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후 주택 16만 동…안전 진단은 ‘그림의 떡’

지난 3일 붕괴된 용산 건물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지난 3일 서울 용산에서 1966년 지어진 4층 상가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일요일이었던 붕괴 당시 1∼2층 음식점은 문을 열지 않았고 3∼4층 거주자 4명 중 이모(68·여)씨만 건물에 있어 인명 피해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붕괴 공포’는 서울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는 노후화된 건물이 서울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장기 정비사업 추진지역 노후 건물에 대한 안전을 확보하려면 지자체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용산 건물 붕괴 원인,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고질적 문제?
- 전문가 “지자체가 노후 주택 수리 비용 적극 지원해야”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의 먹자골목은 적막했다.

평소 사람이 북적일 점심시간이지만 골목 들머리에 자리 잡은 4층 상가 건물이 이틀 전 폭삭 내려앉으면서 이 일대 상가들은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용산 4층 건물 사고 현장에서 10m쯤 떨어진 한 치킨집은 텅 비어 있었다. 가게 주인은 “너무 놀라 길가에서 쓰러질 뻔했다. 바로 옆에서 진행되고 있는 효성건설 공사 때문에 무너진 게 아닌가 싶다”며 “무너진 건물 세입자가 ‘가게 안에 음식재료 등 필요 물품을 다 사다 놨다는데 한순간에 없어져 허망하다’고 하더라”고 했다.

치킨집 2층에 있는 부대찌개 전문점 주인은 사고 이후 끊긴 손님에 한숨을 내쉬었다.평소 손님이 100여 명쯤 됐지만 이날은 고작 한 팀만 다녀갔다.

사고 여파로 가스가 끊겨 영업을 못 하고 있는 가게도 있었다.

돈가스 맛집으로 유명한 한 분식집에는 어둠 속에서 주인이 홀로 앉아 뉴스만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그는 “일단 문은 열었지만 손님은 못 받고 있다. 지금 뭔 장사를 하겠느냐”며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울림·소음 등이 심각했다”라고 전했다.
 

건물 세입자, 3만 원으로 전전
붕괴 건물, 화재보험 가입 안 해

 

보상 문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무너진 건물 세입자들은 용산구가 지원하는 3만 원으로 인근 모텔을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붕괴 당시 4층에 있던 이모씨의 병원비는 구가 지원했다.

현재 세입자들은 숙박비 이외의 공적인 보상은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붕괴 건물은 화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다.

이에 붕괴 건물이 위치한 용산 재개발 5구역 상인 50여 명은 이날 한 식당에 모여 비상대책 회의를 열었다. 정재영 ‘정가네’ 사장은 “인근 아파트 공사가 균열 또는 붕괴 원인이었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발파 작업 때문에 건물이 흔들린다고 구청에 민원을 넣었는데 담당자는 나와서 보기만 할 뿐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며 “사실관계를 따지고 피해 보상 대책을 세워 달라는 민원을 구청에 넣을 것”이라고 밝혔다.

 
붕괴된 용산 건물 주변에 위치한 음식점

용산구 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앞서 주민들의 민원을 받은 것에 대해 “건물주와 세입자를 만났으며 건물주가 안전을 위한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건물주가 직접 보수를 하겠다고 말하는데 구청이 나서서 뭐라고 말할 상황이 아니었다”며 “사고가 난 건물은 특정관리대상 시설물이나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에 관한 특별법상 관리 대상이 아니어서 구청이 건물주에게 어떤 조치를 하라고 명령할 수 없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고의 원인에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고질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무너진 건물은 지난 1966년 지어진 연면적 301.49㎡ 규모로 1∼2층은 음식점, 3∼4층은 주거공간이었다.

무너진 건물 반경 50m 안에는 40~50년이 지난 건물들이 많다. 가장 오래된 건물은 지난 1960년 설립됐다.

치과 의원과 부동산,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는 한 5층 건물 외벽은 콘크리트가 부서지면서 철근까지 드러나 있었으며 내부 계단 곳곳에도 균열이 발견됐다.

이 일대는 지난 2006년 4월 도시환경정비사업 구역으로 지정된 ‘용산 국제빌딩 주변 5구역’(용산 5구역)에 포함됐다. 지난해 사업계획 승인을 받았지만 시공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재개발 조합은 감정평가 때 수리비를 보상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집주인들은 철거될 건물로 생각하고 비싼 돈을 들여 고치지 않는다.

이 같은 잘못된 관행이 반복되며 정비구역에 속한 건물들은 붕괴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정비 속도 느린 노후 주택
안전대책도 부재

 

저층 주택의 안전 문제는 용산구뿐만 아니다.

지난 7일 찾은 서울 성북구 정릉동 주택가 뒤쪽 골목엔 2~3층 단독주택이 빼곡히 들어섰다. 

벽과 난간 시멘트는 금이 가고 훼손됐다. 창문 쇠창살은 녹슬어 흉측하기까지 하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노후 주택

단독주택에 10년째 세 들어 사는 A씨는 “집주인이 이사 올 때 도배 정도만 새로 해 줬다. 집 상태가 좋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거주하는 집이 지어진 지 30년을 훌쩍 넘어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공사에 비용이 많이 든다며 거절당했다고 한다.

주택가 한편에서는 개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옥상 난간을 시멘트로 바르고 있던 한 작업자는 “이 건물도 30년 이상 된 건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일대는 지난 2008년 재건축 정비구역(정릉1구역)으로 지정됐으나 지난달 해제됐다.

지난 6일 주택산업연구원의 ‘서울시 주택노후도 현황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 건축한 지 30년 이상 된 노후 주택은 전체 단독주택 31만8440동 중 15만991동으로 절반인 47.4%에 육박했다.

건축물 기준에 따르면 시설물의안전관리에관한특별법(시특법)이 정의하는 1, 2종에 해당하는 건물들은 정기적으로 안전진단을 받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16층 이상 공동주택이나 연면적 5만㎡ 이상 건축물, 또는 연면적 3만㎡ 이상 건축물 등이다.

다만 소규모 시설물은 특정관리대상 시설물로 지정되기 전에는 안전진단이 의무사항은 아니다.

유지관리 점검 대상이어도 안전진단 절차가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입주민이나 상가 주인 등 관리 주체는 1년에 두세 번씩 건물에 대한 안전점검과 보강공사 등을 벌여야 해 적지 않은 경제적 부담으로 안전진단을 미루고 있어서다.

안전진단을 받지 않아도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손 쓸 방도가 없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이나 안전진단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교수는 “지방자치단체는 공원이나 도로 같은 공공시설만 지으면서 주택은 개인 소관으로 본다”면서 “주민 안전과 마을공동체 유지를 위해서라도 노후 주택 수리 비용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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