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대한민국 3부 요인 중 한 명이 정세균 국회의장이다. 그는 오는 5월29일자로 임기가 끝난다. ‘개헌 전도사’, ‘미스터 스마일’로 불리며 원만한 성격에 합리적 리더십으로 여야를 뛰어넘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일하는 국회를 만들지 못해 아쉽다’고 겸손함을 보였다. 1950년생인 정 의장은 올해 68세다. 그는 호남과 서울에서 6선을 지냈고 국회의원-당대표-장관-국회의장을 지낸 몇 안 되는 정치권 인사다. 정 의장은 남은 국회의장 임기 동안 지역구 종로를 위해 빚을 갚겠다고 밝히면서도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겠다는 말 속에 제2의 인생 도전도 엿보인다.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을 거쳤지만 조용한 성격의 정 의장을 지면으로 만나보자.

- 5월 29일 임기 마치는 丁, “일하는 국회 만들지 못해 아쉬움”
- 호남 4선, 종로 재선 원만하고 합리적 리더십 빛나…‘귀감’


임기가 한 달도 안 남은 정 의장의 고민은 무엇일까. 최측근인 강성룡 보좌관은 ‘개헌’이라고 단언한다. 정 의장은 ‘개헌 전도사’로 불릴 만큼 이번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이 통과되기를 누구보다 기대했다.

또한 개헌 관련 세미나 토론회 등 행사는 빠지지 않고 참석해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야 원내대표와 협상에서도 ‘국민들과 약속’을 들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 의장의 6월 개헌안 국민투표는 사실상 야당의 반대로 물 건너간 상황이다.

정 의장 측, “개헌에 대한 고민 많았는데…”

정 의장은 여야가 모두 합의한 ‘6월 지방선거 개헌안’이 무산되자 바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해 눈길을 모았다. 정 의장은 4월23일 “국민에게 약속한 6월 개헌이 불가능하게 됐다”며 “국회의장으로서 사과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 의장은 “민생이 후퇴하고 남북 관계는 급진전이 예상되는데 국회의 시간만 멈춰선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며 “국회가 국민의 혈세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국민은 묻고 있는데 국회는 문만 열어 놓고 정쟁만 하고 있다”고 자성을 촉구했다.

정 의장은 개헌 관련해서는 국회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문재인 대통령 발의로 개헌안이 국회에 제안됐지만 정 의장은 국회가 단일안을 만들어 청와대에 역제안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의회주의자에다 입법부 수장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자하는 속내도 읽힌다.

이에 대해 정 의장은 “국회가 단일안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고 대통령 발의 후에도 국회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국회가 개헌안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제시하면 대통령도 국회를 존중할 수 있는, 말하자면 퇴로가 열리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강 보좌관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6월 개헌안 국민투표’도 물 건너갔지만 여전히 이런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여야가 국회 개헌안을 6월 내 합의해 오는 가을에 개헌안을 통과시키자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임기 내에 못한다면 최소한 20대 국회에서 개헌안을 처리하자는 요지다. 개헌 전도사다운 면모다.

6선의 정 의장은 1950년 전라북도 장수군 장계면 개안들에서 4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정 의장의 지인들은 그의 이름 앞에 ‘진촌’이라는 별호를 붙여 부른다. ‘진짜 촌놈’과 ‘진안 촌놈’의 줄임말이다. 고등학교는 세 군데나 옮겨 다녀야 했다.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안성고등학교를 6개월도 채 못 다니고 전주공업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러나 인문계 학교를 다니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어느 날 전주신흥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무턱대고 찾아갔다. “전주공고에서 1 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 정세균이라고 합니다. 신흥고등학교를 다니고 싶은데 장학금을 안 주시면 학교에 다닐 형편이 못 됩니다. 장학금을 주시고 전학을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장학생으로 입학을 허락받고 신흥고는 개교 100년 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군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와중에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맡았다. 학창시절에는 법관을 꿈꾸다가 유신체제에서 꿈을 접었고 학교 신문사 활동을 하며 언론인이 되고자 했으나 1974년 동아일보 ‘백지 광고’ 사태를 보고 이 역시 포기했다고 한다.

부인 최 씨 독립운동가 자손, 미팅에서…

대학 재학 시절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니던 아내 최혜경 씨를 만났다. 부인 최 씨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 최홍준 씨의 딸이다. 최홍준 씨가 정 의장을 대성할 인물로 보고 사윗감으로 점찍었다고 한다. 최 씨는 경북 포항 출신으로 가족과 함께 상경해 진명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영문과 재학 중 미팅에서 정 의장을 만났다.

