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장’ 된 인천공항…“무늬만 정규직”

<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문재인 정부가 노동존중 실현 등을 위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을 시행한 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에는 손도 못 댄 채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에만 속도를 내고 있다는 우려의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공공기관의 인건비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규직 전환에 강경수를 두는 것보다 직무급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1호 사업장으로 지목한 인천공항공사의 ‘정규직화’ 작업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관심이 쏠린다.


- 여전히 반발하는 노조 “근속 경력 인정·용역업체 퇴출”
- ‘제자리걸음’ 11%만 정규직 전환…호봉제 개편은 손도 못 대



문 대통령은 취임 사흘째인 지난해 5월 12일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을 찾아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라고 선언했으며 정일영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비정규직 1만 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의 배경엔 당시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비율이 85.7%로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비율은 공공기관 중 가장 높은 수치였다.

게다가 외주 인력을 파견하는 방식의 간접고용 근로자가 대부분이었다.

그간 계약이 끝날 시점마다 걱정해야 하고 적은 돈을 받아왔던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 대통령의 선언에 환호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문 대통령의 의지대로 성과가 나오기도 했다. 인천공항공사와 노사는 지난해 12월 말 협력사 비정규직 근로자 1만 명 가운데 보안·검색 인원 등 3000명을 직접 고용하고 나머지 비정규직 7000여 명은 자회사 2곳 소속으로 정규직 전환을 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제로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자회사 정규직이 됐을 뿐 사실상 간접고용 노동자 신분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아예 제외된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대성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장은 “밖에서는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이 다 끝난 줄 안다. 전혀 아니다”며 “전환되는 비정규직의 근무체계·복지와 임금 등을 어느 수준으로 할지 논의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책임을 방기하고 인천공항공사는 정부 정책을 왜곡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일방적 직무급
표준임금체계 반대

 

이미 정규직 전환을 마친 몇몇 기관은 노동계 반발 확산 우려에 임금체계 개편을 미루거나 기존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도 마찬가지다. 인천공항공사은 정규직 전환 대상자 가운데 11%가량 전환이 완료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아직 용역·파견업체 소속일 때 받던 임금으로 지급받고 있다.

인천공항공사 임시 자회사로 바뀐 소속은 정규직 신분이지만 임금 및 처우에 대해선 노사 합의에 이르지 못해서다.

아울러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부 노조는 공사가 제안한 정부의 직무급 표준임금체계를 따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내놓은 조리와 사무보조, 청소와 경비 등 5개 직종에 적용되는 임금체계에 따르면 1급 직무(청소 등)에서 1단계의 월급은 157만 원이다. 이후 15년을 근무하면 처음보다 약 10% 월급이 올라간다.

가장 높은 7급 직무는 1단계 205만 원으로 15년이 지나면 246만 원을 받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정부는 직종별로 임금에 차등을 두고 연차에 따라 큰 편차가 나던 것을 대폭 없앴다.

하지만 노조 측은 일방적 직무급 표준임금체계엔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신철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정책기획국장은 “직무급 체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100% 직무급 체계는 안 된다는 말이다”며 “직무급 체계를 반영하되 호봉이나 근속 등이 반영돼야 한다. 이 일환으로서 근속 수당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용역회사 계약 ‘당장 해지’
“노사정 대화로 풀어야”
 


관건은 62개에 달하는 인천공항 용역회사와의 계약 유지 문제다.

공사 측은 최대 2020년까지인 기존 용역 계약이 만료된 뒤 이들 회사 소속 근로자를 인천공항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주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인천공항 용역업체 62곳 가운데 12개 업체의 계약해지 절차가 마무리됐다.

임시법인에 소속돼 있는 12개 업체 소속 1200여 명은 기존 처우와 비슷한 조건으로 일하고 있다. 임시법인은 정규직 전환 형태가 확정되기 전까지 노동자들을 한시적으로 고용한다.

하지만 노조는 ‘당장 해지’를 요구하고 있다. 조속한 기존 계약 해지는 지난해 12월 26일 노·사·전문가 합의안에 담긴 내용이라는 이유에서다.

계약해지를 하지 않으면 정규직 전환이 오는 2020년 7월까지 지연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공공기관별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릴 것을 감안해 기존 용역 계약은 최대한 존중하라”는 지침만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신 국장은 “정일영 사장은 지난해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했을 당시 올해 안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 못 지켰지 않았느냐”면서 “그렇다면 올해 하청업체와의 조기 계약 해지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공사는 어렵다는 핑계만 대고 있다. 계약을 해지할 의지가 없다는 의심이 든다. 용역업체 굴레를 벗는 노동자들이 많아질수록 임금체계 결정을 위한 협의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항공사 측도 할 말이 있다는 입장이다. 공사 측 관계자는 “협력업체와 맺은 계약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는 없다. 정부 가이드라인도 계약 업체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하지 말라고 규정하고 있다. 계약 유지는 불가피하다”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문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대해 아직 노사, 노정 간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할 부분이 많다고 평가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 경영학박사는 “지방자치단체별, 시도교육청 간에는 모호한 기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대상으로 인해 상당한 편차가 존재한다”면서 “같은 직업이더라도 전환 결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대화를 통한 일관된 기준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최대 난제로 떠오른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왔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전문가 중심 직무평가위와 공공부문 노정 교섭구조 구성 등을 주문했다. 노 소장은 “직무급제 이상으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할 수 있는 임금체계는 없다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놓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노사 간 주고받기가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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