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10월 28일 대한생명을 헐값에 인수해 논란이 됐던 한화그룹(한화컨소시엄)이 제 17대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이종구의원의 ‘정부의 특혜 의혹’ 제기로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이에 대한생명인수를 진두진휘했던 김승연 한화 회장은 해외출장을 이유로 국정감사 증인 출두를 거부, 대한생명 노조측은 회사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까 쉬쉬, 한화그룹은 ‘정당한 인수’였다고 일관,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인수 자격으로 논란을 빚은 한화그룹이 대한생명을 인수하기까지 제기됐던 여러 가지의 의혹들, 지금도 ‘헐값 매각 특혜 의혹’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고 국민들의 코를 자극하고 있다.

현재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지난 2002년 1월 대선을 앞두고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채권 10억원을 불법으로 건넨 혐의’로 불구속 기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보험업법 제 13조 ‘임원의 자격’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는 임원 자격을 박탈하게 돼 있다. 때문에 김 회장은 지난 9월 23일 1심 공판에서 “대한생명 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벌금형을 선고해 달라”며 재판부에 호소도 했고, 1심에 불복해 항소장도 접수했다. 엎친데 덮친격, 김회장은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대한생명인수와 관련 ‘비자금 지원이 있지 않았냐’는 의혹까지 더해져, 짙은 먹구름 아래다. 이번 국감을 통해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대한생명 매각 특혜와 관련 매각 가격의 적정성과 자격, 공자위(공적자금위원회) 매각소위 보고서 변경경위, 청와대 외압여부에 대해 한화그룹을 집중 질타했다.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대한생명 매각의 ‘헐값 인수’와 관련된 구체적인 자료와 공자위 사무국의 ‘보고서 바꿔치기’를 입증하는 이메일과 보고서는 ‘특혜’를 의심케하는 결정적인 부분이다. 먼저 살펴볼 부분은 대한생명의 인수가격. 당시 한화컨소시엄의 대한생명 인수가격은 1조 6,150억원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1년 9월에 투입된 정부의 공적자금 1조 5,000억원 출자로 실제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가격은 1,150억원에 불과했다. 또 의례적으로 공적자금이 전액 즉각 투입되는 것에 반해 한화는 지분매각대금의 절반가량인 4,118억원을 그해 12월에 지불, 나머지 잔금은 올해 12월에 지불할 예정이다. 이 부분에서 이종구의원은 “공적자금 투입과 관련해 예금보험공사가 대한생명의 가치를 지나치게 저평가, 정부가 한화에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예금보험공사가 예상한 추가공적자금 투입시 당기순이익은 65억원, 그러나 실제 2001년 대한생명의 당기순이익은 8,884억원으로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지난 2002년 대한생명 인수 당시에는 인수 ‘가격’보다는 ‘자격’이 더 큰 논란거리였다. 퇴출된 한화종금과 충청은행의 대주주인 한화그룹은 당시 한화종금의 금융계열사 부실로 약 1조 5,000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았고, 충청은행까지 합치면 무려 3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받은 기업이었다. 또 한화의 계열사인 (주)한화, 한화석유화학, 한화유통이 3,310억원, 1,214억원, 3,554억원 등 총 8,078억원의 금액을 분식회계로 적자를 흑자로 치장, 2002년 3월 14일 관련 권고 조치를 받았다.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자격 여부는 이미 99년부터 논란이 됐다. 한화그룹은 2·3차 대한생명 입찰에 참여했으나 자금조달 능력과 부실 경영으로 모두 탈락됐다.

그러나 당시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인수희망자의 자격여부를 따지는 것보다 가격이 중요하다”며 한화 측을 두둔, 정부의 ‘특혜설’이 솔솔 피기 시작했다.또한 대한생명 매각과 관련 매각소위 위원들이 “한화그룹은 대한생명을 인수할 자격이 없다”는 의견을 내며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를 반대했지만 공자위 본회의에 최종적으로 올려진 보고서는 사실과 뒤바뀌어 제출됐다는 점에 ‘특혜’ 시비는 본격화 됐다. 당시 매각심사소위의 소위원 4명중 3명은 한화그룹의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등 보험사 인수자격 요건이 불충분하고 매각가격이 턱없이 낮다는 이유로 한화인수에 반대했다. 소위위원이었던 한누리 법무법인 김주영 변호사는 “한화그룹의 인수자격에 문제가 있어 위원들 모두 반대한 것으로 아는데, 사무국에서는 언론에 그리 전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무국의 보고서 수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

최종 결과 보고서가 공자위 본회의에 상정되던 2002년 6월19일 하루 전날 “허위 내용으로 공문서를 작성한 것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내용으로 항의 이메일을 보냈다. 지난 2002년 정무위 국감에서는 정형근 의원이 “박지원 비서실장이 나서서 윤진식 재경부 차관에게 대한생명 매각은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니 9월 5일 공자위 회의서 매듭지으라고 부탁했다”며 한화의 인수과련 로비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대한생명 매각 이후의 한화그룹의 행보도 찜찜하다. 한화그룹은 일본 소매금융 전문회사인 오릭스를 통해 대한생명 융자사업 부문의 개인대출과 중소기업 대출 리스크 관리 등을 지원, 특히 오릭스의 선진 소비자금융 시스템을 대한생명 개인대출 부문과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맥커리를 통해 대한생명 유가증권 운용의 포트폴리오 재구축, 선진투자 프로세스 구축 등에 참여할 계획이라 밝힌 바 있다.그러나 해외파트너들은 인수이후 발 빠르게 지분을 매각해 대한생명에서 빠져나갔다. 맥커리는 1년간의 보호예수기간이 끝난 지난 2003년 12월 15일 보유지분 전량을 한화에 매각. 오릭스도 두차례에 걸쳐 콜옵션 권리를 한화 계열사에 양도하고 권리 이전 대가로 210억원을 수령했다. 이 모든 정황에 대해 여전히 한화그룹 측은 “헐값 매각과 무자격, 청와대 로비설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입찰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경실련은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특혜 의혹에 대해 국회의 국정 조사를 촉구하는 서명을 제출, 의혹의 베일이 벗겨지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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