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 한반도 정세에 중·러 등 불안 느껴

북한 비핵화는 미국이 당사자이지만 한국도 역할 바라 
오락가락 트럼프가 불안한 미국 민주당, 5대 원칙 제시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오는 12일로 예정된 미국·북한 정상회담을 앞두고 두 회담 당사국은 막판까지 물밑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러시아, 중국, 일본 같은 준(準) 당사국들도 역사적인 싱가포르 미·북 회담 국면에서 소외되지 않으려 나름대로 움직이고 있다. 먼저 주목되는 것은 한국이 싱가포르 회담에 간접적으로나마 숟가락을 얹을 수 있을 것인가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5월 29일 “북한 비핵화 문제는 (북한의) 체제 보장과 연계돼 있기 때문에 미국이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한국 기자들과 간담하는 가운데 “지난해 6월 한미 공동선언을 보면 (미국이)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과정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하는 걸 지지한다는 것"이라며 “비핵화 부분에서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지지한다는 것이 아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비핵화는 미국이 주도한다는) 기조는 한미 공동선언에 이미 다 합의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의 이런 확인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싱가포르 회담에 초청받을지 주목된다.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듯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6.13 지방선거’와 관련해 사전투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지난 5일 외교부 당국자는 “사전투표는 지방선거 투표율을 올리기 위한 차원”이라며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그런데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직후 남북미 3자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강 장관의 사전투표는 그에 대비한 것이 아니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만약 북미정상회담에 이어 남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외교수장인 강 장관도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싱가포르로 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앞서 문 대통령도 지난 8일 사전투표를 했다. 사전투표 결정에 대해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미·북 회담과 관련해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아 온 러시아가 요즘 부쩍 발 빠르게 움직인다. 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 14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열리는 러시아월드컵 기간 만나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은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을 인용해 문 대통령이 월드컵 기간 러시아를 방문하면서 푸틴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다고 지난 5일 보도했다. 문 대통령의 방러가 성사된다면 그 시점이 미·북 정상회담 직후여서 북한 비핵화 및 한반도 정세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전에도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지난 4월 11일 모스크바에서 외국 대사들과 만나 “오는 6월 문 대통령을 만나 한반도 긴장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에는 문 대통령에게 월드컵 기간 러시아를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개입하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오는 9월 11〜1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정부 주관으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공식 초청하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위원장을 베이징과 다롄에서 잇달아 만났다. 다롄 회동 이후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제재가 느슨해진 것을 겨냥해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2일 트위터를 통해 “최근 북한 국경에 구멍이 많이 뚫리고 더 많은 것들이 흘러 들어간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비핵화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북한과의 ‘국경'에 대한 엄격한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고 중국을 압박한 바 있다. 그런데도 중국의 대(對)북한 태도는 더 부드러워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베이징~평양 노선 운항을 무기한 중단했던 중국 국제항공이 6일부터 운항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향해 경쟁적으로 러브콜을 보내는 양상이 뚜렷한 가운데 중·러가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6일 중국 산둥성 칭다오(靑島)에서 개막됐다. 외교가에선 김정은이 이 회의에 전격 합류해 북·중·러 정상회의를 가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SCO 정상회의 참석차 6월 8~10일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한편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일 백악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12일 있을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5일 정례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 정상회담에서 한국, 일본, 중국의 대북 경제지원 관련 문제를 제기할 것인지 묻는 말에 앞서가지 않겠다며 두 나라 정상의 회동 예정에 대해서만 말했다. 그는 또 미-북 회담 외 무역과 다른 사안들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협상의 달인(達人)’을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김정은을 어떻게 요리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변덕이 심한 자국 대통령을 불안해 하는 미국 상원 민주당 의원들이 미·북 합의에 담겨야 할 다섯 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4일 밥 메넨데즈 상원 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와 함께 공동 전화 회견을 열고 대북 합의에 포함돼야 할 다섯 가지 원칙을 제시한 서한을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발송했다고 밝혔다. 그 다섯 가지 원칙은 ▲북한의 핵무기뿐 아니라 생화학 무기까지 폐기 ▲군사 목적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생산을 중단하고 핵무기 관련 사회기반시설을 영구적으로 폐기 ▲북한의 탄도미사일 실험 전면 중단, 탄도미사일과 관련 프로그램의 불능화, 전면 폐기, 그리고 해체 ▲북한으로부터 핵,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 체계가 포함된 사찰을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것 ▲이런 내용이 담긴 북한과의 합의는 영구적이어야 한다 등이다. 이들 원칙 가운데 ▲핵 합의는 영구적이어야 한다와 ▲북한 어디에서든 무제한적인 사찰을 보장해야 한다는 두 가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 공화당으로서는 이견을 달 수 없는 사안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이란 핵 합의를 파기하면서 내세운 주요한 이유가 바로 ▲이란 핵 합의가 영구적이지 않다 ▲핵사찰에 일부 제한이 있다 등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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