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석 들어서는 30초간의 정적에 야구 팬들도 당혹… KBO 응원 문화 흔들
- 일각에선 구단별 고유 콘텐츠 개발이 근본적인 저작권 논란 해결책 대두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부산 갈매기, 부산 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얼마 전까지 롯데의 경기가 고조되는 순간 어김없이 흘러나왔던 노래 ‘부산 갈매기’가 지난 1일을 기점을 야구장에서 사라졌다. 그간 특정 곡의 일부분을 인용해 사용하던 응원가, 특히 등장곡 등이 일제히 중단되며 야구장을 달구던 팬들의 열기도 한풀 꺾인 모양새다. 저작권료를 두고 구단과 원작자들의 갈등만 깊어지고 있다.
 
프로야구 시즌이 개막하면 야구장은 팬들의 함성과 더불어 흥겨운 최신 음악, 화끈한 춤과 이벤트 등을 선보이며 축제의 장을 만들어 왔다.

특히 관중들은 선수의 응원가를 힘차게 부르며 경기 내내 쉬지 않고 흥에 겨워 즐기는 모습은 KBO리그의 독특한 관중석 문화로 자리 잡아 왔다.

하지만 최근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경기장을 찾아도 예전만큼 흥이 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구단마다 특정 선수를 위해 불렀던 응원가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KBO와 프로야구 10개 구단은 지난 1일부터 홈팀 선수들의 타석 또는 마운드에 들어설 때 야구장에 나오는 응원가를 틀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번 응원가 중단의 발단은 앞서 지난달 작사 작곡가 20여 명이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저작인격권 관련 공동소송 소장을 접수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KBO와 10개 구단들은 공동대응에 나서면서 원만한 해결을 보기 전까지는 응원가를 일절 틀지 않을 방침이다.

덕분에 선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까지 30초 남짓한 시간에 정적이 흐르거나 2000년대 초반에 사용하던 팡파레가 흘러나오고 있다. 야구팬들 역시 아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 야구팬은 “선수가 배경음악 없이 썰렁한 분위기에 타석에 서는 모습을 보니 흥이 나지 않는다”며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르는 게 값…
이적 시 낭비 논란도

 
그간 KBO와 10개 구단은 야구장에서 사용하는 음악에 대해 공식적으로 저작권료를 지불해 왔다.

이들은 응원가 원곡, 선수 등장곡, 치어리더 음악 등의 저작권료를 2013년부터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지불해왔다.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와 한국음반산업협회에게는 2011년부터 지급해 왔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사용하는 응원가의 대부분은 원곡의 일부를 임의로 발췌하거나 편곡해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간 주로 거론됐던 지적재산권과는 다른 ‘저작인격권’이 문제가 되고 있다.

KBO와 구단들은 원곡을 그대로 쓸 경우 저작권료만 내면되지만 편집이나 개사를 할 경우 저작인격권 사용료를 내야 한다.

이는 저작물의 내용이나 형식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 즉 동일성유지권이 핵심으로 저작물의 내용, 형식 등을 개사하거나 변경 행위를 할 경우 반드시 원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번에 소송을 낸 작사·작곡가들은 구단들이 멋대로 바꿨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는 2016년 처음 불거졌다. 당시 KBO 측은 저작인격권 규정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바뀐 것은 없었다. KBO가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다.

KBO 관계자는 “소장을 법적으로 검토하면서 답변서를 제출하기 위해 만들고 있다”며 “이미 2016년부터 저작인격권에 대한 인식을 갖기 시작했고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 왔는데 법적 분쟁으로 이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KBO는 이번 소송과 별개로 또 다른 저작권자들과 협의 중이라면서도 “소송이 이미 시작됐기 때문에 소송 중 합의점을 찾으면 소송을 취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법원의 판결을 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KBO는 선수 등장곡을 당분간 틀지 않기로 하고 법률사무소 ‘김앤장’을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한 상태다.

그러나 구단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어 갈등 해결까지는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구단들은 이미 저작권료를 지급하고 있기에 자칫 이중으로 비용을 또 지출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했다.

