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5월24일 돌연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보낸 서한에서 “최근 당신들의 발언들에 나타난 극도의 분노와 공개적 적대감을 보건대 애석하게도 지금 시점에서 회담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트럼프의 미·북정상회담 취소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들은 “믿을 수 없다” “진의 파악을 해봐야 한다”며 충격에 빠졌다. 대체적으로 언론과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정상회담 취소 ‘진의’로 김정은의 최근 대미 강경 비난태도를 지적했다. 김정은은 외무성 부상(차관)들을 동원해 미국의 ‘리비아식 북핵 폐기 모델’ 요구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주장을 반대하며 북·미정상회담도 취소될 수 있다고 협박했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미·북정상회담 취소 진의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불신으로 연장된다는 데 주목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문 대통령은 올 3월 초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백악관으로 보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트럼프를 “되도록 빨리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고 전 했다. 또한 김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위해 대북 문턱을 낮춰 달라고 설득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미·북정상회담 중재를 즉각 받아들였다. 트럼프의 정상회담 수락을 계기로 트럼프·문재인의 노벨평화상 수상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노벨상 수상을 위해 완전한 북핵 폐기 보다는 미·북정상회담 성사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냐는 불신도 나돌았다. 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김정은 편으로 기우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게도 했다.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이 친북·북반미로 경도되었던 지난날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거기에 더 해 문 대통령은 4월 27일 김정은과의 판문점회담 이후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는 분위기 연출에 적극 나섰다. 문 대통령은 김과의 ‘판문점 선언’에서 비핵화에 관해선 맨 끝 부분에서 3문장으로 짧게 언급하는 것으로 그쳤다. 김은 공동발표에서 비핵화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치 않았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쇼에 넘어간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5월 22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동에서 김정은이 성의를 보인 만큼 북한을 달래 회담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 강공 자세에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언젠가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김정은에 대해 긍정적으로 얘기한 게 사실과 다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고도 한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편으로 기운다는 불신 표출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선임 대통령들이 지난 25년간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북한 김씨 왕조에 기만당한다는 불안감에 빠졌다. 거기에 더해 한국마저 미·북정상회담에서 북한 편으로 기운다는 불신에 잠겼다. 트럼프는 북핵 폐기 문제에서 한국이 북한 편에 선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취소는 김정은과 문 대통령 둘에게 던진 불신과 경고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이서 ‘중재자’ 또는 ‘특사’ 역할이 아니라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추구하는 혈맹 미국과 흔들림 없는 공조로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정쩡한 ‘중재자’로 설 때 북핵 폐기의 기회도 잃고 한·미동맹도 잃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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