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외교부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외교부에 대한 비난여론은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과 불신이 폭발했다는 점에서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의 무능함이 지적된 경우는 지금까지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매번 흐지부지 묻혀버렸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과연 외교부 개혁을 이루어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외교부 직원들이 ‘외교부에 근무한다는 것이 알려질까 두렵다’고 토로할 정도로 외교부에 대한 비난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고 김선일 사건을 계기로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외교통상부의 무능함과 직무유기 행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해외 주재 한국 대사관의 무능함과 무책임함은 해외 교민뿐 아니라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이들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 대사관이 구조를 요청한 탈북자들을 외면한 사건과 한국인이 중국서 사형을 당한 사건 등은 대사관이 얼마나 무책임한지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98년 인도네시아 폭동 때 한국 대사관이 보여준 충격적인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인도네시아는 치안의 부재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거리에서는 밤낮으로 총격전이 벌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이었다.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교민의 말에 따르면 당시 공포에 질린 한 교민이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더니 대사관 직원들은 “정부에서 조치를 취하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한 것이 고작이었다고. 그러나 정작 한국 대사관 직원 자신들은 탈출하기에 급급했다.

교민들에게는 어떠한 정보도 전달하지 않고 군용 헬리콥터를 이용, 대사관 옥상을 통해 자기 가족들을 데리고 탈출한 것이다. 정부의 대응은 여기에 한 술 더 떴다. 한국은 대한항공을 통해 특별기 단 한대만을 자카르타로 보냈는데, 그 특별기는 그야말로 ‘특별기’였다. 평소 600달러 하던 비행기표가 1,200달러였고, 그것도 당장 현금으로 낸 사람들만 태워주는 ‘특별기’였던 것이다. 당시 인도네시아의 교민 수가 6만명 가량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돈 없는 나머지 교민들은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처사였다. 반면 호주인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인도네시아 무장 군인들의 호위 속에 탈출했고 일본인들도 일본 정부가 급히 마련한 특별기편으로 모두 탈출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도 군용기를 급파, 자국민을 무료로 실어 날랐다.

이처럼 정부와 외교부의 ‘국민외면’ 2중주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외교부 개혁’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이 같은 외교부의 무능과 직무유기 습성은 워낙 뿌리가 깊어 쉽게 고쳐지기 힘들 것이라 보는 것이다.실제로 해외에서 큰 사건이 하나 씩 터질 때마다 외교부와 대사관에 대한 문제가 거론돼 왔지만 이로 인해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최근 외교부에 대해 거센 비난 여론이 일자 해외에 체류하는 교민들도 기다렸다는 듯 이에 가세하고 나섰다. 교민들 사이에서는 그 동안 참을 만큼 참았으니 이 기회에 바꿔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한 교민은 “대사관 직원들이 찾아와 술 마시며 일하는 아가씨들에게 추태를 부려 곤혹스러운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토로하면서 “이곳 교민들 중 대사관을 우호적으로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에 거주하는 한 교민은 “사실 그 동안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억울한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대사관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태도를 보여왔고 국내 언론에서도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교민들 사이에서 대사관은 있으나 마나 한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외에 체류하는 교민들이나 여행객들은 대사관에 거의 의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할 때 선교를 목적으로 나가있는 교회 관계자를 통하거나 현지 유학생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해외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한국 대사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대사관에서 도와줄 리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는 마치 기본 상식과도 같아서 누군가 대사관에 도움을 청하려 하면 그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여길 정도다.

먼저 필리핀 교민들의 말을 들어 보았다. 필리핀에서 3년간 머문 적 있는 박모(남·36)씨는 대사관 이야기를 꺼내자 대뜸 “대사관이 하는 일이 비자 발급과 분실 여권 발급 이외에 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면서 “현지 정보에도 취약하기 이를 데 없어서 대사관 직원과 이야기를 해 보면 아무것도 모르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외국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하나같이 하는 말이 대사관 직원들이 매우 불친절하다고 하는 말이다”라며 “나도 대사관에 몇 번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불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불친절함은 그나마 약과다. 그들이 전하는 대사관의 무책임함은 분노마저 일게 한다. 역시 필리핀에서 거주했던 최모(남·33)씨의 말에 따르면 지난 95년 술집을 운영하던 한 한국인 사장이 실종돼 그의 가족들은 경찰과 대사관에 신고를 했다. 그런데 필리핀 경찰이 수사에 성의를 갖지 않아 이 문제를 대사관 측에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대사관 측은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이를 모른 척했다.

몇 달 후 실종된 사장이 시골의 우물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자 뒤늦게 대사관 직원이 나와 그 직원은 신원만 확인하고 돌아가더니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고. 주러 한국대사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은 유난히 많았는데, 주러 대사는 지난해 광복절에도 교민회의 행사에 초대되었지만 이 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골프장으로 향해 교민들로부터 한심한 대사라는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사업 관계로 6년간 러시아에 거주한 적이 있는 김모(43)씨는 “러시아는 사회주의 관료체제가 남아서 경찰들의 횡포가 심하다”며 “지난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그곳 경찰들에게 휴대폰도 빼앗기고 인격적으로 심한 모욕을 당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아 이를 대사관에 하소연했더니 ‘원래 그런 곳이니 개인이 알아서 처신하라’는 말만 들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이와 같이 세계 곳곳의 교민사회에서는 대사관 직원들이 교민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도움을 주는 데는 무관심하면서 골프 접대 등 여흥 챙기기에는 적극적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교민들은 이번 기회에 정부가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외교부의 기강해이 문제를 확실하게 바로 잡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

“대사관 때문에 조국이 싫어요”

주러 대사관은 또 지난 2001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표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에도 대사관 직원들은 교민실태에 대한 보고는 뒷전으로 미루고 러시아 변태 사우나와 룸살롱 등지서 수행원들을 접대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지난해에는 샹트뻬째르부르크에서 한 여학생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대사관은 운전자의 사고 과실과 보상 등에 관해 철저하게 외면했다. 이 때문에 사고 여학생은 보상 한푼 못 받았을 뿐 아니라 시신도 가족과 현지 교민들이 힘을 합쳐 겨우 운반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을 두고 샹트뻬째르부르크의 한 유학생은 “외국에 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데 나는 외국에 살면서 우리나라가 더 싫어졌다”고 말했다.또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경찰들이 외국인을 검문한다는 핑계로 돈을 갈취하는 사례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유학생은 지난 2002년 이곳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송모(29)씨는 “느닷없이 집으로 찾아온 경찰들에게 마약사범으로 억울하게 몰려 대사관에 도움을 구했지만 대사관에서 이를 묵살했다”며 “당시 알고 지내던 한 사업가 한 분이 도와줘서 겨우 빠져 나왔다. 알고 보니 대사관의 무책임함과 무관심은 기본 상식이더라”고 전했다.

윤지환   jjd@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