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빅뱅’이 시작됐다. 씨티은행이 한미은행을 인수하고, 황영기 전삼성증권사장이 우리금융그룹 회장으로 내정되면서, 은행간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국내 최대은행인 ‘국민은행’, 막강한 자금력과 네트워크를 지닌 ‘씨티은행’, 그리고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선 ‘우리은행’등 은행권의 사활을 건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3일 씨티은행이 한미은행 인수를 공식 발표했고, 지난 9일 우리금융그룹 회장에 내정된 황영기 전사장도 “몸집 불리기를 시도하겠다”고 밝히면서, 금융계의 빅뱅이 예고되고 있다.우선,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곳은 국민은행. 그간 국민은행은 국내 은행 1위라는 아성을 굳건히 지켜왔다. 하지만 은행권 판도변화가 예상되면서, 국민은행 위상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위기의식을 반영하듯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지난 2일 6개월간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씨티은행의 국내 진출 확대외에도 국내 소비위축 등 국민은행을 둘러싼 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김 행장은 3월 월례조회에서 “지금까지 국내에서 씨티은행이 지점이 적어서 경쟁력이 약했지만 한미은행과 합병할 경우 3∼4개월 후면 국민은행과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라고 전제한뒤 “하지만 씨티은행과 같은 선진은행의 국내 진출은 예상했던 일. 국민은행은 이에 대한 준비를 해왔다”고 강조했다. 즉 국민은행은 그간 외국금융사와의 경쟁에 꾸준히 대비해온 만큼 씨티은행과의 경쟁에서도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국민은행은 이와 함께 씨티은행의 신용카드사업 확산을 막기 위해 다른 은행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LG카드를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한투·대투 등 투신사 인수 및 모바일뱅킹을 강화하는 방안 등도 적극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자신감과 대응책 마련에도 불구, 국민은행이 처한 여건은 그리 밝은 편은 아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대규모 적자를 냈다. 또 노사갈등 등으로 물적·인적 구조조정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김정태 행장의 임기연장 등 진로도 불투명한 상태다.

김 행장도 이런 점을 감안, “국내 소비위축의 장기화 등으로 영업환경과 경영여건이 크게 악화됐다. 이에 따라 경비를 대폭 절감하겠다”며 “영업관련 부서를 제외한 나머지 부서들의 경비 및 업무추진비를 제로 상태로 긴축하는 등 영업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반면, 우리금융은 황영기 회장 내정자를 앞세워 국민은행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우리금융은 이미‘적극적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를 선언한 상태다.황 내정자 역시 기자회견 등을 통해 “금융시장의 외국자본 잠식이 급속도로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금융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공격적인 M&A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현재의 구조로는 수익창출에 한계가 있다. 성공적 M&A를 통해 몸집불리기도 고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황 내정자는 증권·보험·투신사 등을 인수한 후 비은행 영업부문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인 셈이다.황 내정자가 M&A를 통해 제 2금융권을 인수한 후 은행 등과 연계한 시너지 극대화 전략을 구사할 경우, 국민은행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리은행과 국민은행 모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금융기관은 한투·대투 등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이미 “비은행부문에서의 수익창출을 위해 한투·대투중 한 기관을 인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금융도 한투와 대투의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아, 두 은행간 인수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란 관측이다.이와 같이 두 은행이 제2금융권 인수전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향후 M&A 승패에 따라 국내 금융계 1인자 자리가 판가름 날 수 있기 때문이다.한미은행을 인수한 씨티은행도 금융 1인자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세계 최대의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을 등에 업고 있는 씨티은행은 막강한 자금력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토종은행들을 위협하고 있다.

씨티은행의 최대 강점은 최상위 부유층 고객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뱅킹(PB)부문. 여기에 씨티은행은 기존의 상위층 고객뿐 아니라, 한미은행 점포를 통해 중상위층 고객에 대한 PB영업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이와 함께 다른 시중은행이나 보험회사, 신용카드 회사 등을 인수하거나 제휴할 경우, 국내은행들을 물리치고 업계 1위에 등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은행권 한 관계자는 “국제적 선진은행인 씨티그룹이 한미은행 인수를 마무리 할 경우 국내금융권의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있다”며 “막강한 자본력을 등에 업고 있는 씨티은행이 다른 금융기관을 추가로 인수할 경우, 국내은행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외에 금융지주사 설립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하나은행도 역시 증권이나 카드사 등의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으며 신한은행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조흥은행과의 통합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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