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을 위한 농협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올 초 썬앤문 대출사건부터 제 17대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다수의 부정·비리사건에 이르기까지 농협의 실체를 들여다본 농민들은 숨이 턱턱 막힌다. 전국의 농민들은 갈수록 악화되는 농업환경에 생계마저 위협받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작 농협 내부 직원들은 높은 연봉을 받으며 배를 불리고, 나태함과 모럴해저드에 빠져 온갖 횡령·유용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농협의 중심기둥인 정대근 회장 역시 각종 사건에 연루돼 도덕성을 의심받고 있기는 마찬가지. 업계전문가들은 “농협이 자체적으로 조직 부패의 원인을 찾아내고, 대안을 마련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한참 멀다”며 답답해하고 있다.농협 개혁이 시급하다.

금융사고율1위, 세금탈루의혹,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횡령사고 다발 등 농협을 향해 날아드는 비난의 화살이 하염없이 늘고 있지만 오히려 농협은 태연히 연봉을 올리며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다. 지난 18일 열린우리당 조일현 의원은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정대근 농협중앙회 회장의 연봉이 6억 3,5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정대근 중앙회장의 연봉은 2년 사이 2억 2,500만원이 상승한 4억 4,500만원. 별도로 1억 9,000만원의 업무 추진비가 지급돼 연봉, 성과급, 경영수당, 업무추진비를 모두 합하면 정대근 회장 앞으로 떨어지는 급여가 무려 6억 3,500만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정 회장의 보수가 2년간 2억 2,500만원 상승하는 동안 농가인구는 지난 99년 이후 421만명에서 353만명으로 68만명이나 감소했고, 1호당 농가부채는 1,854만원에서 2,662만원으로 808만원이나 상승했다.

조일현 의원은 “농협은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통해 농업생활력의 증진과 농민의 경제적·사회적 지위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이라며 “농민의 삶은 피폐해졌는데, 중앙회장은 매해 직원들의 연봉을 올려 조직만 키우고 있다”고 비난했다. 조 의원의 조사에 따르면 조합원의 평균 연봉은 2001년 4,700만원에서 지난해 6,400만원으로 2년새 36%나 올랐다. 동시에 농협 임원진들도 100% 임금이 인상됐다. 더군다나 농협중앙회는 지난 2002년 연봉을 6,800만원이나 인상, 성과급을 신설했다. 지난해는 성과급이 5,800만원이나 늘고, 1인당 업무추진비는 줄이는 대신 지난해 연간 3,000만원의 경영수당도 신설했다. 특히 조합당 2,600만원씩 지출되는 업무추진비는 가장 많은 논란이 되는 부분, 업무추진비를 4억 7,600만원이나 지출하는 조합도 있고 업무추진비가 2억원 이상인 곳도 9곳을 넘었다.

조 의원은 “판공비·활동비·품위유지비 등으로 불리는 업무추진비는 각 사용내역과 금액을 농협측이 공개하지 않아 의혹을 키운다”고 말했다.업계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는 내부 조직의 행태에 대해 “모호한 농협의 정체성이 원인이다”라고 지적했다. ‘농민을 위한 기관’임을 자처하는 농협은 연간 수조원대에 이르는 정부의 농업정책 자금 집행을 대행하며 정부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농민에게 저리의 융자금을 제공하는 대신 일반 이율과 이자 차액을 국가로부터 받는 기관이다. 그런데 농협이 점점 금융기관으로서 이익 거두기에만 혈안이 된 모습이다. 농협의 터무니없는 예대마진(대출이자에서 예금이자를 뺀 나머지 부분)을 살펴보면 농협의 부당한 수익체계를 엿볼 수 있다. 가장 예대마진이 적은 외환은행과 비교하면 최소 1.15%에서 최대 1.73%나 차이가 나고, 가장 예대마진이 큰 조흥은행과 비교해도 최대 0.9%나 차이가 나, 최대의 예대마진을 보이고 있다. 농협의 여수신 규모는 200조 가량으로 외환은행보다 1조 1,500억~1조 7,300억원을 더 거둔 셈이다.

