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애경그룹 채형석 부회장이 제주지역 항공사 설립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채 부회장은 지난달 말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ARD홀딩스 등 애경그룹 계열사를 통해 제주도와 공동으로 제주지역항공사인 ‘(주)제주에어’를 출범시켰다. 이에 재계에서는 “항공사업의 성패가 채 부회장의 후계자 승계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애경그룹은 지난해 50주년을 기점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애경은 기존의 생활용품·화학·유통 등 3개 사업에 그룹 역량을 집중시키고, 여기에 새로운 사업으로의 진출도 모색해왔다.

이는 애경이 생필품 회사라는 이미지에서 탈피, 신사업을 통해 종합그룹으로 환골탈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이런 신사업 구상의 일환으로 애경그룹이 민간항공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지난달 25일 애경그룹은 제주도와 공동출자해 지역항공사 (주)제주에어를 설립했다. 설립된 제주에어는 자본금 150억원 규모로 애경이 100억, 제주도가 50억원을 출자했다. 애경은 운항개시까지 400억원 규모로 증자한다는 방침이다. 항공기 운항은 2006년부터 본격 시작된다. 이번‘애경의 민간항공사업 진출’은 채형석 그룹 부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 부회장은 그간 부동산 사업진출 등 애경그룹의 신사업 구상을 직접 챙겨왔다.

그리고 이번 민간항공사업 진출에 상당한 역할을 하면서, 그룹 내 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채 부회장은 민간항공 사업에 참여하면서 “그룹 차원에서 항공사업에 관심이 있었고 지역 항공사업이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 참여하게 됐다”며 “지역 항공사업의 경우 유지비가 적게 들고 안전성도 인정받고 있다. 이에 기존 항공사보다 요금이 저렴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채 부회장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재계에서는 ‘후계구도’와 연관을 짓고 있다. “항공사업의 성패가 후계구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얘기다.

현재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은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해외사업 분야 등에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장 회장의 장남인 채형석 부회장이 그룹 전체를, 사위인 안용찬 사장이 애경산업을, 차남인 채동석 사장이 그룹 간판인 애경백화점 등 유통부문을 각각 경영하며 ‘삼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삼남 채승석씨는 애경개발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이 중 채 부회장은 지난 86년 애경유지 사장으로 취임한 뒤, 그룹의 백화점·유통업 진출을 주도하며 후계자로서 자질을 검증받았다.그러나 채 부회장은 지난 2003년 초 불거진 ‘센트럴시티 사건’으로 주춤했다. 채 부회장은 당시 센트럴시티 인수과정에서 투자 대가로 전 지방공제회 손모 이사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이로 인해 채 부회장은 한동안 그룹을 경영하는데 타격을 받았고, 후계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이에 재계에서는 “채 부회장이 이번 항공사업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경우, 후계자로서 위치를 확고히 할 수 있을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이와 반대로 채 부회장의 항공사업 진출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후계구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기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항공사업 실패시, 장 회장의 3남 1녀 중 그룹 경영권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애경측은 “이미 채 부회장이 그룹의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만큼, 후계구도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애경 관계자는 “고 채몽인 사장(장 회장의 남편·70년 작고)의 유언과 유산에 따라 기업의 후계구도는 이미 정리된 상태”라며 “항공사업은 제주도측에서 먼저 제의를 했고, 사업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해 참여하게 된 것이다. 후계구도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이와 같은 애경측의 해명에도 불구, 항공사업 및 기업환경의 변화 등이 후계 구도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한편, 애경그룹이 항공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과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애경측은 양대 항공사와 서비스, 요금, 안전성 등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이에 애경측은 “기존의 항공사와의 마찰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서도 “선진국 등에서는 국제선 전문항공사와 국내선 지역항공사가 별도로 시장 영역을 갖고 발전해 나가고 있다”며 항공사업의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제주도-`애경그룹 ‘아주 특별한 인연’

“조부가 구한말 대정군수를 지냈고, 부친도 제주에서 태어났다. 항공사업의 성패는 궁극적으로 제주도민의 사랑과 관심에 달렸다”. 애경그룹 채형석 부회장이 제주에어의 성공여부를 묻는 말에 대답한 말이다.애경그룹이 제주지역 항공사업에 진출하면서, ‘애경그룹과 제주도와의 인연’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애경그룹과 제주도와의 인연은 장영신 회장의 시아버지이자 창업주 고 채몽인 사장의 아버지인 채구석씨로부터 시작된다.채씨는 조선말기 문신으로 제주도 대정군수를 지냈다. 군수시절 ‘이제수의 난(제주 유생과 천도교도간 충돌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영화화됐고, 채 군수는 주인공으로서 ‘이재수의 난’을 냉철한 시각으로 읽어내는 인물로 그려졌다. 그리고 채 군수의 5남으로 제주출신인 채몽인 사장은 1954년 애경유지공업을 설립했고, 채 군수의 며느리인 장 회장은 남편의 사망이후 경영일선에 나서 지금의 애경그룹을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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