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진실 밝혀지나…‘장자연 리스트’ 재수사 돌입한다

<뉴시스>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일명 ‘장자연 리스트’라 불리는 故 장자연 씨 관련 강제추행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재수사가 서울중앙지검에서 실시된다. 공소시효를 2달 남짓 앞 둔 시점이다. 당시 의혹에 연루됐던 많은 이들이 무혐의 판정을 받은 전력이 있어 이번 재수사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수원지검 성남지청→서울중앙지검 이송 ‘공소시효’ 빠듯
무혐의 판결, 재수사로 새로운 국면 맞을까




지난 4일 故 장자연 씨 관련 강제추행 의혹 사건 수사 기록이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로 이송됐다. 해당 수사는 앞으로 서울중앙지검이 진두지휘한다. 오는 8월 4일 공소시효 만료가 예정돼 조속한 수사 진행이 요구된다.

지난달 28일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이하 과거사위)는 검찰에 장 씨 강제추행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권고했다. 과거사위가 처음으로 조사가 아닌 재수사를 진행할 것을 분명히 짚어 이례적이란 평가다.

앞서 과거사위원회는 지난 4월 2일 이 사건을 사전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 사건을 놓고 과거사위원회는 사건 처리에 절차상 문제 등이 없었는지,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은 사건 처리가 적절했는지를 검토했다.

조사 결과 2008년 장 씨가 피의자 A씨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사건을 두고 2009년 당시 수사하던 검찰 측 판단 정황에 문제가 제기됐다. 허위 진술을 한 것이 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있었던 핵심 목격자의 진술을 허위로 판단한 것이다.

이에 조사단 측은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있는 이 핵심 목격자의 진술은 배척한 채 신빙성이 부족한 술자리 동석자들의 진술을 근거로 (피의자를) 불기소 처분한 것은 증거판단에 있어 미흡한 점이 있다”며 A씨에 대한 재수사 판단 배경을 전했다. A씨는 2009년 8월 19일 불기소 처분됐다.

2009년 당시 탤런트로 활동하던 장 씨는 유력 인사들과의 술자리와 성접대를 강요받은 내용을 폭로하는 유서를 작성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와 함께 성접대 연루 의혹 인물들의 이름이 적힌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가 발견되면서 파장이 더욱 거세졌다.

해당 문건에는 정재계 유력 인사, 방송사 프로듀서, 언론사 경영진 등의 이름이 거론돼 있었다.
 
리스트 연루 인물
‘어떻게 지내나’
 

2009년 당시 장 씨가 작성한 유서에 따르면 성접대 의혹에 연루된 이들은 총 31명이다. 이들은 기획사 대표, 대기업 대표와 간부들, 금융업체 간부, 일간지 신문사 대표, 드라마 외주 제작사 PD, 영화감독 등 다양한 직군 종사자였다.

하지만 그 당시 거론된 인물 중 대다수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현행법 결과와 달리 이들을 향한 국민들 의심의 눈초리는 아직 거둬지지 않았다.

31명 중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성상납 연루 의혹이 제기된 인물은 총 10명이다. 이들 중 현직에 종사하는 이들이 대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드라마 제작자로 알려진 B씨는 해당 사건 이후 별 다른 작품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반면 전직 드라마 PD로 알려진 C씨는 이후로도 국내에서 주목받았던 작품과 중국드라마를 제작하는 등 현재까지 활동을 잇고 있다. 당시 운영하던 업체는 2010년 파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다른 회사 대표를 맡고 있다. 이 밖에도 드라마 연출을 하고 있는 D씨와 E씨 모두 활동을 지속하며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장자연 리스트 후폭풍이 가장 거센 곳은 언론이다. 2009년 당시 민주당 소속이던 이종걸 의원(현 더불어민주당)은 그해 4월 6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 언론사와 운영자의 실명을 거론한 바 있다.

그러나 수사를 진행하던 검찰 측은 성매매·강요방지 혐의를 갖는 언론 종사자들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판단했다.

2009년 8월 19일 수원지방경찰청 성남지청이 발표한 수사결과에 따르면 ‘해당 언론사 사장’이라는 기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피의자가 장 씨에게 술접대를 받거나 성매매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는 것이 판단 사유였다. 현재 재수사가 시작되면서 해당 언론사를 향해 진실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추세다.
 
9년 지난 지금도
국민 관심 이어져

 
장자연 리스트는 연예계 내부에 존재하는 악습 또는 잘못된 관행으로 여겨지던 성접대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해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줬다.

2013년 장 씨 사건을 모티브로 한 최승호 감독의 ‘노리개’라는 영화가 개봉되는 등 연예계 물밑에서 자행되던 악습에 관한 사람들의 분노와 관심이 지속됐다.

이러한 움직임은 9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올해 2월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장자연의 한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힘없고 빽없는 사람이 사회적 영향력, 금(金)권, 기득권으로 꽃다운 나이에 한 많은 생을 마감하게 만들고 버젓이 잘살아가는 사회. 이런 사회가 문명국가라 할 수 있냐”며 “어디에선가 또 다른 장자연이 (故장 씨가) 느꼈던 고통을 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냐”고 꼬집었다.

해당 청원은 게시일부터 3월 28일까지 약 1달 정도 진행됐으며 총 23만5796명이 동의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의 경우 동의 수가 20만 명을 넘을 경우 해당 사안과 관련 있는 부처에서 답변을 내놓는다. 이 청원의 경우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박형철이 맡았다.

당시 박 비서관은 “공소시효를 떠나 과거에 이루어진 수사에 미진한 부분은 없었는지 법무부 검찰 과거사위원회와 검찰 진상조사단에서 여러 각도로 고심하고, 관련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를 없애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장자연 사건’ 공소시효 없이 수사해 주세요”가 그것이다.

이에 관해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공소시효 제도의 취지는 일정기간 동안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법적 안정성을 보호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과 증거가 이미 멸시·훼손돼 더 이상 공소 제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설명했다.

강제 추행에도 공소시효를 폐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현행법상으로는 어려운 단계”라면서 “법적 안정성보다 형사 정의에 반(反)하는 사례들이 많이 축적돼야 (그 같은 주장이) 설득력이 얻게 될 것”이라 설명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