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남북 정상회담 이슈가 6.13 지방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예상보다도 컸다. 민주당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정상회담이 미투·드루킹 등 모든 약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서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벼랑 끝에 몰린 처지가 됐다. 당 지도부가 회담 성과를 깎아내리면서 ‘드루킹 특검’의 불씨를 살리고자 안간힘을 쓰곤 있지만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하다. 되레 ‘정상회담 역풍’을 우려하는 후보들과 ‘지지층 결집’에 주력하고 있는 홍준표 대표의 선거 전략이 충돌하고 있다. ‘정상회담이 지선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애써 현실을 부정하는 것만이 한국당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실정이다. 다만 5월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이 ‘블랙홀’을 빨아들이는 또 다른 ‘블랙홀’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역풍’을 맞게 되는 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 ‘정상회담 혹평’ 역풍 맞은 한국당... “北美 회담 이후 역풍 대상 바뀔 수 있다”
- 정상회담 ‘블랙홀’... ‘드루킹 사건’에도 文 83%p, 민주 55%p ‘환호’

 
4.27 남북정상회담의 여파가 6.13 지방선거에까지 미칠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상회담 뒤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상승하고 있는 데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역시 고공행진을 이어가 여당 후보들이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국갤럽이 2~3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문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평가율이 83%로 집계됐다. 지난주 73%에서 10%포인트 급격히 상승한 수치다. 부정 평가율은 10%에 그쳤으며, 지난주보다 8%포인트 낮아졌다.
 
긍정 평가 이유로 ‘남북 정상회담’(35%), ‘북한과의 대화 재개’(14%), ‘대북 정책/안보’(9%) 순이 꼽혔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대북 관계/친북 성향’(23%),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22%), ‘독단적/일방적/편파적’(9%), ‘남북 정상회담’(7%)순이었다.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도 여당인 민주당이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도 불구, 상승세를 이어갔다. 민주당은 지난주보다 3%포인트 오른 55%를 기록, 창당 이래 최고치를 얻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다. 총 5701명에 통화를 시도해 1002명이 응답을 완료, 응답률은 18%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홍준표 리스크’에 수도권·
PK 후보들 본격 ‘선긋기’

 
문제는 자유한국당이다. 지금껏 안보 관련 이슈는 보수 진영 지지층 결집을 위한 가장 큰 요소로 꼽혀 왔다. 그런데 남북이 급속도로 평화 분위기에 접어들면서 이를 활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당은 남북 정상회담 비판 기조를 유지한 채 드루킹 사건 등 여권 인사들이 거론된 각종 비리 논란을 다시 쟁점화하는 데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오히려 정상 회담 이후 자유한국당에서 홍준표 대표 등 지도부와 거리를 두는 지방선거 후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거물급 인사들이 먼저 움직이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반홍(反洪)’ 움직임이 확산될 조짐이다.
 
경기도지사 재선에 도전하는 남경필 현 지사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지방선거의 당 선거 슬로건인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남 지사는 ‘자유한국당 선거 슬로건을 다시 만듭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슬로건은 그 함의를 떠나 국민의 보편적 인식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남 지사는 남북 정상회담에 결과에 대해 홍 대표가 원색적인 비난을 한 데 대해서도 “평화의 길이 열린 남북 관계의 더 큰 진전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답을 찾고 실천하는 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정복 인천시장 역시 “홍준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며 “특히 남북정상회담 관련 무책임한 발언으로 국민 기대에 찬물을 끼얹는 몰상식한 발언이 당을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태호 경남지사 후보도 “남북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했다. 환영한다”며 지도부와 선 긋기에 나섰다.
 
이처럼 한국당이 당 내외적으로 최악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각에서는 한국당의 기사회생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북미정상회담의 성과에 따라 남북정상회담 역풍이 한국당이 아닌 민주당을 향할 수 있다는 것.
 
비핵화 or 전쟁?
北美 회담 동전의 앞뒤

 
이미 예고됐듯이 남북 정상회담이 ‘몸풀기’라면 북미 정상회담은 ‘본 게임’이다. 그런데 미국 내 북한 비핵화를 바라보는 여론의 불신이 만만치 않은 만큼 우리 정부가 조급하게 서둘다 작은 실수라도 한다면 역풍은 거셀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외교 국방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미 정상회담이 한반도 긴장 완화란 점에서는 환영할 소식이지만, 만약 북한의 핵 능력을 제한하는 데 어떠한 진전도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미국이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 공산이 높다는 말들이 공공연히 흘러나온다.
 
IHS마르키트 아태지역 국가위기 담당 부대표 엘리슨 에반스는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할 경우 전쟁 리스크는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시점에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주한미군 철수를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내뱉은 것은 민주당 입장에선 뼈아프다. 문정인 특보는 지난달 30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에는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 공식화 및 구체적인 방법론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는 북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마련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이는 한국당으로 하여금 다시 안보 이슈를 선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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