이 타계한 후 장남 정모씨와 차남 규모씨가 국제그룹과 진양그룹으로 분리해 딴살림을 차렸다.

형인 정모씨는 한 때 재계 서열 10위안에 랭크될 만큼 급성장하다가 결국은 망했다. 동생 규모씨 역시 사업이 그리 원만하지 못한 채 고전을 겪었다. 금호그룹은 창업 당시 박인천 전 회장과 동생 박동복 명예회장, 조카 박상구 전 삼양타이어 회장 등 3인이 공동창업했으나 박 전 회장이 작고한 뒤 조카와 삼촌, 사촌간에 치열한 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결국 박동복 명예회장의 아들 형구, 병구씨는 금호전기와 모빌코리아를 차려 사실상 딴살림을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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