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신발 브랜드 프로스펙스와 국제상사 용산사옥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지난 85년 해체된 국제그룹의 계열 ‘국제상사’에 대한 인수·합병(M&A)전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현재 법정관리중인 국제상사는 ‘최대주주인 이랜드와 별개로 제 3자 기업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반면, 이랜드는 “최대주주의 협의 없이 제 3자 매각은 안된다”며 국제상사 인수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특히 국제상사 인수와 관련, 현재 LG·효성 등 10여개의 기업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그룹은 지난 85년 전두환 정권의 부실기업 정리시책의 대상이 되어 해체됐다. 그리고 그룹해체와 함께 계열사인 국제상사는 지난 86년 한일합섬에 경영권이 넘어갔고, 지난 98년 최종 부도처리돼 현재 법정관리중이다.

특히 지난 2002년 6월 이랜드그룹이 국제상사의 주식과 전환사채를 매입해 51.7%의 지분을 차지, 최대주주가 됐다. 이를 계기로 이랜드가 국제상사의 경영권을 무난히 장악할 것으로 예상됐다.하지만 국제상사가 최대주주인 이랜드와 협의없이 제 3자에 기업매각을 추진하면서, 양사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국제상사측은 “이랜드가 지분을 인수한 것은 사적 계약에 따른 주주 변동에 불과할 뿐 경영권 인수와 무관하다. 법정관리 기업 경영권은 주주가 아닌 법원이 판단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국제상사는 지난 2002년 말 창원지법으로부터 제 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을 통한 인수·합병(M&A)방식에 따른 기업매각 공고를 허가 받았다.법원 판결 이후, 국제상사는 주식 발행한도를 4,000만주에서 8,000만주로 늘려 제 3자 매각을 추진했다.

이에 대해 이랜드측은 “최대주주의 협의 없이 정관변경 등을 통한 제 3자 매각 추진은 불법”이라며 강력 반발, 부산고법에 항고했다. 그런데 최근 부산고법이 이랜드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국제상사의 M&A공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부산고법은 “신주 발행을 통해 제 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신주를 인수하는 측이 최대주주가 되며, 이랜드측은 경영권을 잃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이어 부산고법은 “주주가 있는 회사에서 이 회사의 대규모 증자가 기존 주주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때는 주주 등 관계인이 참가한 집회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며 “최대주주인 이랜드 동의 없이 대규모 증자를 결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결했다.이번 법원 판결로 이랜드측은 국제상사 인수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하지만 국제상사측이 이번 판결에 불복해 상고할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어, 양사간 경영권 분쟁은 결국 대법원의 최종판단에 맡겨지게 됐다.

그렇다면, 양사가 치열한 경영권 공방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국제상사가 그만큼 매력있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상사의 경우 보유 부동산이 풍부하고, ‘프로스펙스’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갖고 있다”며 “이런 이점 때문에 국제상사를 인수할 경우 부채를 상환하고도, 그만큼 기업으로서는 큰 이득이다. 따라서 이랜드가 현재의 상태로 국제상사를 인수할 경우, 헐값에 인수했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국제상사는 현재 부채가 3,400여억원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이 부채를 상환하고 법정관리를 졸업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인 셈이다.실제로 국제상사가 보유한 부동산의 가치가 만만치 않다. 우선, 서울 용산구 한강로에 위치한 서울 용산사옥(국제빌딩)이 가장 눈길을 끈다. 지하 4층, 지상 28층의 국제빌딩은 시가 2,000억원이 훨씬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최근 주한미군 이전 등으로 인한 용산지역 개발 움직임과 맞물려, 국제빌딩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국제상사는 또 김해공장(5만3,000여평·시가 600억원 추정)을 비롯해 성남, 인천 등에도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이외에도 국제상사는 ‘프로스펙스’라는 순수 국산자본의 대표적 스포츠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현재 세계 10여개 국가로부터 브랜드 사용 로열티를 받는 등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상사는 지난해 2,090억원의 매출액에 215억원의 순이익을 올리기도 했다.이에 따라 이랜드뿐만 아니라 국제상사의 경영권 인수에 각 기업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태다.

현재 국제상사 인수에 10여개의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중에서 LG와 효성 등 대기업들도 국제상사 인수에 적극적인 것으로 전해졌다.국제상사 관계자는 “이랜드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랜드의 인수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며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은 뒤 인수·합병이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일 뿐”이라고 설명했다.이에 대해 이랜드 관계자는 “현재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는 만큼 뭐라 말할 단계는 아니다”며 “헐값인수 논란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법정공방이 끝난 뒤 국제상사 인수와 관련한 회사측 입장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그룹은… 한때 재계 6위 5공때 와르르

국제그룹 해체과정과 관련, 지금도 숱한 화제를 낳고 있다.국제그룹은 지난 85년 정부의 부실기업 정리시책의 대상이 돼 해체됐다. 그러나 그룹 해체와 관련한, 각종 뒷말이 무성하다.47년 고무신 공장으로 출발한 국제그룹은 60년대부터 신발 등을 수출하며, 성장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70년대 중화학공업 분야와 종합상사 진출로, 사세를 더욱 확장했다. 한때 계열기업으로 2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순위 6위로까지 뛰어올랐다. 하지만 국제그룹은 5공의 재벌 길들이기 시범 케이스로 걸리면서 85년 금융권의 주식매각을 통해 공중 분해됐다.

당시 그룹 해체와 관련, 재계에서는 양정모 전 회장이 전두환 대통령의 눈밖에 났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른바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것이다.특히, 지난 93년 헌법재판소는 “5공 정부의 국제그룹 해체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헌법재판소는 “그룹해체 과정에서 행한 일련의 공권력의 행사가 권력적 사실행위로서 기업활동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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