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후판 가격문제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내수 침체 장기화로 경영난이 가중되고, 원료·납품 가격의 급등으로 수출마저 둔화 돼,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업계 간 공방이 뜨겁다. 더군다나 당분간 내수시장이 활황을 맞거나 원료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이 적어 철강·조선업체 모두 암담한 표정이다. 철강 가격 갈등의 도화선은 중국발 쇼크로 시작된 ‘철강 대란’이었다. 엄청난 양의 철강재를 수입하는 중국 때문에 철광석을 비롯한 원자재와 철강재 가격이 급등하자 철강업계는 이를 제품 가격으로 전가, 조선업체와 갈등을 낳고 있다. 당장 조선업계는 후판공급부족으로 수익성에 비상등이 켜졌다.

조선업계는 “철강제품 가격이 치솟아 선복 수주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며 “국내 공급량을 늘리고 최근 오름세인 후판 가격을 내려 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이에 포스코·동국제강 등 철강업체 관계자들은 “국제가격이 올라 오히려 지금보다 더 올려야 할 판”이라며 “내수공급가격이 수입가에 비해 이미 20~30%싸기 때문에 가격을 내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라고 반박했다.현재 포스코와 동국제강이 공급하는 선박용 후판 가격은 각각 톤당 55만원, 75만원대.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15만~33만원씩 올랐다. 특히 후판 원료인 슬라브를 수입하는 동국제강은 올해 다섯 차례나 가격인상을 했다. 국내뿐 아니라 일본 업체들도 오는 4분기부터 내년 1분기까지 후판 수출 가격을 톤당 150~200달러까지 올려 600~650달러를 받겠다고 선언해 조선업계는 ‘설상가상’ 상태다. 현재 일본에서 30%가량 원료를 수입하고 있는 조선업계는 “일본 철강업계의 가격인상에도 강력히 대처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반면 철강업계는 “조선업계가 철강제품의 가격 인상만을 탓할게 아니라 선박의 저가 수주를 자제하고 내부 경영혁신 등을 통해 원가 상승분을 상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신 포스코는 ‘가격인하는 무리’지만 내년 중 압연라인 증설과 노후설비 교체 등을 통해 후판 생산능력을 현재 330만톤에서 오는 2008년까지 380만톤으로 50만톤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열연강판 생산설비를 신설해 후판 대신 쓸 수 있는 열연강판을 연간 40만톤 이상 증산, 국내 조선업계에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포스코는 후판 공급량 확대로 현재 70% 수준인 후판 국내 자급률이 85%로 높아지고 후판 부족현상이 일정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최근 조선 산업의 활황에 따라 후판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으나 국내 공급사인 포스코와 동국제강이 생산 능력의 한계를 보여 연 150만톤 이상을 일본 등에서 수입해 왔다.

국내 후판공급량이 연간 250만톤에 달하는 동국제강 역시 조선용 후판의 수급차질로 인한 국내 조선 산업의 경쟁력 저하를 막기 위해 후판제품의 수출을 중단했다. 동국제강 측도 올해 수출이 예정됐던 후판 물량 20만톤을 모두 내수로 전환시켜 국내 조선업체를 살리기로 했다.그러나 조선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지금 당장 후판 가격 안정과 물량 확보가 필요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현재 국내 조선업체는 지난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도보다 최고 50%이상 줄어드는 호황속의 불황을 맞아 ‘수익성’이 큰 위협을 받고 있다.

또 현재 중국 현물시장의 후판가격 상승추세와 후판 수급을 감안해 보면, 포스코의 후판 가격은 추가 상승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시기는 9월말 전후로, 추가적인 가격 상승을 전제로 연간 후판 가격의 상승에 따른 이익 감소폭은 현대중공업이 연간 3,430억원, 삼성중공업이 약 2,700억원, 대우조선 해양이 1,960억원, 현대미포조선이 735억원으로 추정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박건조에 들어가는 원자재 비용의 절반을 차지하는 후판 공급 부족이 계속되면 수주를 많이 할수록 수익성이 악화되는 기현상이 연출된다”고 우려, 철강업체의 협조를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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