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1월 회장 취임 이후 9년째 코오롱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웅렬 회장이 최근 ‘경영 악화’, ‘장기파업’, 그리고 ‘횡령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이 회장의 시련은 ‘장기 불황’으로부터 시작됐다. 화학섬유 업계는 사상 최악의 상황을 맞아 고전하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섬유경기가 바닥을 기고 있는 데다 원료가 상승으로 원가압박 요인까지 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화섬업계 선두주자인 코오롱도 불황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해에 창사 이래 처음으로 680여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도 적자의 늪을 헤어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이에 따라 이 회장의 경영능력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에 이 회장은 강력한 구조조정 추진 방침을 세우며,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그러나‘장기 파업’으로 또 한번의 걸림돌을 맞아야 했다. 6월부터 시작된 코오롱 구미공장 파업사태가 두달여간 이어진 것이다. 당시 노사 양측은 구미공장의 노후설비 철거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과 임금인상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가운데, 지난 8월말 노사가 극적 타결을 보면서 파업사태는 마무리됐다. 하지만 코오롱측은 650억원이 넘는 매출 차질은 물론 기계설비 가동중단에 따른 거래선 이탈 및 1,000억원대의 손실을 떠안아야 했다.그리고 장기파업의 악몽이 채 가시기 전에 이 회장에게 또 시련이 찾아왔다. 최근 코오롱그룹의 유일한 금융계열사인 코오롱캐피탈에서 대형 횡령사건이 발생했다. 단일 금융사고로는 사상 최대로, 코오롱캐피탈 총자산의 52.9%에 해당되는 472억원의 횡령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번 횡령사건은 하나은행이 지분인수과정에서 2주간 실사작업을 통해 밝혀낸 것이다. 이에 반해 코오롱그룹은 지난 6년간 코오롱 임원의 횡령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에 따라 코오롱 그룹은 경영투명성과 내부 감시 체제 허술 등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났다.특히 이 횡령 사건은 코오롱이 그룹차원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하나은행에 지분을 일부 매각한 뒤 발생한 것이어서, 그룹 구조조정에도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됐다. 이 회장과 코오롱측은 횡령사건의 조기해결을 위해 ‘각 계열사들의 유상증자 참여 방식으로 보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784억원인 자본금을 311억원으로 줄인 뒤 횡령액인 473억원을 전액 결손처리한 뒤, 유상증자로 보전한다’는 것이다.

이번 유상증자에는 코오롱캐피탈의 최대주주인 코오롱이 251억원, 코오롱건설 68억원, 코오롱제약 58억원, 그리고 이웅렬 회장은 43억원을 출자할 예정이다.그러나 이런 계획에 노조가 강력히 제동을 걸고 나섰다. 코오롱·코오롱건설 노조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유상증자를 결정한 것은 책임이 없는 계열사 직원들에게 횡령피해를 떠넘기는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유상증자를 철폐해야 하며 이웅렬 회장에게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묻겠다”며 이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이와 함께 노조는 “코오롱건설의 경우 지난해 벌어들인 113억원의 당기순이익 가운데 절반 이상을 손실보전에 쏟아 부어야 하는 기막힌 상황”이라며 “이번 횡령사건의 손실액은 이 회장이 사재를 털어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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