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그룹을 두고 외부에서 얘기하는 ‘삼성 공화국’이니 ‘삼성의 싹쓸이’ 등 부정적 시각에 대해 삼성에 몸담고 있는 CEO들이 한 번 허심탄회 하게 얘기해보자는 것이 안건이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가 나중에 전한 얘기에 따르면 이 날의 토론은 무척 활발하게 이뤄졌다고 한다. 회의는 무려 2시간 가까이 계속됐고, 각 계열사의 사장단이 각양각색의 얘기를 내놨지만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요회의’가 끝난 지 3시간 후. 삼성그룹 구조본은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자료의 내용인 즉슨 “삼성이 진정한 국민기업이 될 수 있도록 상생과 나눔 경영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안티삼성’의 분위기가 잠잠해질 때까지 자중하겠다는 내용이다.

사장급 회의인 ‘수요회의’의 내용에 대해 보도자료까지 내놓은 삼성그룹. 뜬금없는 주제는 대체 왜 나왔을까. 삼성그룹에서는 이번 회의가 “이건희 회장의 특명으로 이뤄졌다”는 분위기다. 이 회장이 특별히 지시한 사항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 하나 반대하지도 못했고, 2주 연속 회의를 할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었던 것.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삼성그룹이 법무팀을 법무실로 승격시키면서 시작됐다. 삼성은 지난해 대검 수사기획관 출신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친목모임인 ‘8인회’의 멤버인 이종왕 변호사를 영입하면서 변호사들을 적극 영입하기 시작했다. 검사출신의 10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삼성맨’이 됐고, 외부에서는 이런 삼성의 인사정책에 대해 비판을 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직접 ‘안티삼성’을 느낀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고대사태’ 때였다.

삼성 구조본 관계자는 “고대 사태로 인해 안티삼성 세력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 회장은 물론, 삼성 직원들 모두가 충격을 받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한 동안 고대출신이면서, 삼성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올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외부에서도 문제가 터졌다. 당시 외부에서는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내년에 서울 시장에 출마한다는 얘기가 모락모락 나오고 있었다. 여기에도 삼성은 언급됐다. 결국 삼성은 이에 대한 해법찾기에 나섰다. 삼성경제연구소에 ‘안티 삼성’에 대해 해법을 찾으라는 오더가 내려진 것이다. 난데없이 자사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주문에 삼성경제연구소 사람들은 무척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회장님의 ‘특명’을 수행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

결국 삼성을 둘러싼 작은 ‘반대의 불씨’들은 삼성 최고의 브레인 집단에서 공개적으로 연구를 해야 하는 일로 번진 것이다. 이 때부터 삼성경제연구소의 밤샘 작업은 계속됐다. 결국 이들은 ‘삼성견제론’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게 됐다. 그리고 지난 5월25일 오전 8시.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놓은 결과는 삼성의 사장단 회의인 ‘수요회의’에 전달됐고, 이 날 연구결과를 발제하는 것으로 회의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 날 자리에 참석했던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 날의 회의는 말 그대로 ‘난상토론’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요즘 삼성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뉜 것으로 전해진다.

‘신중론’과 ‘정면돌파형’으로 나뉘어진 것. 삼성이 어쨌든 요즘 주목을 받고 있으니 자중하자는 측과 아무 잘못이 없는 한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편으로 엇갈린 것. 결국 삼성은 1시간 반의 토론 끝에 한 주 미루기로 결정을 했다. 결국 지난 1일의 회의는 2차 대책회의였던 셈. 이 날 회의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삼성구조본이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함에 따라 ‘한발 후퇴’의 모습을 보였다. 삼성구조본은 “1%의 반대 세력이라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 그러나 이런 공식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요즘의 사태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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