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공천 반발 사태… ‘부메랑’이냐 ‘찻잔 속 태풍’이냐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현역 기초단체장들이 대거 물갈이되고 있다. 연임 제한·불출마 등으로 자연스럽게 교체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공천에서 배제되거나 경선에서 탈락한 현역 단체장들도 많았다. 문제는 이 같은 물갈이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야가 원칙 없는 ‘입맛대로 공천’을 단행한 탓에 현역 프리미엄을 앞세우고도 공천에서 탈락한 현직 기초단체장들의 반발은 최고조를 찍고 있다. 특히 ‘공천=당선’일 수 있는 여야의 텃밭에서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진다. 일부 지역에서는 ‘무소속 연대’ 기류까지 감지되는 실정이다.
  
- 민주당 : 광주·전남 ‘48%’ 경기 ‘3분의 2’ 현역 물갈이
- 한국당 : 경주·상주·예천·울진·울릉·대구 달성 ‘무소속 출마’

 
6.13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정작 여야는 내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후보 공천 과정에서 잡음이 불거지고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드는 후보가 늘면서 이번 지방선거도 ‘네거티브 선거’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여야 지도부가 현역 기초단체장들 가운데 상당수를 공천에서 배제한 것은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중앙당에 재심을 요청하거나 심지어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미투’·‘비리’·‘범죄’...
바람 잘 날 없는 민주당 공천

 
민주당의 경우 텃밭인 광주·전남에서 현역 기초단체장들의 대거 물갈이가 이뤄졌다. 광주·전남 27곳 중 무려 13곳에서 현역 물갈이가 확정됐다. 본선 탈락자가 더해진다면 물갈이 폭은 50%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5일 광주와 전남지역 정가에 따르면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광주와 전남 27개 시장·군수·구청장 중 13곳(48%)이 사실상 교체된다.
 
여수 주철현, 순천 조충훈, 장흥 김성, 강진 강진원 등 민선 6기 단체장 4명이 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했다. 여기에 3선 연임 제한으로 출마를 하지 못하는 구례군수와 고흥군수 두 자리도 자동 물갈이된다.
 
각종 비리에 연루돼 현역 단체장이 낙마한 무안군수, 보성군수, 해남군수 등 3곳도 ‘무주공산’ 지역으로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고 있다. ‘미투’ 의혹이 불거져 현 군수가 불출마를 선언한 함평군수까지 전남 22곳 중 10곳에서 현역 단체장이 물갈이될 전망이다.
 
광주에서는 5개 기초단체장 선거구 중 무려 네 곳에서 물갈이가 단행됐다. 3선인 송광운 북구청장은 연임 제한에 걸렸으며 최영호 남구청장, 민형배 광산구청장은 광주시장 선거에 도전하려고 사퇴했다가 후보 단일화로 경선도 치르지 못했다.
 
광주 서구청장 선거에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유지하던 현직 구청장이 ‘음주운전(2회) 벌금형’을 이유로 컷오프 당했다. 이에 임 서구청장은 지난달 23일 민주당 광주시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뒤 탈당계를 제출했다.
 
민주당은 경기도 내 현역 기초단체장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물갈이에 나섰다. 지난달 26일 민주당 경기도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는 5차 공천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심사 결과로 공천을 신청한 현역 단체장 10명 중 5명이 불출마하거나 공천에서 탈락했다. 현역 단체장 6명은 공천을 신청하지 않았다.
 
이날 3선에 도전한 최성 고양시장과 유영록 김포시장이 낙마했고 김성제 의왕시장과 오수봉 하남시장도 지난 19일 고배를 마셨다 또 3선에 도전한 채인석 화성시장은 지난 13일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공천 탈락에 불복하고 당에 재심을 요청했으나 기각됐다.
 
한국당 ‘텃밭’ TK, ‘공천 불복’에
현직 단체장 ‘무소속 출마’ 러시

 
자유한국당에서도 현역 단체장들이 줄줄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한국당 지도부는 텃밭이나 다름없는 영남에서 현역 기초단체장들을 잇달아 공천에서 배제했다. 지난달 15일 자유한국당 경북도당에 따르면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는 최근 공천에서 안동, 예천, 울진, 울릉, 경주, 상주 등에서 현역 자치단체장 공천을 배제키로 했다.
 
