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마쳤는데 입소 당일 취소?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출산 후 ‘필수코스’로 자리매김한 산후조리원(이하 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는 산모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조리원의 ‘갑질’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일부 조리원에서는 약속한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거나 신생아 사진촬영 등 부가서비스 이용을 강요하는 것을 물론이고 일방적인 입실 거부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어 문제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조리실 여유분 두지 않는 조리원들···“빡빡하게 받아야 손해 안 봐”
저출산 현상으로 폐업까지 ‘총체적 난국’···공정위 표준약관 개정 주목


서울에 사는 30대 A씨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출산 후 머물 조리원 정보를 찾던 중 이용 후기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곳을 찾아 상담을 했다.

그러나 A씨는 계약과정에서 부당한 내용을 듣게 됐다고 토로했다. 조리원에 계약금 일부 납부 또는 완납을 하더라도 입소 당일 취소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A씨는 계약을 보류하고 이 조리원에서 머물렀다는 산모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인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찾았다.

A씨에 따르면 A씨의 지인인 B씨는 출산 당일 조리원에게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았다. 조리원 측은 남는 자리가 없다면서 일방적인 계약 해지 통보를 했다고 한다.

앞서 B씨는 이용 금액을 완납해 계약이 끝난 상황이라 안심하고 출산을 했다. 그러나 출산 당일 이러한 통보를 받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B씨는 “다른 조리원들은 연계된 주변 조리원이 있어서 그쪽으로 옮겨가거나 하는데 이 조리원은 산부인과 일반병실로 가거나 새로 구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어 “계약금의 의미가 없다. 출산으로 정신도 없는 상황에서 당일 조리원을 새로 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반병실로 가라는 것도 과연 대응 방안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전북에 사는 C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출산을 5개월 앞두고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와 연계된 조리원과 계약을 맺었다.

가격은 6박 7일을 지내는 데 90만 원. 인근의 다른 조리원은 20만 원가량 더 저렴했으나 시설이 열악했다.

시간이 지나 출산한 C씨는 조리원으로 옮기려 했으나 “지금은 조리실이 부족하니 병원 입원실에서 이틀간 더 대기해야 한다”는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예약한 날짜에 조리원 입실 거부가 빈번한 이유는 조리원들이 여유분을 두지 않고 만실이 될 때까지 예약을 받기 때문이다.

산모의 유동적인 출산 일정에 맞춰 일부 조리실을 비워놓기보다는 수익 올리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 예약을 해도 입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B씨는 “(일부) 조리원에서 산모를 두고 수익 창출만 바라보는 전형적인 ‘갑질’이다”라고 지적했다.

한 조리원 관계자는 “보통 출산 3~4개월 전에 예약을 받는데 조리원 특성상 다소 빡빡하게 예약을 받아놔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조리원 관계자는 “자연분만 고객의 경우 출산일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조리원 예약을 미리 받지 않고 그때그때 받는다”고 설명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 2016년 접수한 조리원 관련 불만 민원은 752건에 달한다.

이는 지난 2012년 867건, 2013년 1006건, 2014년 1206건, 2015년 986건보다 소폭 줄었으나 여전히 높은 수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조리원들의 이 같은 행태를 제재할 규정이나 구체적인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3년 조리원 불공정약관 통용을 방지하고 산후조리 업계의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산후조리원 표준약관’을 제정했다.

표준약관의 주요 내용을 보면 과다한 계약해지 시 위약금, 조리원 내 발생 사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 입실 거부 행위를 막을 구체적인 지침은 마련되지 않았다.

또 해당 표준약관은 강제사항이 아니라 권고 수준이기 때문에 대부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 밖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2015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산모의 59.8%(대도시 65.7%)가 조리원을 이용하고 이중 초산인 산모의 74.8%가 조리원을 이용한다. 특히 초산인 산모가 조리원을 더 많이 이용하는 이유는 갓난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지난 2016년 6월 기준으로 전국에는 607개소의 조리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단 5개소 정도만 공공 조리원이다. 국공립 보육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로또에 비유한다면 공공 조리원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푸념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산후조리 붐을 타고 급증했던 조리원들이 저출산의 늪에 빠진 사회 흐름과 맞물려 휘청하면서 폐업하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다.

이 현상은 지역에 남아있는 조리원에 산모들이 몰려 입소할 수 없는 사태까지 불러왔다. 또 경영난에 빠진 조리원들은 폐업을 막기 위해 여유분 없이 예약을 받는 상황에 놓여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다만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산후조리원 표준약관’을 개정하면서 ‘계약금 환급 및 위약금 면제 사유’가 신설돼 산모나 신생아의 입원 치료로 조리원 이용이 어려운 경우에 계약금이나 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중도 퇴실하는 경우도 계약금 환급이나 위약금 면제사유가 된다.

또 사업자가 이용자와 특약을 맺을 수 있고 이 내용을 이용자에게 설명한 뒤 별도의 서면 동의를 받도록 하는 ‘특약규정’도 추가됐다.

조리원 이용으로 인한 이용자의 손해를 배상하기 위해 모자보건법에 따른 사업자의 책임보험 가입 의무도 명시하도록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개정된 표준약관을 공정위 누리집에 게시하고 사업자 및 사업자단체 등을 대상으로 교육·홍보해 표준약관의 사용을 적극 권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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