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한 발언 알려지면서 ‘애니메이션 제작 취소’ ‘출판 중단’

혐한 내용이 담긴 일본 출판물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일본 내 혐한(嫌韓) 분위기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일본에서는 혐한 시위가 지속돼 교민은 물론 관광객들의 일본여행이 위축됐다. 일본 내 혐한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침탈과 수탈의 역사에서 일본과 우리나라는 늘 적대적이었다. 비록 두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이웃나라’로 서로를 대하고 있지만 진정한 사과 없이 발전된 관계로 나아가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 중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망언’으로 불리는 혐한 발언이다.
 
우리나라를 ‘강간의 나라’ ‘세계 최악의 동물 살고 있다’ 비유
日 규제 지침 마련 불구 특정 민족·인종 혐오 발언 계속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망언은 지난 수년 동안 있어왔다.

지난 1월에는 일본의 한 지방자치단체 의원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특정 국회의원을 지칭해 ‘재일한국인’이라며 “주리를 틀어버리고 싶다”라는 의미의 혐한성 막말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지난 1월 24일 마이치니신문에 의하면, 나라(奈良)현 안도(安堵)정의 마쓰이 게이지(増井敬史)정의회 의원은 같은달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회민주당 소속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穂) 참의원 의원을 지칭해 재일한국인이라며, 후쿠시마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취재해 일본인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후쿠시마 의원에 대해 “일본의 국익을 해치는 극악무도한 재일한국인”이라며, 변호사인 후쿠시마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취재한다면서 “한국인 매춘부를 취재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후쿠시마 의원이 “일본과 일본인의 명예를 현저히 훼손했다”며 “이 죄는 만 번 죽어도 충분치 않다. 양다리를 소에 동여매 찢는 형벌을 가하고 싶다”라고 했다.
그동안의 망언은 후쿠시마 의원처럼 대부분 관료에 의한 망언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문인 등 작가들 사이에 있었던 혐한 발언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작가 마인
“생각 없이 한 말” 사과

 
지난 6일과 7일 이틀 사이 연합뉴스, 국민일보, 오마이뉴스 등을 비롯한 국내 언론에서는 일본의 한 작가의 혐한 발언에 대한 기사를 보도했다.

7일 국민일보는 해당 내용에 대해 “일본의 유명 ‘라이트노벨’ 작가가 과거 소셜미디어에 혐한·혐중 성향을 드러내는 글을 쓴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은 제작이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제작 취소된 애니메이션은 ‘두 번째 인생은 이(異) 세계에서’라는 작품이다. 보도에 따르면 제작위원회는 6일 “(소설의) 애니메이션화 발표 이후, 일련의 사안을 중대히 받아들여 애니메이션의 제작과 방송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또 해당 소설의 일본 출판을 맡았던 ‘하비 재팬’ 역시 “작가의 과거 발언이 부적절한 내용이었음을 인지했다며 일본 매체들을 통해 소설의 출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혐한 발언을 한 작가는 ‘두 번째 인생은 이 세계에서’를 쓴 마인이다. 마인은 트위터에 한국과 중국을 겨냥한 혐오 발언을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는 “마인은 과거 ‘일본의 최대 불행은 옆 간국(강간의 나라)에 세계 최악의 동물이 살고 있다는 것’이라는 트윗을 올리며 한국을 비하했으며, 중국을 향해서는 ‘중국인들은 도덕이라는 말을 알고나 있냐’고 조롱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두 번째 인생은 이세계에서’에 출연키로 했던 성우 야스노 키요노는 하차 의사를 밝혔으며 다른 3명의 주연 성우도 같은 날 작품에서 하차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전했다.

결국 혐한 발언을 한 마인이 뒤늦게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한국과 중국에 대한 사과가 빠져 있어 ‘반쪽짜리 사과’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헤이트 스피치 억제법
가와사키시 2016년 제정

 
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이나 혐오 발언하는 것을 ‘헤이트 스피치’라 부른다. 마인의 트윗 발언도 이에 속한다. 일본에서는 관료나 작가 등의 헤이트 스피치가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11월 10일 일본 가와사키 시는 공원 등의 공적시설에서 혐한 시위를 사전에 규제하는 지침을 공표했다. 일본에서 지자체가 관련 지침을 마련한 것은 가와사키시가 처음이다.

11월 10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번에 가와사키시가 마련한 지침에는 공적시설의 이용 제한 기준을 명확히 했다. 차별적 언동을 할 위험이 구체적으로 인정되고, 또 다른 이용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판단이 됐을 때 각 시설이 이용을 불허하거나 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또 “표현의 자유와 같이 인권의 안이한 규제는 피해야 한다”고도 명기했다.

공업도시로 유명한 가와사키시는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서 건너온 노동자 출신의 재일교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지역이다. 이곳에서는 2015년부터 코리안 타운 및 인근 공원 등을 중심으로 혐한 시위가 자주 벌어졌다.

일본정부는 도쿄올림픽 등을 의식해 2016년 5월에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책의 추진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특정 민족·인종에 대한 혐오 발언 및 시위) 억제법을 제정했지만 혐한 시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헤이트 스피치 억제법은 사전 규제 규정에 대한 내용이 없어 지자체들이 규제를 하려면 조례나 지침을 따로 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와사키시가 이번에 일본 지자체 중에는 처음으로 혐한 시위에 대한 사전 규제 지침을 마련함으로써 향후 일본 내 다른 지자체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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