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정부와 대립 관계를 보여 온 삼성그룹이 정부에 대한 회유책 마련에 나섰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경제 활성화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정부는 규제완화를, 재계는 투자확대를 선언한데 이어 곧바로 삼성이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삼성의 이같은 ‘유화 제스처’에 대해 향후 정부의 경제정책을 유도하고 경영 승계 문제 등 해결과제를 두고 정부와 빅딜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삼성은 최근 청와대 간담회의 후속조치로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적극 협조할 뜻을 밝혔다.이에 따라 올해 당초 계획보다 1조9000억원 늘어난 19조3000억원을 투자하는 것을 포함, 오는 2006년까지 3년간 총 70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또한 올해 대졸신입 사원 7000명중 80%를 이공계 전공자로 충원하고 전체 인원중 30%를 여성으로 뽑는 등 이공계 및 여성인력 육성에 주력키로 했다.하지만 이러한 삼성의 후속조치에 대해 재계에서는 순수한 의도로만 볼 수 없다는 부정적인 견해가 일고 있다.일각에서는 삼성이 참여정부의 개혁을 통한 ‘성장’ 위주의 정책 시스템 가동에 대해 우려하면서 그동안 정부의 규제 정책을 견제해 왔으나 향후 정부에 요구사항을 표출하기 위해 일단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후속조치를 마련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상무의 경영 승계 등을 무리없이 추진하기 위한 삼성측의 전략적인 조치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특히 최근 삼성전자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당 내부 거래 직권조사 면제 기준’을 충족해 오는 2007년까지 직권 조사를 면제받은 것과 동시에 삼성이 정부의 경제 활성화에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보였다는 점에서 삼성이 정부와 대규모 빅딜을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것.

재계에서는 참여정부가 강력한 개혁을 실시할 경우 재벌개혁과 규제강화가 불가피해 삼성측이 불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삼성이 정부에 대해 기존의 강경 대응 방침에서 회유책으로 방향전환을 했다고 분석하고 있다.재정경제부 한 관계자는 “삼성이 그동안 진보세력과 시민단체 등의 ‘삼성 죽이기’에 시달려왔고 정부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심적인 부담이 가중됐었다는 점에서 삼성이 이번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인 협조로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은 조건부일 가능성이 높다”며 “경제 활성화를 계기로 정부와의 대립관계 청산을 위한 포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어왔던 삼성이 총선과 탄핵 기각 이후 참여정부의 강력한 개혁의지와 정면충돌하는 것 보다는 정부의 요구를 들어주는 조건으로 향후 규제 완화 등을 제시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측면으로 풀이되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도 이미 삼성과 정부의 대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삼성이 자발적으로 정부의 재벌개혁에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 정부와 요구조건을 주고받으며 관계 개선에 나서길 은근히 기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삼성은 이번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지속해 향후 이재용 상무의 경영 후계구도를 더욱 강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재벌기업의 경영 승계에 대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삼성은 정부를 포섭해 뒤탈이 없도록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에 대해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삼성이 불법대선자금 수사에서 법망을 빠져나가는 등 정부로부터 재벌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단체들은 삼성의 경영자 후계 구도에 관심을 갖고 있어 앞으로 이재용 상무가 집중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이재용 상무의 경영 승계를 정부가 묵인해주는 조건으로 정부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와 일부 계열사에 노조를 설립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이번 청와대 간담회의 후속조치는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며 “현재까지 정부와 경제 정책 등에 대해 의견차를 보이고 있으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재계가 상호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앞으로 제2의 집권기를 맞고 있는 노무현 정권과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이 경제정책 등에 대한 의견차를 얼마나 좁힐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