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한 승기 잡는다” vs “뒤집기 한판 노린다”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이 최근 본격적인 현대그룹 챙기기에 나서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현대아산, 상선, 엘리베이터 이사후보에 잇따라 추천되는 등 현정은 회장의 공격 행보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 경영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KCC 측은 한 발 앞서, 정몽진 회장을 현대상선과 엘리베이터 이사로 추천하는 맞불 작전을 놓았다. 따라서 양측의 대격돌 2라운드가 수면위로 본격 부상한 것.현대가의 중재 시도를 현 회장이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은 가운데, 이달 말 열릴 예정인 현대상선과 엘리베이터 주주총회의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SK와 소버린에 이어, 현대그룹과 금강고려화학(KCC)도 주주총회를 앞두고 본격적인 위임장 대결에 돌입했다. 여기에 인터넷 상에서 활동 중인 소액주주들까지 가세해, 23일과 30일 각각 개최될 현대상선과 엘리베이터 주총은 또 다른 ‘빅매치’가 될 전망이다. 우선 현대 경영권 분쟁의 ‘본게임’이라 할 수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 앞서, 23일 열리는 현대상선 주총은 사실상 ‘전초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초전’- 현대상선 주총부터 치열할 듯

KCC측이 주주제안 형식으로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진 KCC회장을 현대상선 이사후보로 추천한데 이어, 현대 측도 현정은 회장을 이사후보로 추천해 시조카와의 한판 대결을 펼치게 된 것. 현대상선 이사회의 정원은 8명이지만, 고 정몽헌 회장의 사망으로 현재는 7명의 이사가 활동 중이다. 그러나 이들 7명 중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는 한 명도 없다. 현대상선 측이 주총 안건에 이사회 정원을 9명으로 늘리는 정관 변경안을 채택하지 않음에 따라, 결국 나머지 한 자리를 놓고 현정은·정몽진 두 회장 간 격돌이 불가피하게 됐다.현대상선의 지분 구조는 현대엘리베이터가 15.16%로 최대주주이고, KCC 계열은 6.93%. 그러나 KCC측이 최근 현대상선 지분 20%를 보유했다고 주장한 가운데,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양측은 현재 의결권 대리행사를 위한 금감위 신고를 거쳐, 위임장 확보에 본격 나서고 있는 상태.먼저 현대상선 측은 직원들을 동원해 소액주주들에게 전화 또는 직접 방문하는 형태로 위임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소액주주들에 따르면, 이 중에는 두 세번씩 방문하며 위임장을 받아내는 끈질김을 보이는 직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KCC 역시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적극적인 위임장 확보에 나선 상황. KCC 측은 신문광고와 콜 센터 운영 등을 바탕으로 역시 방문, 전화, 이메일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앞서 KCC측은 현대상선이 주주명부를 공개하지 않는다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범현대가 중재 사실상 무산

현대상선 주총이 끝나고, 1주일 뒤에는 ‘본게임’인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이 기다리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이번 주총에서 새로 선임하게 되는 3명의 이사직을 놓고, 현대중공업 등 범현대가가 추천한 3명의 이사후보와 현정은 회장 측, KCC측 후보가 각각 추천한 3명의 이사후보들이 나서고 있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현정은 회장 측이 30.05%로 최대주주이지만, KCC가 16.11%를 보유하고 있고, 여기에 범현대가도 12.46%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의 변수는 소액주주들과 정몽근 회장의 현대백화점그룹으로 요약된다.

18%를 약간 밑도는 것으로 파악된 전체 소액주주 지분과 2.95%를 보유하고 있는 정몽근 회장 측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승부가 좌우되는 것. 주총을 앞두고 현정은 회장 측이 범현대가의 중재안을 수용할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않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따라서,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정몽근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의 입장이 주목된다.여기에 소액주주들도 자체적으로 위임장을 확보, 주총에 나설 태세이다. 이러한 와중에, 범현대가가 추천한 이사후보로, 현대와 KCC의 경영권 분쟁에 ‘중재자’로 나섰던 이병규 전 현대백화점 사장이 ‘이사후보를 사퇴하겠다’고 밝혀, 양 측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병규 전사장은 양측의 입장이 좀처럼 조율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 사퇴라는 마지막 카드를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이병규 전사장외에도 박용상 전헌법재판소 사무처장, 황병기 전감사원 사무총장 등 범현대가가 추천한 이사 후보 3명이 모두 사퇴를 결의했다.사실상 범현대가의 중재 불발을 의미하는 이병규 전사장의 이사 후보 사퇴에 따라, 현대와 KCC의 갈등은 주총 표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된 것. 양 측 분쟁의 새로운 도화선으로 작용해 온, KCC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공개매수’가 철회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지난달 27일, KCC 주총장에서 소액주주들이 KCC측의 공개매수 방침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며 반발했던 것과 관련, KCC측 관계자는 ‘현대 측의 위임을 받은 일부 주주들이 문제를 확대시키기 위해 벌인 쇼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곧 KCC의 입장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하는 것. 고 정몽헌 회장 사망이후, 온갖 잡음이 끊이질 않았던 현대 경영권 분쟁은 결국 23일과 30일 열리는 주총장에서 일단 판가름 날 전망이다. 만약 현정은 회장이 현대아산, 상선, 엘리베이터 이사직을 모두 거머쥔다면, 확실한 승기를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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