그러자 공천경쟁에서 낙마한 자유한국당 소속 기초단체장 대부분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은 “공천 결과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유권자 의견을 도외시한 밀실 공천으로 시민 판단을 받겠다”며 한국당을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권영세 경북 안동시장은 3일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도 험한 안동을 검증되지 않은 서투른 조종사에게 맡길 수 없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현준 예천군수, 임광원 울진군수, 최수일 울릉군수 최양식 경주시장 이정백 상주시장 등도 일제히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대구에서는 김문오 달성군수가 공천장을 받지 못했고 김 군수 역시 지난달 26일 “군민을 얕잡아 보는 사천의 벽을 허물겠다”며 한국당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부산에서는 신현무·김진용·김흥남·김진영·박대근 현역의원 5명이 경선에서 탈락했다.
 
안상수 창원시장 역시 공천에서 탈락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안 시장은 지난달 30일 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당에 경선을 요구했으나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아 23년간 몸담았던 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창원시장 선거에 출마한다”고 공식 선언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안 시장과 부인 전희정 씨는 탈당신고서를 한국당 경남도당에 제출했다.
 
특히 그는 무소속 출마를 하게 된 이유를 홍준표 당대표에게 돌렸다. 안 시장은 “홍 대표 체제에서는 공정성과 정의를 찾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당으로 돌아와 당을 혁신하겠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일각에서는 무소속 후보들이 손을 잡고 소위 ‘무소속 연대’를 내세울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역 프리미엄을 안고 있는 현직 단체장들은 상당한 지지기반을 형성하고 있어 무소속 연대를 이뤄 한국당 후보와 정면 대결할 경우 파괴력은 배가될 전망이다.
 
전략 공천 부작용 속출...
“공천 시스템 엉망인 탓”
 

한편 공천에서 탈락한 현역 기초단체장들의 불만이 최고조를 찍고 있음에도 정작 각 당의 지도부는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며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자성의 목소리가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공천관리위 핵심 관계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런 대책도 문제의식도 없다. 그냥 지나가면 된다는 분위기다”라며 “공천은 본선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사람을 뽑는 절차가 돼야 하는데 누가 나가도 이긴다는 전제로 공천을 하게 되면 반드시 탈이 나게 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 같은 집단 반발 사태의 원인에 대해 “기초단체장 공천을 각 지역 시·도당에 모두 위임하면서 생긴 문제들이다. 지역마다 기준이 들쭉날쭉이다. 시·도당은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의 영향력이 엄청나다”라며 “거기에 전적으로 맡겨 버리니까 자의적 판단이 이뤄지고 공천이 불공정하다는 말이 나온다. 결국 우리 당의 공천 시스템이 엉망인 탓이다”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실제로 현직 시장임에도 경선에서 배제된 최성 고양시장, 유영록 김포시장 측도 ‘현역 개입설’을 주장하고 있다. 최성 시장은 “고양 지역 유력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지난 대선 후보 경선 출마 후부터 ‘최성 죽이기 프로젝트’가 진행돼 왔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민주당은 뺑소니 운전자에 대해 예외 없이 공천을 배제하기로 했으나, 전남도당은 전남 함평 광역의원으로 뺑소니 전과가 있는 임용수 현직 도의원을 공천했다. 여수시 광역의원 후보로 공천된 최무경 후보 역시 뺑소니를 포함해 교통사고 전과 2범임에도 공천했다.
 
또한 민주당은 여성 수행비서 폭행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강성권 전 민주당 사상구청장 예비후보에 대해선 후보 자격을 박탈한 반면 2005년 폭력행위로 5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는 화성시장 서철모 예비후보에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공천 심사 방법 역시 이 같은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민주당은 당초 신안군수 공천을 경선으로 결정하고 예비 후보들에게 심사비까지 받았지만 지난달 27일 전략 공천을 발표했다. 전략공천한 천경배 후보는 추미애 대표 비서실 전 부실장을 역임한 인사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청와대 출신들을 다수 차출했는데, 이들 가운데 4명이 폭행·성추문 등으로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유권자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부산 사상구청장 민주당 후보로 단수 공천됐다가 공천은 물론 당원 자격까지 박탈당한 강성권 전 행정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 출신이자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다. 이 밖에도 박수현 전 대변인, 유행열 전 선임행정관, 김기홍 전 행정관 등이 앞서 후보직을 내려놨다.
 
이와 관련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방선거 후보를 청와대에서 차출한 것은 결국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전략이었을 것이다”라면서 “그런데 이러한 스캔들로 인해 민주당의 지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물론이고 문 대통령의 얼굴에도 먹칠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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