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신청…한 달 평균 829건, ‘진짜 난민’ 가릴 수 있나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인력소개소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난민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난민법에 따르면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사회적 신분,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받을 수 있는 ‘근거 있는 공포’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그런 공포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외국인을 말한다. 하지만 이들을 보호할 국내 심사제도와 법 등은 아직 미미하다. 실제 현장에서 난민과 접촉하는 전문가들은 난민심사 전담인력의 전문성을 길러 ‘가짜 난민’을 제대로 걸러내고 국가의 핍박을 피해 찾아온 ‘진짜 난민’을 구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 1차 심사 기간 취업은 불법…빈틈 파고든 브로커들
- 전문성 결여된 심사…“다각적인 관점에서 난민 수용 논의돼야”



기자는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인력시장을 찾았다.

6개 이상의 인력사무소가 몰려 있는 골목에는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국 등 각국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모여 있었다.

벽면에는 ‘자동차 부품조립 천장 문 조립’, ‘비닐분쇄기 기계 보는 일’, ‘자동차부품 브레이크 조립’, ‘화장품 용기 사출’ 등의 공고가 붙어 있다.

10명 이상의 직원을 갖춘 한 직업소개소 A 대표는 최근 농장에서 많은 난민이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오전 9~10시만 되면 사무실에 20~40명의 아프리카 난민들이 몰려 들어와 일자리를 묻는다. 이들을 상대로 공장, 농장, 어촌 등 다양한 곳으로 직업을 알선해 준 바 있다”며 “특히 우리 소개소에는 우간다, 이집트 등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한국에서 최소 6개월~1년 이상 지낸 이들이니 한국어는 꽤 하는 편이다”라고 전했다.
 

합법적 체류 위해 소송 제기
난민 임금은 평균 130~220만 원

 

하지만 해당 직업소개소 문 앞에 ‘노 쥐 원 오(NO G-1-5) 비자’라고 적힌 종이가 눈에 띄었다.

대림동을 찾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대부분 G-1-5 비자를 갖고 있다. 한국에 들어와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심사를 기다리는 난민신청자 신분이라는 뜻이다.

일정 생계지원비가 나오는 1차 난민 심사 기간에 난민 비자 소지자가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불법이다.

법무부는 1차 난민심사 기간인 6개월이 지나면 구직활동을 허용하고 있다.

특히 이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행위 역시 불법이다. 출입국관리법에 근거해 3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직업소개소를 찾는 대부분 아프리카인이 6개월이 되기 전 일자리를 알아보러 와 난감하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다른 직업소개소 B 부장은 난민 비자 악용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현행 난민법에 따르면 난민은 난민 불인정 결정에 대해 불복해 이의신청·행정소송까지 제기할 수 있다. 대략 2~3년이란 시간이 걸리는 소송 동안 이들은 합법적인 체류가 가능하다.

이에 고의로 소송을 걸어 난민 비자를 취업용 비자로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시리아, 나이지리아 등에서 들어오는 난민 신청자 수를 보면 ‘어떻게 저리 난민이 많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 가운데 진짜 난민도 있겠지만 허위 난민신청자도 다수다. 이들은 난민 비자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한국에서 취업활동을 하기 위해 입국한다”며 “이들에겐 우리나라가 돈 벌기 최고라더라. 정보도 빠르고 돈도 제대로 주고”라고 설명했다.

난민들은 매달 130만 원에서 220만 원까지의 임금을 받고 있다.

직업소개소 관계자들은 노동부와 법무부가 허위 난민들을 단속하지 않고 탁상행정만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A 대표에 따르면 이태원 등지에 밀집해 있는 브로커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취업비자 만료가 다가오는 불법체류자, 외국인 노동자 등에게 불법·편법 난민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 위치한 인력소개소
  이와 관련 그는 “교회 목사도 암묵적으로 난민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이런 상황을 감시해야 하는데 노동부와 법무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B부장 역시 “출입국 관리사무소도 행정상으로만 난민들을 받지 말고 면담을 통해 비자를 발급해 줘야 한다”며 “정말 이들이 본국에서 박해를 받아 들어왔는지 등을 제대로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난민 문제’는 곧 국가적 문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사 전담인력, 전문성 부족
1차 난민 심사의 질 높여야

 
한 달 평균 829건.

지난해 서울행정법원에 난민 인정을 해달라며 소송을 낸 외국인 숫자다.

법무부의 ‘2017 국내난민현황’ 자료에 따르면 난민법이 처음 제정된 1993년부터 지난해까지 접수된 난민신청은 총 3만2733건이다.

이 가운데 792명 만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난민신청자가 매년 급증하고 있지만 법무부 난민심사 전담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난민심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총 37명이다. 이들이 국내의 모든 난민신청을 심사해야 한다.

법무부 난민과 관계자는 “한국의 난민 인정률이 낮다는 지적이 지속되고 있지만 난민신청자의 상당수가 불법체류 상태 또는 외국인 근로자”라며 “입국 후 체류 기간이 만료되기 직전에 체류 연장 목적으로 난민 신청하기 때문에 불인정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취업 승인 절차도 실속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난민 비자 소지자가 합법적으로 일하기 위해선 취업할 곳의 사업자등록증과 고용계약서 사본을 법무부에 제출한 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난민신청자의 취업 승인은 지난해 5944건뿐, 다수의 난민신청자는 고용계약서는 물론 사업자등록증도 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게 인권난민센터의 전언이다.

심사관 전문성 부족으로 ‘진짜 난민’이 누락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죽음의 위협을 피해 한국을 찾아온 난민들은 통역 오류가 생기거나 심사 절차의 전문성 부족 등으로 정식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다.

현장 활동가들의 생각은 다양했다.

일부 인권 단체는 전문성과 인력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작정 난민 수용률을 높이는 건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송영훈 강원대 난민연구센터장은 “난민 신청자가 실제 난민이라면 인정하는 게 맞다. 난민 수용은 단순한 인도적 문제가 아니다. 국내 이민자 문제, 국제 정치 문제, 외교적 문제 등 다각적인 관점에서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그는 ‘해외 난민캠프의 한국행 희망자’인 재정착 난민들을 철저한 심사를 거쳐 수용하거나 분산 수용하는 노력이 더 확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1차 난민 심사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 난민 인정률이 3%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다. 독립된 난민심판원이 1차부터 심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며 “직원들에게도 지속적인 훈련을 해 이들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아프리카, 중동 등의 난민이 크게 늘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이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한국의 난민 보호 수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세계 100위 안팎이다. 국제적 위상을 생각할 때 난민 보호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라고 말해 난민 문제에 대한 시각차가 좁혀질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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