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K·미르재단 ‘내로남불’?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정부가 추진한 ‘2차 산업협동운동 기금’ 조성이 뒷말을 낳고 있다. 최근 산업부(산업통신자원부)는 이 사업을 확대하면서 대기업에 2700억 원대 기부금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지난 정권에서 이뤄진 대기업의 기부 활동을 ‘적폐’로 규정한 현 정부가 돈이 필요할 때마다 대기업에 손을 벌리는 것을 두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 누리꾼은 “이게 박 전 대통령 당시 K·미르재단기금 모금과 무엇이 다르냐. 내가 기부금 받으면 정당하고 다른 사람이 받은면 국정농단이냐”고 질타했다. 정치권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논란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몸 사리는 기업들, 정권 바뀌면 불똥 튈까 우려
산업부 "괜한 오해 없애려 민간주도로 변경할 것"

산업혁신운동은 대기업과 1차 협력사 사이에 이뤄지고 있는 상생 협력을 2·3차 협력사까지 확대하기 위한 활동이다. 경영 환경이 열악한 2·3차 협력사를 위해 스마트공장을 짓고, 생산·경영 노하우나 지식을 전수한다는 것이다. 상생협력법에 따라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하는 기금으로 운영된다. 

이 사업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시작됐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 97사가 참여해 지난 5년간 2277억 원을 기부해 중소기업 한 회사당 2000만 원 상당을 지원했다. 1단계 사업에 쓰인 기부금은 대부분 대기업이 출연했다. 삼성전자가 650억 원, 현대차가 500억 원, LG가 150억 원, SK가 100억 원 등을 기부했다.   

2단계 사업 시작 전부터 진흙탕 설전

산업부는 오는 8월 2단계 사업을 시작하는데 이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산업부는 2단계 사업에 착수하면서 대한상공회의소에 산업혁신운동 중앙추진본부를 만들었다. 최근 산업부와 산업혁신운동 중앙추진본부, 농어업협력재단, 대기업, 중소기업이 모여 2단계 사업에 대해 협의를 했다.

이후 산업혁신운동 중앙추진본부에서 10대 대기업 관계자들을 만나 기부를 독려하고, 1단계보다 많은 기부금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부 대기업에는 1단계보다 20% 많은 기부금을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잡음(?)을 낳았다.

자발적 기부보다 강압적 기부라는 기류가 형성된 것.  일부 기업들이 난감했다는 분위기가 전해지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특히 ‘국정농단 사태’에 대기업의 기부가 논란이 돼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기부가 또 다시 논란이 될 경우 기업이 받을 타격은 심각하다. 현재도 국정농단 사태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두 배로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난 정부의 기부금 출연 요청에 ‘울며 겨자 먹기’로 기부금을 출연했던 기업인들이 ‘적폐’로 몰려 구속·수감된 전례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지난 사건 이후 기부금을 출연하려면 이사회 승인까지 거쳐서 한다. 복잡한 관계까지 모두 거쳐 진행한 일이 논란이 될 경우 향후 좋은 일에 기부하는 일조차도 눈치가 보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좋은 일인 줄은 알지만, 선뜻 쾌척하기가 어렵다”며 “나중에 이 기부가 문제가 돼서 총수가 구속될 수도 있는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성원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반강제적인 출연 요청으로 기업들을 옥죄는 문재인 정부의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김 대변인은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자발적 출연을 요청했을 뿐이라고 하는데, 업계에서는 정부 요청 받고 무시할 기업이 있겠나라고 반문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 행태에 국민들은 그저 기가 찰 뿐이다. 이러니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세간의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정치권도 불편한 심기 드러내

그는 “지금 대한민국 제조업이 큰 위기에 처해 있다. 올해 3월 공장 가동률이 금융위기 수준인 70.3%로 떨어졌다”며 “산업 생산은 26개월 만에 최대로 하락했고, 설비 투자도 한 달 새 7.8%나 줄었다. 글로벌 경제는 호황세인데 한국은 반도체 이외 전산업 분야가 침체에 빠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산업계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한다.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에 부담이 가중되는 정책들이 줄줄이 시행되면 더 어려워질 것이 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난 1월에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평창동계올림픽 기업들에게 티켓을 강매하더니, 이제는 산업부가 나서서 기업들에게 수천억 원에 이르는 돈을 상생 프로그램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거둬들였다. 이것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는 정부와 여당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고 했다. 

논란이 일자 산업부는 ‘산업혁신운동 관련 출연 압박한 적 없어’라는 제목의 해명자료를 통해 “산업혁신운동은 상생협력법에 근거해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하는 상생협력기금 사업의 하나이다”며 “대한상의에 산업혁신운동 중앙추진본부를 결성하고, 2·3차 협력 업체의 디지털전환 및 생산성향상을 지원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2단계 사업과 관련해 산업혁신운동 중앙추진본부,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 및 산업부가 1단계 출연기업과 사업계획을 협의한 바는 있으나 출연을 압박한 바는 없다”고 했다.

그래도 논란이 확산되자 산업부는 지난 2일  '산업혁신 운동'에 필요한 출연금 조성을 민간에 맡기기로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새 정부의 산업혁신운동은 순수 민간 주도의 혁신 성장 플랫폼으로 재설계하겠다"고 밝혔다. 민관에 맡겨 오해를 없애겠다는 취지의 설명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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