또한 카드수수료나 현금자동지급기 수수료를 인상해 2,300억원의 수수료 이득이 증가했다. 농협의 수수료 수익만도 지난해 말 기준 5,898억원이다.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로 금융사고율이 높은 농협은 정대근 회장의 도덕성 여부도 비난의 도마위에 올랐다. 농협은 금융 총수신고가 165조원에 달해 금융권 1위인 국민은행보다 규모가 크고, 총자산 264조원으로 한국전력(91조원)에 비해 무려 3배나 덩치가 큰 조직이다. 이 조직을 지난 99년부터 6년째 맡고 있는 중심자가 바로 정대근 농협 중앙회장이다. 그러나 정 회장은 올 2월 불법 대선자금 의혹 진상조사 청문회에서 썬앤문그룹의 농협 불법대출과 관련해 증인 신문을 받은바 있다. 김성래 전 썬앤문 부회장이 2002년 하반기 농협에서 115억원의 불법 대출을 추진하며 정대근 농협 중앙회장을 만난 것에 대해 이번 국감에서도 대출 로비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그러나 정 회장은 “김씨를 만난 적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최근에 발생한 불법 파생상품 거래 비리에도 정 회장이 관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퍼졌다. 조그만 컨설팅업체인 T사가 농협중앙회의 자문계약을 따낸 것에 대해 농협 고위층의 로비가 없이 이뤄지기는 힘들다는 소문과 함께 정 회장의 이름이 거론됐다. 특히 정 회장과 T사 대표가 같은 헬스클럽에 다니고, 고향도 가까워 서로 잘 아는 사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또 T사 대표가 자문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은행권 고객들에게 “정 회장을 몇 번 독대했다”며 자신의 아버지와 정 회장간의 친분을 과시했다는 말도 나왔다.이에 정 회장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며, 파생상품은 사실 잘 몰라 과장에게 업무를 전담시켰다”고 답했다.

수입제품판매 점차 늘리는 농협

수입양주·와인물량 급증 … 수입 농수산물도‘원산지:국산’으로 표기된 제품만을 판매하는 농협 하나로클럽 내부에서 일부 수입농수산물이 취급되고 수입양주와 와인이 전통주 판매를 앞지른 것으로 파악됐다.농협 공판장을 통해 판매된 오렌지, 바나나, 레몬 등의 수입농산물 취급물량은 해마다 증가. 지난 2002년 2.8%, 2003년 2.9%로 미미했지만 올 상반기에는 수입농산물 비중이 4.9%까지 높아졌다. 그 규모도 2002년 4만 5,416톤, 2003년 2만9,206톤이며 올 상반기에만 벌써 4만톤에 이른다.

열린우리당 한광원 의원은 “농협의 수입농산물 취급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취급 물량이 점점 증가하고 있고 그동안 농협이 ‘수입농산물을 취급하지 않겠다’며 추방결의 대회를 벌였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하나로클럽을 통해 “고급양주와 와인이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구심이 들지 않느냐”는 지적도 높다. 양재 하나로클럽을 통해 판매된 수입 양주와 와인 매출액은 각각 9억3,600만원, 5억2,800만원이다. 반면 과일주와 전통주는 3억7,300만원, 5억3,300만원이 팔렸고, 국산 양주와 와인의 매출은 겨우 1,100만원, 1억1,000만원이다.

전국 11개 하나로클럽을 통해 판매된 주류 매출을 살펴봐도 수입양주 매출액은 24억3,800만원, 수입와인 매출액은 12억8,500만원을 넘지만 과일주와 전통주는 각각 8억6,100만원, 20억400만원으로 점점 수입주류에 전통주가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농협중앙회측은 “민간 도매법인과 경쟁관계에 있는 농협 중간 도매인이 상품 구색을 갖춰 영업에 지장을 받지 않는 선에서 수입산을 제한적으로 취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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