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정·관·재계, 불똥 튈까 ‘노심초사’
한나라당, 본격적인 정치 쟁점화 시도


2006년 7월 정·관계 로비 여부를 놓고 각종 의혹이 불거졌던 이른바 ‘김재록 게이트’ 수사는 사실상 김재록 전 ㈜인베스투스 글로벌 회장의 개인 비리를 처벌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김 씨 구속 후 그의 주변에서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 경제, 금융 분야의 거물급 인사들 이름이 거론됐고 각종 확인되지 않은 설(說)과 소문이 나돌았으나 정작 김재록 씨와 관련해 기소된 사람은 정건용 전 산업은행 총재 뿐이었다.

대검 중수부는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사에 착수할 때 “김재록 씨 로비의 지류(支流)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김재록 씨 사건이 현대차 비자금 사건의 곁가지처럼 돼버렸다.

당시 검찰은 김 씨의 로비 의혹과 관련, “계좌 추적과 관련자 조사를 계속 해나갈 계획이다”라며 수사 의지를 버리지 않고 있었지만 내사 기간까지 감안하면 반년 넘게 진행된 이 사건에서 추가 성과를 내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권력의 핵심까지 겨눌 것처럼 시작된 ‘김재록 게이트’ 수사는 단순한 대출 로비 의혹 사건의 신기루였던 셈이다.

의혹만 부풀린 4개월

검찰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김 씨를 구속한 것은 2006년 3월 24일이었다. 수사는 김대중 정부 시절 정치, 금융권 로비 게이트로 확대됐고, 부실 기업 인수, 정리 과정에서 불법이 저질러졌을 것이라는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투자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는 김 씨는 금융계에서 마당발로 통했기 때문에 그와 친분을 맺었던 전직 경제관료들에게 검찰의 칼이 향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검찰도 사안의 심각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김 씨는 ‘금융계의 미다스의 손’, ‘인수합병의 달인’이라는 평을 받았고 대우차를 비롯해 여러 건의 기업구조조정과 매각에 관여했던 아더앤더슨 한국지사 대표까지 맡았기 때문에 ‘소문’의 일부라도 확인되면 브로커 윤상림 사건을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이런 배경 때문에 검찰이 김 씨를 처음 기소할 때 적용한 혐의는 신병 확보 수단에 불과하고 정작 큰 줄기는 따로 있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드러난 혐의만 보면 처음 기소한 혐의가 가장 무거웠다. 이마저 알선수재인지 아니면 신종 금융 기법인지를 놓고 다툴 여지가 없지도 않아 1심 공판은 지루하게 진행됐다.

실제로 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사들도 그의 해박한 금융 지식과 영어 실력에 감탄했다는 웃지 못할 후문이 있었다. 그러나 구속과 함께 대형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을 보였던 김 씨 사건은 현대차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잠시 가속도가 붙는 듯 했지만 어느새 단순한 금융브로커 사건으로 ‘축소’돼 버렸다.

검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지 3개월여 만인 같은 해 7월 7일 김 씨를 화의 조기종결 알선 대가로 크라운제과에서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추가 기소했고, 20일에는 C&그룹과 세원텔레콤에서 자금 대출 알선 등 대가로 모두 13억 4천여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했다.

당시 검찰은 용두사미식 수사라는 일각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한 듯 “수사를 끝낸 것은 아니다. 사건은 계속 쥐고 있다”며 수사가 진행형임을 강조했다.

‘거악’ 있었나? 없었나?

오포 수사에서 현대차 비자금 수사로 이어지는 중간에 김재록 씨가 있었지만 그와 관련된 수사는 검찰이 즐겨 말하는 ‘거악’으로 뻗어 나가지 못했다.

검찰은 2002년 4월 김 씨가 전직 고위 관료에게 현금 1억 원을 건네는 등 정치권에도 손을 뻗쳤다는 정황을 잡았으나 대가성을 밝혀내지 못해 뇌물죄를 적용하지 못하고 정치자금법을 적용할 수 밖에 없었다. 관련 인사는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은 현대차가 김 씨를 양재동 사옥 증축과 관련해 로비스트로 활용했다는 혐의도 추적했지만,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벌어져 관련 수사를 덮었다. 현대차가 계열사 부채 탕감 로비스트로 활용했던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의 금품 로비 수사도 어려움을 겪었다.

김동훈 씨는 검찰에서 로비 대상이 됐던 금융기관을 10여 곳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현대차에서 로비 자금으로 받은 41억여 원 중 15억 원은 여전히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가 쉽지 않다. 액수를 맞출 수 있는 게 아니다. 로비 의혹은 계속 수사한다”며 거악의 실체 쪽으로 압박의 강도를 유지하겠다는 각오를 보였으나 결정적인 추가 단서가 확보되지 않는 한 그 성과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구속 이후 속전속결 행보를 보이는 듯했던 현대차 수사도 국민적 의혹을 상당 부분 남겨둔 채 사실상 끝난 셈이 됐다.

한나라당 “김재록 수사 본질서 벗어나”

한편, 한나라당은 금융 브로커 김재록씨의 로비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며 수사 방향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사건이 정권 실세들이 대거 연루된 ‘권력형 비리사건’ 임이 확실한데도 검찰이 현대차그룹 내부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이었다.

특히 한나라당은 검찰의 수사는 “기업을 죽이고 실세를 살리는 편파수사”라고 비판하면서 검찰의 공정 수사를 거듭 촉구했다.

한나라당이 검찰 수사의 공정성 문제까지 거론하며 사건을 쟁점화하려는데는 참여정부의 각종 의혹과 실정을 최대한 부각시켜 지방선거에서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당시 이계진(李季振) 대변인은 “검찰의 수사가 현대가(家)로 가는 분위기”라면서 “검찰은 사건의 핵심인물로 거론되고 있는 여권 실세들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엄정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광제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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