더욱이 저작인격권은 그 특성상 특정 단체가 아니라 각기 다른 원작자들과 일일이 협상해야 하기 때문에 합의과정이 상당히 복잡하다는 것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금액도 문제다.

구단은 원작자와 대개 곡당 50만 원~300만 원선에서 저작인격권료 협상을 시도하지만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원작자들은 보통 20초 안팎에 불과한 선수 응원가를 두고 수천만 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양측의 입장 차를 좁히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구단들로서는 선수 당 많게는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등장곡을 부담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선수들이 이적을 할 경우 사놓은 응원가도 유명무실해지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어 기존의 등장곡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홍보 효과 무시 vs
자존심 문제 격론

 
이 때문에 저작인격권을 두고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야구팬들을 비롯해 일반 시민들도 문제를 제기한 작사·작곡가들에게 우호적이지는 않다. 특히 이번 소송에 저작권료 상위권에 있는 윤일상, 김도훈 등 인기 작곡가들이 합류하면서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가요계 관계자는 일부 비율이 정해져 있는 저작재산권과 달리 저작인격권은 부르는 게 값이라면서 “야구단을 운영하는 곳이 돈이 많고 대부분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대기업인 것을 악용하는 셈”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야구팬들 역시 음악의 편집 및 편곡은 구단이나 선수들이 개인의 상업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기장 내 다수 팬들을 위한 볼거리에 가깝다며 오히려 야구장에 응원가로 사용돼 원곡까지 재평가 받거나 홍보효과를 누리는 경우까지 감안할 때 원작자들의 요구가 다소 무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원작자들은 액수를 떠나 창작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 항변한다.

실제 한 응원가를 두고 원곡자들은 ‘슬픈 느낌’의 곡으로 만들었는데 구단에서 특정 부분만 틀어 곡 전체의 느낌이 달라지게 됐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또 두산베어스는 박현빈의 노래 ‘핫 뜨거’를 개사해 3년 이상 응원가로 사용하다 지난해 원작자의 항의를 받고 다른 노래로 바꾸기도 하는 등 무단으로 개사와 편곡이 되면서 의도가 왜곡되고 있다는 게 원작자들의 불만이다.

한 음반사 관계자는 “자존심이 강한 창작자는 한 곡을 완전한 작품으로 보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번 소송은 일종의 명예훼손에 대한 경고”라며 “KBO와 구단들이 멋대로 개사를 한 뒤 이어지는 합의에서도 진정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선수들 연봉으로는 쉽게 수십억 원을 챙겨주는 구단들이 그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지만 중요한 저작인격권료를 너무 아까워한다는 것은 올바른 인식 부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두고 가요계에서도 정당성을 두고 공방이 오간다.

야구장에서 사용되는 음악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도 이번 소송이 너무 나아갔다는 아쉬운 소리도 들린다.

가요계 일부에서는 “작곡가 입장이 이해는 가지만 노래라는 것은 대중의 인기로 먹고 사는 것 아니냐. 특히 대중음악은 많은 이들이 듣고 불러야 빛이 난다”며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번 사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구단별 고유의 콘텐츠를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음원유통 관계자는 “구단별로 선수 등장곡 또는 응원가를 공모해서 사용하면 좋을 듯하다. 선정된 곡에는 상금을 주고 권한은 구단이 가지면 양측이 윈윈하지 않겠냐”고 조언했다.

그간 남의 창작물을 손쉽게 가져다 쓰기만 하는 문화에서 궁극적으로 구단별로 고유의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내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데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물론 당장 바꾸기에는 무리일 수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지난해 넥센 히어로즈의 경우 저작권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옛날 노래나 클래식 음악을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다소 조잡한 품질 등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비웃음 사기도 했다. 또 짧은 분량이지만 팬들의 까다로운 눈높이를 맞추기 힘들다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진 환경에 맞춰 응원가를 비롯해 응원 문화를 바꿀 필요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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