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손학규가 다시 돌아왔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지난 3일 바른미래당 중앙당 선거대책위원장 겸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 캠프 선대위원장 직을 공식 수락했다. 당내에선 ‘손학규 카드’가 지지율 반등의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그러나 정작 손 위원장의 지지자들은 그의 이번 결정을 ‘독배(毒杯)’에 비유한다. 이길 수 없는 선거인 줄 알면서 왜 망신을 자초하느냐는 것이다. 여기엔 ‘선당후사’를 강조하는 손 위원장의 성격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존폐의 기로에 선 당의 ‘삼고초려(三顧草廬)’를 외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그가 ‘독배(毒杯)’를 든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는 “정계개편을 준비하기 위해”라는 손 위원장의 수락 연설에서 가늠해 볼 수 있다. 지선 이후 정계 개편 시기가 왔을 때 야권의 중심축을 자유한국당에서 바른미래당으로 옮겨 보겠다는 게 그의 진의(眞意)로 집히는 대목이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그가 든 잔이 ‘독배(毒杯)’가 될지 ‘성배(聖杯)’가 될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 安 ‘서울 패배’·劉 ‘지선 책임론’... 孫 ‘개헌 매개로 정계계편 주도’
- 7공화국 꿈꾸는 孫 “무슨 역할이든 마다하지 않겠다” 당권 복귀 가능성 ‘활짝’

 
 
손학규 바른미래당 중앙당 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 14일 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6.13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송파을 차출설에 대해 거듭 부인했다.
 
孫, “지선 후 정계개편 중심 역할”
‘대안 정당’ 브랜드 유지가 ‘관건’

 
손 위원장은 이날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쓸데없는 얘기다. 선거 대책위원장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제 임무”라고 말했다. 최근 송파을 지역구 투표 의향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것에 대해서도 “그런 의논이 없었다”라고 선을 그었다.
 
반면 그는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바른미래당이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서 중도 개혁세력의 중심이 된다. 또 정치적인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이 더 확실하게 중심에 서야 된다”라며 지선 이후 자신의 역할론에 대해선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손 위원장이 그리는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위해 바른미래당이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은 분명하다.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를 앞세워 당 지지율 반등이라는 선결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안 후보를 활용한 서울에서 수도권, 수도권에서 지방으로의 지지율 상승 전략이 절실하다. 중도 보수 세력을 표방하면서 한국당과의 차별화에 방점을 찍은 ‘대안 정당’ 브랜드 유지가 결국 손 위원장이 꿈꾸는 정계개편 시나리오의 필요조건이다.
 
그 역시 지난 14일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서울시장만 이기면 바른미래당이 확실하게 존재감을 부각할 수 있고, 중도개혁세력 중심으로 정계개편에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바른미래당은 현재까지 서울의 안철수 후보를 비롯해 경기지사(김영환), 인천시장(문병호), 세종시장(허철회), 대전시장(남충희), 경남지사(김유근), 제주지사(장성철), 부산시장(이성권), 대구시장(김형기), 경북지사(권오을), 충북지사(신용한) 등 11곳에 광역단체장 후보를 냈다. 전북지사, 전남지사, 광주시장, 충남지사, 강원지사, 울산시장 등 6개 지역에는 아직 공천을 하지 못했다.
 
정당에 대한 지지가 투표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지방선거 특성상 야권에서는 후보 개개인을 부각하지 못하면 희망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방선거 이슈가 후순위로 밀린 현 상황에서 바른미래당이 안 후보의 당선에 ‘올인’하는 이유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바른미래당 자체의 인지도나 지지도가 굉장히 낮은 상태에서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현역의원조차 없기 때문에 국민들이 바른미래당에 관심을 주기는 쉽지 않다”며 “결국 현 상황에서 바른미래당이 당선을 목표로 지원할 수 있는 후보는 대선에도 출마해 정치적 자산을 많이 갖고 있는 안 후보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합당 전후로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탈당을 하면서 지방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바른미래당의 힘이 많이 빠졌다”며 “유승민 공동대표와 함께 창당을 이끈 안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면 향후 당이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지역보다도 서울시장 선거에 당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결국 앞서 말한 바른미래당의 ‘대안 정당’ 브랜드 유지는 안철수 후보가 최소한 2위를 기록했을 때 유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안 후보가 ‘서울 입성’에는 실패하더라도 김문수 후보를 밀어내고 2위를 차지한다면 지방선거 후 야권 개편 과정에서 바른미래당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은 남아 있게 된다. 반대로 안 후보가 김 후보에게마저 밀린다면 사실상 바른미래당의 미래는 불투명해진다.
 
김문수 16.0%, 안철수 13.3%...
보수층 자유한국당으로 결집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데일리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시장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박원순 후보 60.8%, 김문수 후보 16.0%, 안철수 후보 13.3%, 정의당 김종인 후보 2.2%였다. 박 후보가 타 후보를 압도하는 가운데 안철수 후보가 김문수 후보에게도 밀린 것이다.
 
