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은 인구비율상 보수 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그러나 최근 조사들에서 자신이 진보적이라 생각하는 응답자의 비율이 늘고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에서 매년 실시하는 사회통합조사에서도 2017년 들어 진보와 보수의 비율이 역전되었다. 진보 30.6%, 보수 21.0%로 진보가 9.6%p나 앞섰다. 나머지 응답자들은 자신을 중도라고 평가했다.
 
통계수치로만 보았을 때 진보 유권자들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어쩌면 상황에 따라 적극적으로 드러내거나 감춘다는 표현이 옳을 수 있다. 많은 유권자들이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탄핵 열풍을 타고 압승한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2,3위인 홍준표, 안철수 후보와의 격차가 컸다.
 
하지만 진보와 보수로 묶었을 때의 결과는 이전 대선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41.08%였다. 진보적 정당인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 득표율 6.17%와 합하면 47.25%였다. 중도보수 후보로 분류되었던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후보의 득표율의 합계는 52.2%였다. 진영 간 합계로만 본다면 중도보수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다.
 
놀라운 것은 이 수치가 18대 대선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1대 1로 맞붙었던 18대 대선에서 문후보는 48.02%를, 박후보는 51.55%를 얻었다. 19대 대선 결과의 진영 간 합계와 거의 동일한 수치이다.
 
탄핵의 책임자로 화면과 지면에선 지워졌던 보수층이 투표소에선 여전히 득점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다만 보수 적자임을 자처했던 자유한국당 후보가 아닌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에게 표를 쪼개어 주었던 점이 특이했다.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기존 보수 정당에 대한 실망으로 대안적 후보에게 투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를 저항적 투표라고도 하는데 2016년 4·13총선 이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문제다. 대안적 후보에 대한 지지의 지속성에 대한 논란은 있으나 반대 진영으로 지지를 이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두드러져 보인다. 당장 여론조사만 보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여당 후보가 압도적이다. 하지만 여론조사가 간과하는 부분들이 있다.
 
첫 번째로 야권의 후보들과 유권자들은 지난 대선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반발심으로 표를 쪼개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행동할 공산이 높다. 두 번째로는 연령대별 투표율이다. 지방선거에서는 전통적으로 고연령층의 투표율이 높다.
 
인구비율마저 높아 중도나 보수 후보에 유리한 지점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비례대표와 복수의 의석이 걸려 있는 기초의원 선거구이다. 비례대표와 복수의 의석은 지지 후보의 표가 사표될 가능성을 낮춘다. 가능성 있는 지역에선 기초의원 후보의 활동이 활발해질 것이고 바닥민심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지방선거에서 여야 한쪽이 완전한 승리를 얻은 경우는 없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그 경험칙이 다시 한 번 적용될 것으로 본다. 보수 유권자들이 다 사라졌다고는 믿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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