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치러질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또 한번 바짝 긴장하고 있다.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시민사회단체들이 ‘국민후보 지지운동’ 등 ‘당선운동’을 전개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국민후보’를 선정해 집중적인 지지운동을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될 이 운동은 기성 정치권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박진 대변인은 지난 4일 “일부 시민단체의 이른바 ‘당선운동 계획’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낙선운동의 또 다른 모습이라며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또 민주당 강운태 사무총장은 “시민단체 이름으로 특정인을 지원하면 선거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므로 개인적으로 선거운동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않았다.또 민주당 장전형 수석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당선 대상 선정시 최우선적인 고려사항은 공정성의 확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이 시민단체들의 총선대응 전략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지난 16대 총선에서 총선시민연대 등의 ‘낙선운동’이 위력을 떨쳤던 만큼 이번에도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총선결과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대선자금 수사,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선거법 개정 등 당리당략적 행태를 계기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정치개혁 여론이 시민사회단체들의 ‘당선운동’과 맞물릴 경우 기존 정치판 구도를 뒤바꿀 정도에 이르는 파괴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진보진영에서는 이미 ‘2004총선 물갈이 국민연대’, ‘생활정치 네크워크 국민의 힘’, ‘맑은 정치 여성 네트워크’등이 ‘당선운동’에 나서기로 한 상태.결국 시민사회단체의 2000년 총선 화두가 낙천·낙선운동이었다면, 올해 총선에서는 당선운동이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그 핵심이 될 ‘2004 총선 물갈이 국민연대’를 주도적으로 준비해왔으며, 지난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대변인으로 낙선운동을 펼쳤던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이미 지난해부터 전국을 돌며 지역 시민단체들을 상대로 “기존의 낙선운동에서 탈피, 지지·당선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었다.정 교수는 당시“동일한 운동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낮은 관심도를 비롯 국민들의 높아진 정치의식이 낙선운동 이상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며 “2004년 총선에서는 지지·당선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정 교수는 또 구체적인 총선 대응 전략으로 “먼저 총론적 논의와 선거 개입 전략 및 기준을 마련한 뒤 개혁적인 정당에 가입하는 당원 가입 운동이나 국민경선 참여운동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고, 마지막으로 선거운동 기간에 지지후보를 발표하거나 당선운동을 전개하는 방안이 있다”고 밝혀왔다.

당시 정 교수는 지지·당선운동의 기준으로 정치자금의 투명성, 정책과 활동의 개혁성, 의정활동의 성실성, 정당활동의 민주성, 탈지역주의적 노력, 국민참여증진 등 6가지를 제시했다. 이와 관련 강만길 상지대총장, 최열 환경운동연합대표, 양길승 녹색병원장, 안병욱 가톨릭대교수, 박진도 충남대교수 등 수백명의 국민후보 지지운동을 추진하는 시민단체 인사들은 오는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2004년 총선 물갈이 국민주권연대(가칭)’를 결성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물갈이 국민연대는 지난해 12월 16일 발족한 ‘2004 총선국민주권연대 준비위원회’의 새로운 이름이다. 이들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와는 달리 단체들의 연합체가 아닌 개인 참여 방식으로 활동하게 된다. 특히 온라인의 비중이 더욱 정교하고 조직적으로 준비되고 있는 점도 관심거리다.이들은 자체 홈페이지 물갈이닷컴(www.mulgari.com)을 준비중이며 오는 14일 정식 오픈할 예정이다.

정 교수는 당선운동의 의의에 대해 “낙선운동과 지지운동 모두 국민의 참여운동이다. 하지만 지지 운동은 네거티브(부정적)가 아닌 포지티브(긍정적)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 다르다”며 “부패·무능한 정치인을 물갈이하자는 목표는 같지만 낙선운동은 이들을 표적으로 삼아 당선을 막는 것이고, 지지운동은 이들 정치인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올바른 후보를 지지해 당선시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한편 이들이 벌일 지지운동은 선거구별로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1단계), 이들을 대상으로 유권자들과 사이버 선거인단이 토론(2단계)과 평가(3단계)를 벌인 뒤 최종적으로 국민 후보를 선택(4단계)해 전국적 지지운동을 전개(5단계)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이를 위해 현재 선거구별로 온라인에서는 사이버 선거인단을, 오프라인에서는 100인 규모의 유권자 위원회를 구성 중에 있고, 유권자위원회의 경우 전국적으로 최대 3만여 명이 활동할 예정이다.

특히 물갈이 국민연대는 17대 총선이 끝난 후에도 조직을 해체하지 않고, 향후 지속적인 의정 감시활동을 펼칠 것으로 보여 총선 후보들을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실제 물갈이 국민연대의 출범 움직임에 대해 여·야가 각각 상반된 반응을 보이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먼저 한나라당의 경우 최병렬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당선운동을 한다는 것은 낙선운동과 동전의 앞뒷면”이라며 “법을 뛰어넘어 개입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고 공권력이 명확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경계의 눈길을 보냈다.물론 민주당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이는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민주당 강운태 사무총장의 발언이나 장전형 수석부대변인의 논평에서 확인된다.반면 열린우리당은“부패한 후보를 가려내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려는 시민·사회단체의 결단”이라며 환영하고 나서 주목된다.정동채 홍보위원장은 “적법성 여부를 떠나 국민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들고 일어서지 않으면 부패 척결이 안 된다는데서 우러나온 충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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