김 후보가 안 후보에게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것은 보수층이 자유한국당으로 결집하는 흐름과 맞물린 것으로 풀이된다.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이 55.5%로 절대 우위를 보였고 한국당은 14.3%, 바른미래당 9.9%, 정의당 8.5%, 민주평화당 2.6%였다.
 
이번 조사는 지난 13~14일 서울시 거주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844명을 대상으로 유선(40%)·무선(60%) 자동응답방식으로 실시했다. 응답률은 3.4%,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4% 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와 관련 한국당 관계자는 “김 후보와 안 후보 간 단일화가 사실상 어려워진 가운데 서울시장 선거가 본격화하면 결국 보수 지지자들은 색깔이 모호한 안 후보 대신 한국당 주자인 김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라며 “단 하나의 광역단체장도 세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 후보까지 3위에 머문다면 바른미래당은 지방선거 후 존립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만약 위 여론조사대로 안철수 후보가 ‘서울 입성’은 제쳐두고, 김문수 후보에게도 패해 3위를 기록할 경우 바른미래당은 사실상 와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해 탄생한 바른미래당은 현재까지도 완전히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 친안철수계와 친유승민계는 현재 당명만 같이 쓸 뿐 당사와 당 조직을 모두 별도로 가지고 있다.
 
‘지선 승리’라는 대의를 위해 잠시 ‘정략결혼’을 했지만 당이 광역단체장을 한 곳도 가져오지 못하고 지선에서 참패할 경우 이들은 서로에게 패배 책임을 전가하면서 ‘이혼’ 수순에 들어갈 공산이 높다. 이미 정치권에선 지선 이후 친안계와 친유계가 분열하고 친유계는 한국당에 ‘흡수’되는 식의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중론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손 위원장 역시 자신의 ‘정계 개편’ 시나리오에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안 후보를 동력으로 한 정계개편이 아닌 ‘개헌’을 기치로 한 정계개편이 그것이다. 당의 간판인 안철수 후보와 유승민 대표가 지선 참패 책임론에 시달릴 때 자신은 홍준표 대표와 한국당을 극우로 밀어내면서 개헌 논의를 통해 정계개편을 주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지선 후 ‘개헌’ 재점화 가능성↑,
‘개헌론자’들 ‘급부상’ 할 수도...

 
남북 관계와 지방선거로 인해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있는 ‘개헌 이슈’는 지선이 끝난 뒤 재논의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한국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역시 개헌 불발에 대한 책임 화살을 피해가긴 쉽지 않다. 사실 민주당이 6월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 투표’를 해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밀어붙였던 것은 정말로 개헌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야당의 협조 없이는 정부 발의 개헌안이 국회 통과할 가능성이 없음이 자명한데도 불구하고 무리수를 둔 것은 지방선거 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자신들은 대국민 약속인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야당의 반대 때문에 하지 못한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개헌 쇼’였다는 해석이다.
 
이에 따라 6.13 지방선거 이후, 국민은 한국당은 물론이고 민주당을 향해서도 엄중하게 그 책임을 물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손학규 위원장이나 정의화 전 국회의장,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 등 경륜 있는 ‘개헌론자’들이 정계개편의 중심인물로 떠오를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중앙당 선대위원장이 “개헌은 이제 시작이다. 개헌이 좌절된 것이 아니라 제왕적 개헌 추진이 잘못된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 개헌을 추진해서 총선 이전에 완성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후에 진행될 정계개편을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이를 염두에 둔 발언일 가능성이 크다.
 
손 위원장의 ‘개헌 정계개편’ 구상의 첫 단추는 당권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손 위원장은 향후 총선에 대비한 당권 도전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손 위원장은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홍준표 한국당 대표가 양강 구도의 강화, 보수층의 결집에만 너무 경도돼 있는 것 같다”며 “저는 제가 무엇이 될 것이다. 이런 얘기는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정치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준비해야 된다. 거기서 제가 무슨 역할이든지 마다하지 않고 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상 중도보수 집결을 위한 당권 복귀 가능성을 열어두는 대목이다. 지선 이후 당권을 두고 안철수-유승민-손학규 ‘3인’의 혈투가 예상된다
 
한편 손 위원장이 ‘송파을 불출마’ 입장을 분명히 했음에도 안철수 후보가 당에 ‘손학규 전략공천’을 공개적으로 요구해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안 후보는 지난 17일 “당에서 가장 무게감 있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내는 것이 송파을 지역 유권자들을 위한 도리”라며 손 위원장 ‘송파을 전략공천’ 의지를 피력했다.
 
이에 정치권에선 손 위원장의 입장 변화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진다. 손 위원장 입장에서 ‘경선’은 체면이 서지 않지만 ‘추대’ 형식이라면 못 이기는 척 수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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