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서 이웃나라끼리 사이가 좋았던 예를 별로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 해서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이웃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외교의 진리처럼 됐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치 군사적 이해관계로 해서 이웃나라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도 있었다. 한반도 중기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나제연맹’을 맺었다. 또 태평양 전쟁 당시 볼리비아와 페루는 동맹을 맺고 칠레와 전쟁을 치른 바 있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도 그랬다. 북한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당시 공산당의 신정권을 승인한 데 이어 1950년 중공이 한국전쟁 때 UN군의 북진을 막아 내며 남하하게 만드는 등 전통적 공산주의 우방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후 핵무기 개발 등의 문제로 몇 차례 두 나라 기류가 좋지 않았지만 그들의 혈맹 관계는 지속됐다. 
중국이 암덩어리 같은 북한과 계속 손잡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의 한반도 북부 진출을 막을 방패로 이용하는 한편 북한을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동진(東進) 정책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서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의 ‘중국 고립’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복병이 중동 지역으로의 길목에 가로막고 있어 서진(西進) 정책이 좀처럼 작동하지 않고 있는 데다, 남쪽으로는 세계 4위 군사대국 인도가 미국과의 군사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 인근 지역의 베트남과 필리핀 역시 인도의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어 패권주의 확장에 어려움을 겪는 터다. 
게다가 남중국해를 내해(內海)로 만들어 이 지역의 부존자원은 물론이고 핵잠수함의 태평양 진출로(進出路)를 확보하려 했으나 국제상설재판소(PUC)에서의 패소로 동진(東進) 정책마저 힘겨운 모양새다. 
그 판에 한국 정부마저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해 동진 정책에 또 하나의 걸림돌로 부상하자 중국은 동진 정책의 교두보인 북한을 유일한 돌파구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됐다. 미우나 고우나 북한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북한이 이 같은 중국의 속셈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그동안 중국을 향해서도 막말을 해댈 수 있었던 게다. 그러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중국에 기댔다. 과거에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김정은이 두 차례나 중국을 비밀리에 다녀온 것도 그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압박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북한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국마저 조여 오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사실상 백기를 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은은 중국으로부터 모종의 약속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제아무리 압박 수위를 높인다 해도 중국이 반대하는 한 미국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적중했음이다. 
일각에서는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렸던 최근 한반도 정세의 배후에 중국이 있기는 해도 북한이 트럼프의 강수에 밀려 중국에 의존해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거라며 중국이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북중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다. 
북한은 늘 그래왔듯 앞으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중국에 기댈 것이고, 따라서 중국의 의지 없이는 비핵화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북중 관계는 한미동맹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상고(詳考)해야 할 때다. 
미북 간 협상 과정에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은 한반도 통일이나 평화체제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단지 북한에 대한 영향력 및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향력이 작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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