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해성 투서 작성자는 ‘후배 여경’…무고 혐의로 입건

<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충북 충주경찰서 수사과 소속 A경사가 자택에서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같은 해 12월부터 지난 4월까지 근 5개월가량 수사를 벌여왔다. 조사 결과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A경사를 모함하는 ‘음해성 투서(投書)’를 보낸 사람은 같은 경찰서에서 근무하던 후배 여경 B경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투서자가 감찰기능 구성원이란 사실까지 드러나자 경찰 안팎에선 투서를 한 배경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이 사건이 경찰의 승진·실적 만능주의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경찰, ‘감독’하는 감찰에 대한 불신 높아…과잉 인원 정비해야”
- 경감, 강압행위도 사실…“감찰 가담한 4명도 필벌해야”



지난해 10월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주경찰서 소속 여성경찰관 사건을 둘러싸고 논란이 된 상부의 ‘강압 수사’와 동료 경찰관의 ‘음해성 투서’ 등의 의혹은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최근 “충주서 소속이었던 A경사 유족 등이 감찰 담당자와 익명의 투서자 등 총 7명을 고소·고발한 사건을 수사해 충북 지역 경찰관 2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라고 밝혔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따르면 A경사에 대한 음해성 투서를 작성한 B경사는 무고 혐의, 이 투서를 근거로 A경사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한 전 충북경찰청 감찰관 C경감은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를 각각 받고 있다.

이 사건은 지난해 7월 A경사의 동료였던 충주서 청문감사담당관 소속 B경사가 무기명으로 작성한 투서에서 시작됐다.

B경사는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총 3개월간 A경사의 근태 상황과 업무 관련 갑질, 해외 연수 특혜 등을 내용으로 한 투서를 작성해 3회에 걸쳐 충북청과 충주경찰서 등에 세 차례에 걸쳐 익명으로 보냈다.

하지만 이번 경찰청 수사 결과, 투서 내용은 대부분 과장됐거나 사실무근으로 판명됐다.

이에 대해 김태현 경찰청 지능범죄수사 경정은 “B경사의 투서 동기는 구체적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개인적인 관계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귀띔했다.

B경사의 반복된 무기명 투서를 바탕으로 확인에 나선 충북청 청문감사실 C경감은 감찰 과정에서 A경사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등 무리하게 조사를 벌인 것으로 드러나 대중의 공분을 샀다.

김 경정에 따르면 현재 투서자 B경사는 혐의에 대해 전면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일부는 시인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감찰관 C경감은 “감찰 과정에서 조사행위 차원이었다”라며 대부분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동료 약점 잡아 처벌해야
실적 쌓을 수 있어

 

B경사를 음해한 장본인이 동료 여경으로 밝혀지면서 그 배경에도 물음표가 붙고 있다. 경찰 안팎에선 승진·실적 만능주의가 만든 비극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A경사와 B경사는 지난 2014년 나란히 경사 계급을 달았다. 향후 경위 계급 승진에서 서로 유력한 경쟁 상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게 동료 경찰관의 전언이다.

충추서 관계자는 “A경사는 우수 경찰관으로 촉망받아 온 13년 경력의 경찰관이었다. 형사들이 문서 작성 과정에 도와주는 역할을 할 정도로 동료들의 신임도 두터웠다. 이 때문에 투서자가 경쟁의식을 느꼈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전했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현직 경찰관들의 연대고발을 주도했던 전·현직 경찰관 온라인 커뮤니티 ‘폴네티앙’의 류근창 회장(경남지방경찰청 정보과 경위)은 “상대 평가를 통해 승진 시험이 이뤄진다. 특히 시험은 남녀 경찰관이 함께 치르지만 이후 승진 심사에선 남녀를 구별해 치른다”며 “고인과 투서자 모두 한 경찰서에서 중요 보직을 맡고 있었다. 자연스레 경쟁이 되는 거다”라고 했다.

성과를 쌓기 위해 투서가 이용됐다는 견해도 있다.

감찰은 직원들의 약점을 잡아 처벌과 내부 징계가 이뤄져야 실적을 인정받는 구조다.

B경위가 충주서로 보낸 첫 투서가 각하 처리된 이후에도 감찰 조사가 진행된 배경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감찰의 적폐’가 드러난 셈이다.
 

경찰 조직의 어둠 드러나
승진 지상주의 타파돼야
 


일부 경찰관들은 이번 사건이 경찰 조직의 어둠을 단적으로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특히 류 회장은 ‘경찰의 승진 시스템이 낳은 계급 지상주의’를 사건 발생의 단초로 꼽았다.

승진은 공무원 사회에서 누구나 집착할 수밖에 없는 과제다.

경찰 공무원은 일반직보다 계급 체계가 많고 복잡하다.

경찰 승진제도는 시험승진, 심사승진, 근속승진, 특별승진 등 네 가지로 분류된다.

경정 이하 경찰관들은 대부분 최저근무연수를 채운 뒤 필기·면접·교육훈련성적 등을 반영한 시험승진을 통해 진급한다.

이 때문에 시험승진 일자가 다가오는 가을과 겨울에는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 많은 인력이 휴가를 쓰는 등 치안 업무 공백이 심각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류 회장은 “형사법만 잘 외우면 누구나 승진해서 지휘 감독하는 시스템이 현 체계의 문제점이다. 국민의 시각에서 합당한 승진체제를 갖춰야 경찰도 신뢰를 얻을 것”이라면서 “경찰은 70년간 경찰대와 비경찰대, 간부와 비간부 등으로 조직을 구분해 왔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계급이 전부가 아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고 경찰에 들어온 것이지 승진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다. 이런 구조 개혁부터 해결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경찰 인권 보호 문제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감찰관은 ‘근태’를 살피기 위해 두 자녀가 다니는 학교 인근에 숨어 A경사를 촬영했다. 이는 강력범을 검거할 때 사용하는 사찰 및 미행 방법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류 회장은 “몇 번의 지각으로 경찰관을 미행했다는 자체가 수치스럽다. 경찰 인권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라며 “경찰이 내부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의 인권을 지킬 수 있겠는가. 인권이 지켜져야 다른 사람을 보호하려는 생각이 들고 자신감도 생긴다. 우리 스스로 대우받지 못하면서 국민 인권을 지키도록 강요받는 건 모순”이라고 토로했다.

감찰관 3명, 충북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수사관, 관리·감독자인 감찰계장 등 피소된 5명 중 1명만 입건한 것은 ‘제 식구 허물 감싸기’라고 비판했다.

주민등록발급신청서 분실과 무관했던 A경사의 조사를 강행한 감찰관 2명과 감찰에 가담했던 다른 2명에게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이 형사상 면죄부는 받았지만 징계에서는 ‘필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울러 류 회장은 근본적인 대책으로 “감찰 업무를 전문화하면 안 된다. 직무 감찰관은 비리를 찾으러 다닌다. 하지만 비리는 커녕 순찰을 얼마나 늦게 나가는지 등을 감찰하고 있다. 이는 감찰이 아닌 감독이다”며 “이 때문에 경찰들도 감찰에 대해 불신감이 높다. 과잉 감찰 인원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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