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날’ 맞아 서울 난곡동 베이비박스 가보니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가족들은 어디서 하루를 보낼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자신이 어디서 출생했는지 부모가 누군지 등을 알 수 없는 아이들도 있다.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 있는 베이비박스에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1383번째 아이가 들어왔다. 베이비박스는 ‘생명존중’과 ‘영아유기’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 속 존엄한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이를 지켜왔다. 베이비박스를 지켜내기까지 쉽지 않았던 지난 10년, 켜켜이 쌓아둔 이야기를 이종락 주사랑공동체교회 목사를 만나 들어봤다.

- 이틀에 한 명꼴로 울음소리 들려…‘비밀출산법’ 통과돼야

지난 4일 서울 관악구 난곡동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를 찾았다.

난곡동 센터는 가파른 산동네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주사랑공동체교회의 설립자 이종락 목사가 지난 2009년 12월 우리나라 최초로 교회 담벼락에 구멍을 뚫어 만든 베이비박스를 볼 수 있었다.

박스 안에는 영아의 체온 보호를 위한 담요와 온열 장치, 폐쇄회로(CCTV) 등이 설치돼있다.

넓이 45cm, 높이 60cm, 가로 70cm의 작은 공간이었다. 한 생명이 들어있는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좁았다.

베이비박스 입구 쪽 벽면에는 ‘출생일을 꼭 적어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아이를 위해 최소한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이날도 베이비박스를 통해 새 식구가 들어왔다. 부모는 3층에서 상담을 위해 이 목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 식구의 번호는 ‘1383’.

이는 지난 2009년 베이비박스가 설립된 후 누적된 아이의 숫자이기도 하다.

교회는 베이비박스뿐 아니라 ‘베이비룸’도 운영하고 있었다. 센터를 찾아온 산모가 아기와 함께 머물며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목사는 “미혼모가 아기를 데리고 오면 그냥 보내지 않고 상담을 받고 가도록 한다. 미혼모 대부분이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이들도 많다”며 “어려운 환경에서 아이를 낙태하지 않고 베이비박스까지 데려온 것을 칭찬하고 격려해준다. 상담을 통해 아기를 다시 키워보겠다고 마음을 바꾸는 산모도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 베이비박스를 찾은 아기 210명 중 35명이 지난해 상담을 통해 원 가정으로 돌아갔다. 교회는 현재 65개 미혼모 가정이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있다.
 
베이비 박스 시작은 18년 전
“위험에 빠진 아이들만 들어오길”


이 목사는 18년 전 한 아이를 만나게 됐다.

그의 아들은 선천적으로 전신마비를 안고 태어났다. 이 때문에 1년에 7~8개월 씩 병원 생활을 하기 일쑤였다.

어느 날 그의 아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한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할머니는 “우리 외손녀 딸도 의료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보고 싶을 때 1년에 한 두 번 보러 오는데 이젠 그것도 못하겠다”며 “나도 이제 늙고 병들어서 도저히 외손녀를 돌볼 수 없다. 아저씨가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던데 우리 외손녀를 돌봐주실 수 없겠느냐. 그럼 내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물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고 그는 전했다. 당시 이 목사의 아들도 장애가 있는데 다른 아이를 돌 볼 여건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맡아준다면 당신이 믿는 예수를 믿어 보겠다”라는 할머니의 말에 마음을 돌렸다고 한다.

이후 이 목사가 중증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극진히 돌본다는 소문이 퍼지자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하나 둘 그에게로 보내졌다.

담벼락과 주차장, 옆집 대문 앞, 공중전화 박스 앞, 우리와 150m 떨어진 교회 앞 등에 아이를 몰래 놓고 가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2007년 어느 쌀쌀한 봄날, 교회 앞에 조그마한 생선 박스가 놓여 있었다.

박스 쪽으로 향하니 비린내를 맡고 어슬렁거리던 길고양이가 도망쳤다.

박스 안에는 오래 전에 놓인 듯 한 어린 아이가 들어있었다. 그는 “조금만 더 늦게 발견했다면 해를 입었겠다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이 목사는 유기되는 아이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체코에서 운영 중인 베이비박스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됐다.

