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인 생활은 나에게 많은 기회 줬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카페에서 만난 희극인 임혁필 씨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금빛 똑단발, 거만한 표정과 태도, ‘나가 있어!’라는 결정적 한 방. 2000년대 초반 큰 인기를 휩쓸었던 KBS 2TV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세바스찬’이다. 

톤 높은 목소리와 독특한 분장으로 이 캐릭터를 찰떡같이 연기했던 희극인 임혁필. ‘세바스찬’ 이후 공연 기획자, 샌드 아티스트 등 인생 2막을 맞은 그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일요서울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조용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난타’의 송승환 씨처럼 되고파 대사 없는 공연 ‘펀타지쇼’ 기획”
“종편·영화·드라마 많은 시도했지만 ‘개콘’ 출신으로만 기억 돼”




기자의 기억 속 임혁필은 세바스찬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본 그는 생각보다 차분한 사람이었다. 먼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었다.

임 씨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을 안 하니 ‘임혁필 뭐 먹고 살아?’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개콘 이후로 계속 학생들을 가르치고, 샌드 아트 등 많은 활동을 했다”고 근황을 전했다.

샌드 아트란 빛이 뿜어 나오는 상자 위에서 모래를 이용해 감성적인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일컫는다. 모래들이 흩뿌려지고 지워지면서 하나의 장면을 완성해 가는 과정 자체가 예술이다. 희극인에서 샌드 아티스트로 전향이라니,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임 씨는 “나는 원래 공연을 하고, 무대에 서는 사람인 동시에 미술을 한 사람”이라면서 “무대에서 방송 하면서 그림 그릴 수 있는 걸 찾다 보니 ‘샌드 아트’라는 분야가 있단 걸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에게 희극인으로 친숙하지만 사실 대학 시절 서양화를 전공한 재자(才子)다. 미술 활동도 꾸준히 이어왔다. 2010년 개인전을 열었고, 지난달 26일부터 지난 8일까지 서울 소재의 ‘에코락(樂)갤러리’에서 이광기, 남궁옥분 등과 ‘슈퍼 아스트라(Super astra)’라는 제목의 단체전을 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7일부터 현대 백화점 투어 전시도 시작했다.
 
미술·퍼포먼스 재능 살려
샌드 아티스트 활동 시작
 

그가 미술과 퍼포먼스라는 자신의 재능을 모두 담은 샌드 아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2010년 ‘펀타지쇼(funtasy show)’라는 공연을 통해서다. 그가 직접 기획과 대본은 물론 출연까지 맡았다.

대사가 없는 비언어 형식의 ‘펀타지쇼’는 2010년부터 작년 4~5월경 까지 지속적으로 공연을 이어간 장수 콘텐츠다.

임 씨는 “‘난타’의 송승환 씨처럼 되는 게 꿈이었다”면서 “코미디는 언어 장벽이 있어 국내에서만 소비되는 등 (관객층이) 국한된다. 대사 없는 공연을 해 외국인들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공연 취지를 전했다.

한창 공연 이야기를 이어가다 임 씨에게 현 개그계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1997년 KBS 13기 공채 희극인으로 데뷔한 21년 차 중견 희극인이다. 박성호, 갈갈이 박준형, 느끼남 이승환 등 굵직한 인물들과 개그계의 한 시절을 풍미했었다.

임 씨는 “우리나라처럼 개그가 단명하는 곳이 없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음악 분야의 경우 가수도 늙어 가면서 내가 설 무대가 있고, 시청자도 내가 좋아하는 가수와 함께 늙어가며 볼 수 있는 프로가 있지 않느냐고 예를 들었다.

반면 코미디는 어린이, 중·고등학생, 2·30대, 4·50대 등 전부 ‘개콘’만 보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코미디 빅리그’나 ‘개콘’이 젊은 세대를 노린다면 시사 코미디, 성인 코미디, 정치 풍자 코미디 등 중장년층을 노리는 코미디가 있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또한 임 씨는 “희극인들처럼 배우이면서 아이디어도 짜고, 소품도 직접 알아보고, 연출 감각도 있는 사람들이 드물다”면서 “희극인은 3박자를 다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건 재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예술가 성향을 지닌 희극인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새로운 장(場)을 만들거나, 예능으로 진출하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공연·전시·기획자 등
개그가 ‘기회’ 됐다
 

임 씨 역시 ‘유튜브’라는 새로운 통로를 개척 중에 있다. 유명 동요 작곡가 부부와 함께 ‘뮤벤저스’라는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것.

그는 “사실 예전부터 (그분들이) 앨범을 발매하면 (내가) 샌드 아트로 영상을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이 오가기는 했다”면서 “내가 시각·예술 부분을 담당하고 그 분들이 작사·작곡한 걸 뭉쳐 유튜브로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뮤벤저스’ 작업은 임 씨에게 새로운 돌파구다. 그는 “희극인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게 음원이나 저작권이 없어서인 것 같다”면서 “나도 ‘나가 있어’라는 유행어가 있지만 유행어와 유행가는 정말 다르다”고 말했다.

임 씨에 따르면 유행가의 경우 ‘응답하라 1988’보면서 ‘그때 내가 저 노래 좋아했어’하면서 다시 역주행을 할 수 있지만, ‘나가 있어’라는 유행어를 던지면 ‘언제 적 개그야. 너나 나가’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즉,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개그에도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단 뜻이다.

‘개콘’ 출신으로서의 고충도 토로했다. 임 씨는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다. 아이들이 ‘세바스찬’을 아느냐고 묻자 “누가 와서 (나에게) 알은체를 한다거나 사진 찍어 달라하면 (아이들은) ‘우리 아빠 뭐지? 왜 우리 아빠랑 사진을 찍지?’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뒤 ‘왜 요새 방송 안 해’라고 묻는다”고 전했다.

임 씨는 “방송 (출연) 시도를 안 한 건 아니다. ‘6시 내고향’도 1년 넘게 했고, 다른 종편 프로그램, 영화, 일일드라마도 했었는데 (대중이) 잘 모른다”고 얘기했다. 개콘 출신은 개콘 출신으로만 기억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교수, 기획자, 샌드 아티스트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그. 그중 무엇이 가장 적성에 맞을까.

임 씨는 “나는 원래 내성적인 사람”이라 고백하며 “그림을 그린 후에는 ‘나를 어떻게 평가해 줄까’, 개그를 할 때는 ‘오늘 잘해야 하는데’ 등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중요한 건 개그, 그림, 샌드 아트, 공연 등을 구분하지 않는다. 다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개그를 하기 때문에 그림을 (계속) 할 수 있었고 샌드 아트, 공연, 유튜브도 (도전) 할 수 있었다. 희극인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많은 기회가 온 것이고, 앞으로 그럴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그와 미술 활동을 이어가는 그에게 새로운 별칭이 하나 생겼다. 바로 아트와 엔터테이너를 접목한 ‘아트테이너’가 그것이다. 그에게 이 호칭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임 씨는 “너무 감사하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현대에 와서 ‘아트테이너’라는 말이 생긴 거다. 사실 ‘딴따라’라는 말은 (상대를) 비하하는 말이기도 하다. ‘너는 광대야’라고 말하는 것”이라면서 “그 앞에 ‘아트’를 붙여 줬으니 ‘예술적인 광대’가 된 것 아닌가”하며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