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판에서 노름 밑천을 다 털린 도박꾼의 두 가지 모습이 있다. 깨끗하게 노름판을 떠나는 것과 미련을 못 버리고 구차하게 버티는 것을 말한다. 돈을 다 잃은 대부분의 도박꾼들은 털고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개중엔 자리를 털지 못해 개평(돈 딴 사람이 던져주는 몇닢 돈)을 보태서라도 한 번 더 배팅해 보려고 기를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럴 경우 ‘대박’은 커녕 ‘쪽박’을 차고 꼴같잖게 되기 일쑤다.
정치판도 다르지 않다. 정치적으로 거덜이 났음에도 이슈몰이를 계속해서 정치생명을 조금 더 연장해 보려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 
바른미래당 안철수 영입위원장은 지난 2012년 대선 정국에서 문재인 후보와 손잡아 후보 단일화를 성사시켰다. 당시 안 위원장이 문 후보를 건성으로 도와주었다는 비판이 많긴 했으나 안 위원장으로서는 후보 단일화 과정을 통해 문 후보와 같은 반열의 야권 정치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잠시 공백기를 가진 안 위원장은 2014년 당시 김한길 민주당 대표를 이용하며 제1야당 공동대표 자리를 꿰찼다. 자신이 이끌던 새정치연합을 민주당과 합당시킨 결과였다. 비록 얼굴 마담의 상징적 대표에 불과했지만 그는 당대표 반열의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데는 일약 성공한 셈이다.
이후 문재인 새정치민주당 대표와 각을 세우며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힘껏 부풀린 안 위원장은 2016년 국민의당을 창당해 20대 총선에서 제3당의 오너가 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호남의 차세대 지도자라는 상징성을 갖추기 위해 호남 출신 천정배 의원을 내세웠다. 또 2017년에는 ‘정치 9단’으로 불리는 박지원 의원을 당대표로 세워 조기 대선에 임했다. 
안 위원장은 이처럼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누군가를 통해서 끌어올린 뒤 철 지나면 그들 대부분을 용도 폐기했다. 김한길 전 대표는 20대 총선을 전후해서 고사시켰고, 천정배 의원과 박지원 전 대표와는 대선 후 결별했다.
대선에서 실패하고 정치적 밑천이 됐던 호남에서마저 버림받은 그는 정계를 떠나지 못하고 이번에는 정체성 다른 보수 진영의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와 합당을 강행해서 정치 생명을 연장시키는 정치도박을 폈다. 
안 위원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결심하게 된 배경은 지방선거 후 바른미래당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라는 억측이 난무했다. 그 같은 위기감에서 자신은 ‘선당후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졌을 것이란 얘기다. 
또 한 사람 유승민 대표는 박근혜 정권에서 이미 ‘배신자’로 낙인찍힌 데 이어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 땅에서 차갑게 배척당하는 처지가 됐다. 패를 잘못 읽어 정치적 밑천을 다 털리고만 모양새다.
그러나 그 역시 정치판을 떠나지 못하고 안 위원장처럼 영호남 통합 명분으로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막다른길에 합류했다.
이처럼 우리 정치는 도박 생리와의 공통점이 있다. 도박판에서 노름 밑천 거덜나면 손 탁 털고 일어서는 모습이 가장 깨끗해 보이고 신사적인 것처럼 정치판도 그런 게다.
한국 정치는 지역 기반이 가장 큰 힘이 돼 정쟁(政爭)의 보루(堡壘)가 됐다. 따라서 지역기반을 잃어버린 정치인은 독불장군이 될 수밖에 없는 역학구조다. 그래서 호남 기반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린 안철수 영입위원장이나 TK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린 유승민 공동대표의 정치적 장래가 밝아 보이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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