그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 인큐베이터 크기를 잰 후 직접 도면을 그렸다. 결국 지난 2009년 12월 주사랑공동체교회 담벽을 터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베이비박스를 설치하고 아기가 처음 들어온 2010년 3월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이 목사는 전했다. 그는 “베이비박스를 설치한지 3개월 후 첫 아이를 받게 됐다. 처음엔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경하기 위해 문을 연 줄 알았다”며 “천천히 내려가 보니 아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더라. 가슴이 뛰고 소름이 끼쳤다”라고 했다.

이 목사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눈물도 쏟았다. 그는 “베이비박스에 아이가 안 들어오게 해주시고 죽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만 주님이 이 문을 열어주십시오”라고 나지막히 기도를 했다.
교회 벽면에 설치된 베이비박스

유기 아이 증가는 ‘입양특례법’ 탓
‘비밀출산법’ 실행되면 저출산 오명 벗어


그렇게 한 아이로 시작돼 햇수로 10년이 지난 지금 베이비박스를 거쳐간 아이의 수는 지난 2010년 4명에 불과했지만 2018년 5월 1383명에 이르고 있다.

이 목사는 이 같은 증가 추세의 원인으로 지난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을 꼽았다.

친부모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개정안에 따라 신분 노출이 두려운 미혼 부모들이 영아유기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린 결과라는 것이다.

이 목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환 바른정당(서울 관악구을) 의원과 함께 지난 지난 2월 8일 ‘임산부 지원 확대와 비밀출산에 관한 특별법(이하 비밀출산법)’을 발의했다.

법안에 따르면 ‘비밀출산법’은 미혼모, 강간에 의한 임신, 청소년기 임신 등의 사정으로 곤경에 처한 산모가 익명으로 출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출산 사실 자체가 ‘주홍글씨’가 될 수 있는 미혼모들에겐 반길만한 소식으로 보인다.

법안은 생모의 신원이 적힌 출생증서는 자녀가 16세가 될 때까지 밀봉되도록 하고 있다. 16세 이후 자녀가 보여 달라고 해도 생모가 동의해야만 공개된다. 친부모의 사생활과 자녀의 알권리를 함께 고려한 제도다.

특히 그는 이 법안으로 우리나라가 저출산 국가의 오명을 벗을 수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의료계는 매해 30만여 건의 낙태수술이 이뤄진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목사는 실제 150~200만 건이 넘을 것이라고 추정하며 “낙태가 우리나라에서 불법이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는 않는다. 한 해 낙태되는 아이들은 150만 명이 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실상 우리나라는 저출산 국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사람은 누구든지 태어날 권리가 있다. 국가도 국민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며 “낙태하고 싶은 여성이 어디 있겠느냐. 비밀이 보장된다면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법안이 통과돼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재정적 어려움 겪은 미혼모
열매 맺은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에 얽힌 미혼모들의 사연은 참혹하다.

한 10대 산모는 홀로 산에 올라가 구덩이를 팠다. 아이를 출산한 뒤 산에 묻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순간 흙과 피로 뒤덮인 아이를 자신의 옷으로 덮고 이 목사를 찾아왔다.

다른 산모는 아이를 낳은 후 밭에 유기했다. 범인이 다시 범죄 현장을 찾아가듯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려 밭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지만 아이의 울음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이에 곧장 아이를 베이비박스로 데려온 산모도 있었다.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오갈데 없는 위기의 미혼모들을 위해 경제적, 정신적, 물질적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미혼모는 혼자 영아를 길러야 하는 경우가 많아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특히 10대 청소년은 취업도 어렵고 모아둔 돈이 없어 경제적 어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러 온 미혼모 중 96%와 직접 만나 상담하고 있다. 일부 미혼모는 재정적으로 어려워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은 상태다”며 “이들에게 쌀, 기저귀, 분유, 장난감, 유모차, 라면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한 달에 15~20만 원의 현금도 지원한다”라고 했다.

미혼모가 자립할 때까지 아이를 위탁해주기도 한다. 87명의 위탁된 아이들은 현재 경제적으로 독립한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기자는 1383명의 아이와 미혼모의 아버지 몫을 하고 있는 이 목사의 건강이 걱정됐다. 그러자 그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안아 주려면 누군가는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 나서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 발 벗고 나섰다. 지금 생각하면 나 같은 사람이 이 일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라며 “더 많은 아이들과 미혼모 등을 품어주지 못 한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하며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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