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 후 대부분의 언론들과 친북 인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폐쇄된 개성공단을 재개시키고, 금강산 관광길도 다시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연장선에서 남북 경제협력 확대와 인천항을 거점으로 한 교류 활성화를 위한 '남북 경제협력 TF'가 출범하기도 했다. 남북 문화 교류와 각종 국제 스포츠대회에 남북 단일팀이 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심지어 “대동강맥주에 들쭉술로 폭탄주 마시자”는 환호까지 일었다.
이와 함께 김정은과 북한에 대한 과대포장도 심해졌다. 언론들이 남북관계 해빙을 맞아 ‘김정은 모에화(특정 대상을 소년이나 소녀, 귀여운 동물 등 호감도 높은 대상으로 묘사하는 것)’에 앞장섰다. 덕분에 김정은에 대한 이미지 변신이 놀라운 지경이다.
정상회담 전 그의 이미지가 ‘긍정적'이란 대답이 단 4.7%에 불과했으나 회담 후에는 48.3%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북한을 바라보는 청년층의 시선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 대학교 1학년 학생 1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북정상회담 이전에는 66.1%가 북한 이미지에 ‘부정적’이라고 답했으나 이후 57.3%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평화 공세가 먹혀들고 있다는 방증일 게다.
그랬던 북한이 한미 군사훈련을 문제 삼아 돌연 남북 고위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데 이어 미북회담 취소까지 거론하는 등 강경 자세를 보이자 우리정부가 당혹스러워 했다. 국민들도 북한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에 어리둥절해 하면서 혹시 김정은에 놀아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오는 11월의 중간 선거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트럼프의 고민 또한 깊어 보였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중지에 더 큰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다시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과연 북한의 비핵화가 성공할 수 있을까? 또 비핵화가 성공하면 한반도에 정말로 영원한 평화가 올 것인지?를 말이다.
거듭 말한 대로 월남은 남북평화선언 후 불과 2년 만에 월맹에 침공 당했다. 당시 미국의 키신저는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월남과 월맹이 평화선언을 했기 때문에 적어도 10년간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했지만, 월맹군과 베트콩은 미군이 철수하자 물밀 듯이 내려와 월남을 간단하게 점령했다. 철수한 미군은 더 이상 월남에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우리가 침공당하면 미군이 즉시 파견되도록 되어있긴 하나 ‘의회의 동의’라는 피하지 못할 단서가 붙어 있다. 미군이 월남에 다시 파견되지 않은 것은 당시 미국 전역에 번져가고 있던 반전(反戰)무드로 인해 의회가 파견 승인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반전 분위기는 앞으로 미국사회에 더 강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월남이 미월동맹조약만 굳게 믿고 있다가 당한 것처럼 우리도 한미동맹에만 의지하다가는 큰코 다칠 수 있다는 얘기다.
통일이라는 말에 대한 해석 또한 입만 열면 ‘통일’을 외치는 북한의 통일에 대한 개념이 우리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구별이 돼야 할 일이며, 남북관계의 해빙무드는 뜨거운 가슴으로 환영할 일이나 평화만큼은 그것이 어떤 평화인지를 차가운 머리로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또 북한과 미국의 가슴 속 밑바닥 생각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고재구 회장  ily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