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토지 문서 인정받을까?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 ‘평화,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름으로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은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정권,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 정권에 이어 세 번째다.

11년 만에 성사된 자리이기에 국내외를 막론한 많은 시선이 집중됐다. 임진각과 파주 일대는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고, 생중계를 통해 회담장에서 평양냉면을 먹는 장면이 송출되자 전국 도처의 평양냉면집이 때 아닌 특수를 누린 해프닝도 벌어졌다.

또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연내 종전 선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이산가족 상봉’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4·27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 관계는 전환점을 맞았다는 평가를 얻었다.

이러한 변화를 타고 각처에서 ‘통일 이후’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남북정상회담이 피워 올린 평화의 불씨, 북한 토지 문서에 관심 솔솔
전문가 모두 고개 갸우뚱…국가 차원 보상·점진적 사유화 대안 떠올라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남다른 감회로 지켜본 이들이 있다. 바로 남한에 거주하고 있는 실향민이다. 북한에 적을 두고 있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남한에 내려왔고, 이후 분단선이 설치되면서 고향에 갈 방도를 잃었다.

한국전쟁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현재 실향민 1세는 대다수가 타개했거나 고령의 나이가 돼 실향민 2세들이 주 세대로 분류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실향민 2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이후 11년 동안 남북관계는 높은 긴장을 유지해 왔다. 2008년에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고, 남북 이산가족상봉 역시 2015년 이후로 추진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한 사이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살가운 소식에 많은 실향민이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보면 좋을 고향땅을 향한 기대도 있지만, 이 바람에 실려 온 또 다른 가설이 눈길을 끈다.

‘실향민들이 소유하고 있는 북한 땅은 토지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하는 문제다.

학계 인사들
‘실효성 인정 안 돼’


이 명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만약에 통일이 된다면’이라는 전제조건이 선행돼야 한다. 때문에 남북 사이에 평화기류가 흐를 때마다 종종 수면 위로 떠오르곤 했다.

가설의 주 내용은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남한에 터를 잡은 실향민이 당시의 토지 문서를 가지고 왔다면, 통일 이후 거기에 적힌 땅의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학계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은 “인정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손재영 교수는 “(토지 문서의) 실효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위조인지 아닌지를 가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등기부 원본처럼 원본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정부 차원에서 (원본을) 모두 폐기해 버려서 원본이 없다. 때문에 실향민이 가지고 있는 땅문서가 위조인지 아닌지 가려낼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권대중 교수 역시 “(실향민이 가진) 땅문서는 있을 수 있지만, 북한의 경우 공산화가 돼서 개인 소유로 인정받지 못한다”면서 “소유권 확인이 안 되면 (토지를) 받을 수 없다”고 손 교수와 같은 태도를 보였다.

이어 “(토지의 경우) 실효적 지배가 우선적”이라면서 “이미 (분단 이후) 65년이 흘러 소유권이 바뀌어 인정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북한의 경우는 어떨까.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원 A씨는 역으로 북한 거주민이 남한에 소송을 해서 승소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 주민 당사자가 남한에 땅을 소유하고 있거나 선대(先代)는 이남 했지만 자식들이 북한에 남아 있는 경우 상속 관련 문제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상속의 경우 ‘남북 주민 사이에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이라는 특별법이 제정돼 있으나 승소한다 하더라도 통일 전까지는 북한에 송금이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논의할 사항↑
적합한 대안 강구해야

 
북한 토지 문서 실효성 여부는 ‘있다’ 혹은 ‘없다’ 한 마디로 논하기 어렵다. 문제가 복잡다단해 여러 논의를 거쳐야 할 사안들이 있기 때문이다.

연구원 A씨는 “(현행법상) 20년 동안 소유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그것을 소멸하기로 민법에 명시돼 있다”면서 북한 토지 문서 실효성에 관해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실향민의 경우) 소유권을 사용하고 싶어도 남북관계로 인해 사용 못한 부분이 있다”면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라고 언급했다.

권 교수 역시 “만약 개인이 북한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해도 그 집이 (북한에 있는) 제3자에게 넘어가 사용 중인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면서 “(소유권을) 인정받게 된다면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것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통일 이후 북한 토지 개방이 국내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관해서 권 교수는 “그럴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오히려 (실효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데도) ‘내가 가지고 있는 북한 땅 문서 너 줄 테니 싸게 사라’하는 식의 (부동산) 사기 사건이 많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답변했다.

북한 토지 문서 실효성에 대한 대안으로는 국가 차원의 보상 또는 점진적 사유화가 거론된다.

국가 차원의 보상은 토지의 사유화가 어려우니 국유화를 유지하되 토지를 다른 것으로 보상해 주는 형식이다. 또 다른 대안인 점진적 사유화는 통일독일의 사례를 보완한 것이다.

독일의 경우 동·서독 통일이 이루어질 당시 원소유권 반환원칙이 적용됐다. 이는 국유 토지를 원소유자에게 현물 반환하는 것을 기초로 하되, 이것이 어려울 경우 예외적으로 보상하는 방식을 뜻한다.

그러나 시행 중 반환 소송이 빗발치는 등 부작용이 잇따라 발생해 추후 원소유자 반환원칙에서 원소유자 보상원칙으로 변경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 역시 2014년에 발표한 ‘통일독일의 신탁관리공사 운영 사례와 시사점’에서 국유부동산을 “매각과 장기임대 방식 등으로 전체 보유 토지의 약 90%를 사유화하여 시장경제 기반 구축 및 민간자본 유치에 기여했다”고 전했다.

캠코에 따르면 통일독일의 경우 진행과정상 다소간의 잡음이 있었으나 구동독 지역의 중앙집권적 경제체제를 사회적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시 이를 위해서는 전담기구 운영이 필요하며 “통일시기 적용 가능한 사유화 및 자산별 관리 기본방향 등 국가자산 관리 전반에 대한 로드맵 및 매뉴얼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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