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에 감동 받아 감성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시민들 사이에서 북한에 대해 재인식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통일 염원에 대한 목소리도 함께 커진다. 그러나 시민의 입장과 시각이 같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요서울은 각 세대 시민들을 만나 통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통일’ 의견 모두 엇갈려…“경제적 부담 크다” 한목소리

65세 남성 A씨는 기자에게 “당연히 통일되면 좋지. 우리가 모두 바라는 염원 아닌가”라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68세 B씨는 이번 회담을 보고 “북한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B씨는 “예전에는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는데 이번에는 김 위원장도 화통한 것이 정상회담을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시민들 사이에서 북한에 대해 재인식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일색이었던 것이 한꺼풀 벗겨졌다는 반응이다. 이와 함께 통일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입장도 시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화무드가 조성됐다는 호평이 돌면서 통일에 대한 생각도 같은 입장일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시민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그간 기성세대에 비해 관심을 덜 기울였던 2030세대가 최근 들어 통일 주축 세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통일의 가능성, 통일 이후 벌어질 일과 이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 등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지는 상황. 이들 사이에서는 ‘통일이 인생을 바꿀 기회’라는 얘기까지 늘어놓고 있다.

26세 회사원 C씨는 통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장점으로는 북한의 자원 확보, 북한땅 개발로 인한 일자리 창출 등을 꼽았다. 그러나 우려의 시각도 공존한다. 북한 지역 부동산 투기 과열과 북한 주민들에게 부당한 임금을 지급할 것이라는 우려다. 결국 차별 없는 정부 관리가 요망된다는 얘기다.

다른 시각도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28세 D씨는 “평화통일에 대한 심층적인 얘기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부터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정권에서 거액의 자금을 유입시켜 북한에 조달을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핵을 만드는 기회를 준 이들의 정권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힘들 것 같다”면서 “이 때문에 통일을 좋은 시각으로 볼 수 없고, 북한은 한국을 이용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나의 견해다. 그리고 만약 통일이 된다고 해도 북한과 우리 측의 빈부격차로 인해 다시금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통일을 섣불리 이루기보다는 북한 정권과 우리 정권을 인정해주면서 서로 교역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북한은 경제적인 안정을 찾을 것이고 우리는 육로를 개통해 중국과 유럽 쪽으로 자유롭게 교역을 함으로써 남과 북이 서로 발전을 이뤄 내리라고 본다”면서 “통일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군대다. 북한은 70% 이상이 군인으로 이뤄져있고 우리는 고작 5% 남짓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예비군‧민방위를 포함하면 30% 정도 되는데 북한이 말을 바꿔 교역을 안 하고 전쟁을 하겠다고 선포하는 순간 우리는 북한에게 먹히는 꼴이 될 것이다. 6.25 전쟁 때로 퇴보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38세 D씨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우리도 언젠가는 통일이 돼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현재처럼 각자의 나라로 인정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 입장”이라며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우리와 공산 정권 아래 독재체제에 있던 북한이 가지고 있는 사상‧가치관 차이에 대한 극복점을 찾아야 하는 부분이 클 것이고 경제적인 부분에서 우리가 북한을 수용할 수 있는 요건이 될 수 있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이어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에게 평화와 같은 자유가 주어졌으면 한다. 먹는 것 그리고 그들의 사상들이 자유롭게 나누어지고 주체사상이 아닌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그런…북한에 잘 보존돼 있는 곳들을 관광자원들로 활용하게 된다면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32세 주부 E씨는 “통일이 되긴 힘들다고 본다. 분단된 지 워낙 오래됐고, 김정은이 지금처럼 개방적인 태도로 나온다 해도 쉽게 권력을 내어주진 않을 것이다. 현실적인 관점으로 봤을 땐 중국이 공산국가지만 문호 개방하고 살듯이 북한도 잘 돼봐야 그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이젠 각각의 국가로 지내야 우리도 북한도 잘살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고 전했다.

31세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F씨는 “통일에 대해 회의적이다. 이번처럼 정상들끼리 만나서 한 선언들이 과거에도 있었으나 이후에도 북한은 필요하면 입장을 바꾸고 믿음을 저버리는 일(연평도 포격, 천안함 피격 등)을 벌였기 때문에 북한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면서 “북한은 지금도 대외적으로 핵 때문에 대북제제를 강하게 하고 있어 압박을 받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젊은 나이에 3대째 세습받아온 권력에 대해 정당성을 갖기 위한 북한 주민들에게 최고 존엄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 등 필요에 의해 판문점 선언을 이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이런 말만 믿고 군 복무 기간을 줄이는 등의 조치는 국방이 허술해 지고 북한이 배신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북한이 핵 포기한다는 말에 추가적으로 실제 핵을 포기하는 행동까지 보여줘야 우리도 최소한의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며 “판문점 선언에 감동받아 감상에 젖어 있을 게 아니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지켜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교과서적으로만 보면 우리는 한 민족이니까 통일되면 좋겠으나 무조건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감수하고 희생해야 될 것이 엄청 많이진다”고 지적했다.

2030세대에 비해 분단의 고통을 상대적으로 많이 체감했을 5060세대의 생각은 어떨까. 50대 이상은 통일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 ‘북한과 우리는 한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59세 G씨는 “통일이 되는 것은 원하지만 우리와 북한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잘 맞춰갈지 걱정이다. 통일이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라며 “통일이 되면 가장 좋아할 사람은 실향민일 것이다. 통일은 그 사람들의 한(恨)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이다. 고향 한 번 가보지도 못하고 하늘로 가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서독과 동독이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 잘살 듯이 우리나라도 통일로 인해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예전부터의 염원이 통일이었듯이 서로 간 왕래할 수 있는 통일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반면 60세 H씨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가 이북사람이라 어렸을 때부터 통일 노래를 부르면서 살았다. 어렸을 당시에는 이렇게까지 양국 간의 격차가 벌어지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통일이 된다면 남과 북의 경제적인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과연 통일이 됐을 때 우리가 북측을 더 많이 도와줘야 된다는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면서 “통일을 이룬다는 것보다는 남쪽 나라, 북쪽 나라 이런 식으로 평화롭게 나라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화적인 협정을 맺고 살았으면 한다. 그게 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전했다.

‘00세대의 생각이 이렇다’라고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시민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그러나 대다수의 시민들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통일’이 경제적인 부담감을 안기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이 밖에도 일각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지금 ‘통일’이라는 단어를 두고 긍정적인 측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과거 북한의 행동, 통일 과정과 가능성, 통일 이후의 상황까지도 고려하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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