정 의장은 대학 졸업 후 쌍용그룹 계열사인 종합상사에 입사하여 시멘트 영업부터 시작해 기계부품, 신발 등 소위 ‘라면에서 미사일까지’라는 국제영업의 최일선에서 일했다. 미국지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선진 정치 경제의 현장을 체득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1995년 18년간의 실물경제 현장 생활을 마감하고 정치 일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96년 4월 11일 첫 번째 국회의원 도전에서 상대 후보를 40%의 표차로 따돌리면서 의정단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15대 국회부터 내리 18대까지 당선됐고 19대 총선에서 서울에 출마해 정치적 실험에 성공했다. 그동안 정책위의장, 원내대표, 대표 등 주요 보직을 맡아 합리적인 리더십으로 당을 이끌었다.

2005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에 올랐고 10월 임시 당의장에 추대됐다. 2006년 2월 제9대 산업자원부 장관에 임명됐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여당의 대표가 장관으로 가는 것을 두고 비판이 일었다.

이에 대해 정 의장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느 곳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라고 응수했다. 그는 산자부 장관 재임 기간에 수출 3000억 달러 시대가 열려 3000억 달러의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후 2007년 1월 11개월 만에 당으로 복귀해 2월 전당대회에서 당의장에 이례적으로 합의 추대됐다. 열린우리당 의장직에 재차 오른 그는 야권 통합에 기여했으며 대선 경선을 관리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창당되기 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의장으로 활동했고, 2008년 7월 6일에 통합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됐다.

정 의장은 2009년 7월 24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반발하여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의원직 사퇴서를 낸 뒤 원외에 머물다 제5회 지방 선거의 승리에 힘입어 다시 국회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해 8월 2일에 7.28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했다.

19대와 20대는 정치 1번지라고 하는 서울 종로 지역구 의원이 됐다. 그는 전북 진안군무주군장수군임실군에서 종로로 바꿔 출마했다. 친박 핵심인 홍사덕 전 의원을 접전 끝에 5000표 차이로 꺾고 5선에 성공했다.

총선이 끝난 뒤 민주당 민생특위에서 경제민주화본부장을 맡았다. 2012년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당내 경선에 뛰어들었으나 문재인 후보에게 밀려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이후 문재인 캠프에서 선대위 상임고문을 맡았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꺾고 6선에 성공했다.

대선 후보급 격돌로 관심을 모은 선거에서 초반 열세 관측을 뒤엎고 과반 이상 득표로 오 전 시장을 크게 따돌렸다. 2016년 6월 여소야대 지형에 힘입어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정 의장은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총 121표 중 71표를 얻어 문희상·박병석·이석현 의원을 누르고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됐으며, 오후 본회의에서 실시된 국회의장 선출 투표 결과 출석의원 총 287명 중 274표를 얻어 당선됐다.

6선을 하는 동안 각종 이권비리에 연루되거나 사생활로 물의를 빚은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2016년 한겨레에서 정 의장이 이인수 수원대 총장의 국감 증인 채택을 무마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한겨레 신문을 상대로 5000만 원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이 소송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또한 2014년 6월 정 의장이 포스코 소유 송도사옥 매각 추진 과정에서 지인인 박모씨에게 매각 관련 포스코 측의 의향·매각 일정 등을 알려줬다는 시사저널 보도에 대해서도 민형사상 법적 대응을 했다.

정 의장에 대한 정치권의 종합적인 평가는 ‘원만한 성격에 합리적 리더십’을 꼽고 있다. 열린우리당 당의장 두번, 통합민주당 대표 한 번 등 세 번이나 당대표를 지내며 리더십을 발휘했다. 2005년 열린우리당 임시 당의장에 올라 재보선 패배로 어수선한 당내 갈등을 수습했고 2007년 다시 의장에 올라 야권 통합에 기여했으며 대선 경선을 관리했다.

부드러운 성격으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신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온화한 성품으로 당직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정치인으로서 색깔이 약하고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잠재적 대선 주자로서 지지율도 대개 1~2% 정도로 높지 않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계파색이 강하지 않고 범친노로 분류되기도 한다. 대선 후보 경선까지 뛰면서 정세균계를 형성하기도 했지만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국가 위해 뭘 해야할지 고민해 보겠다”

정 의장은 이제 임기가 2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가장 최근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그는 국회에 가장 바라는 것에 대해 “더 일하는 국회를 만들지 못한 것은 아쉽다”, “불이 꺼지지 않는 의장단이 돼야 하는데…”라고 토로했다. 참모들이 들으면 아연실색할 만하다. 하지만 국민들의 심경은 반대일 것이다.

정 의장은 국회의장직 이후 진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했다. “현재로서는 다른 생각은 없고 지난 2년간 종로구민에게 내가 할 것을 다 못한 면이 있어서 잘 섬길 생각이다”며 “그러면서 또 국가를 위해 뭘 해야 할지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정 의장이 대한민국에 마지막으로 보상할 일이 무엇인지 사뭇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약력
■ 1950년 전북 진안 출생
■ 고려대 법학과, 경희대 경영학박사
■ 고려대 총학생회장
■ 국회예결위원장
■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 산업자원부 장관
■ 열린우리당 당의장, 민주당 대표
■ 제15,16,17,18,19,20대 국회의원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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