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증 위조, 6만 원이면 가능···감별기 대비는 2만 원 추가?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가짜 신분증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일요서울은 가짜 신분증 피해 사례를 살펴보고 위조 실태를 추적해 봤다.

100만 원 주고 경찰로 둔갑···금감원 직원 사칭도
업주만 처벌받는 ‘청소년보호법’?···위조 실태 심각하다


최근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직원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4000여만 원의 돈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의 50대 수금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4단독(이관용 판사)는 사기 및 사기미수,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 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A(50)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고 지난달 2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0월경 중국 연길에서 중국의 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한국에서 돈을 수금해 오면 수수료 3%가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지난해 12월 3일 국내에 입국, 수금책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소속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의 한 위장 콜센터 상담원은 피해자 C씨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를 사칭해 사기 행각을 벌였다. 피해자에게 C씨는 어떤 사람이 피해자의 명의를 도용해 사기를 치고 정보를 유출시켰다는 식으로 속였다. 그 사람과의 관련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니 계좌에 있는 돈을 모두 인출해 금감원 직원에게 넘기라는 지시를 했다.

A씨는 같은 날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한 장소에서 C씨를 만나 위조된 금감원 직원 신분증과 금융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금감원 문서를 제시하며 C씨로부터 현금 1726만 원을 챙겨 수수료 명목으로 10만 원을 제외하고 1716만 원을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지난해 12월 21일부터 29일까지 이러한 수법으로 3차례에 걸쳐 4000여만 원을 챙겨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겼다. 또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금감원 직원증과 금감원 문서 등을 파일형태로 받아 직원증과 문서를 위조했다.

지난 2월에는 위조된 경찰공무원증과 경찰제복을 입고 경찰관 행세를 하며 행인들과 실랑이를 벌인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D(39)씨를 공문서위조 및 공무원자격사칭 등의 혐의로 붙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2월 28일 오전 5시 10분경 울산시 남구 달동의 한 노상에서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이 시비를 건다”는 112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경찰특공대 제복을 입은 D씨를 발견하고 불심검문을 실시했다. 술에 취한 D씨는 “나는 대구지방경찰청 경찰특공대 소속 직원이다. 인근 술집에 미성년자들이 많으니 단속해 달라”면서 경찰공무원증을 제시했다. 그러나 공무원증의 인쇄 상태가 현행 신분증과 다른 것을 수상히 여긴 경찰은 재차 확인했으며 D씨의 지갑에서 또 다른 위조 신분증을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조사 결과 D씨는 불순한 목적으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100만 원을 주고 자신의 명의로 된 경찰공무원증 위조를 의뢰해 가짜 신분증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영업정지 받은
업주의 ‘눈물’

 
“우리가 경찰도 아니고 티도 안 나는 걸 어떻게 아는가.” 서울에 위치한 한 주점 주인 E씨의 하소연이다. E씨는 지난해 구청으로부터 영업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았다. 10대 청소년들에게 술을 팔았다는 이유에서다.

가짜 신분증을 제시한 청소년들에게 속은 E씨는 “얼굴이 약간 어려 보이긴 했지만 전체적인 차림새는 성인처럼 보였다. 정말로 바쁠 때에는 일일이 검사하기도 힘들다”면서 “(해당 청소년들의) 신분증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교묘했다. 신분증 감별기를 가진 일반 상인도 많이 없는 상황에서 무슨 재주로 분간하겠느냐”라고 토로했다.

E씨에 가게에서 적발된 청소년들은 경찰에 자진 신고했다고 한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무리 내에서 약간의 싸움이 있었다. 홧김에 신고한 것이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한 업주는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지방자치단체는 1차 적발 시 영업정지 2개월, 2차 적발 시 영업정지 3개월, 3차 적발 시 허가 취소나 영업소 폐쇄 처분을 내린다. 영업정지 처분을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과징금은 1년간의 매출액 등에 따라 산정된다.

업주가 신분증을 확인했다는 CCTV(폐쇄회로TV) 증거가 있으면 사정이 참작되기도 한다. 이 같은 경우에는 행정처분 강도가 10분의 9까지 감경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E씨의 가게에는 CCTV가 없었다. 이 때문에 결국 2개월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은 E씨는 ‘이제 가게 문을 닫아야 하나’라는 걱정을 매일 했다고 한다. 이후 E씨는 가게를 다시 열었으며 CCTV까지 설치했지만 당시 상황을 떠올리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고 호소했다.

이처럼 청소년 주류 제공으로 가게 문을 닫는 업주들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본인 신분을 속인 청소년들은 기소유예나 봉사활동 정도의 가벼운 처벌에 그치는 반면, 가짜 신분증에 속아 술을 판매한 업주들은 생계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업주만 처벌 받는다는 푸념이 나올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한 구청 관계자는 “업주들의 억울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현행법상 중앙행정심판위원회 등을 통하지 않고선 구제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주를 속이기 위한 수법도 점차 대담해지고 있다. 기존에는 생김새가 유사한 형제자매의 신분증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선 공‧사문서 위‧변조 같은 범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청소년들의 신분증 위·변조 실력이 나날이 늘고 있다”며 “주점 출입에 쓴 가짜 신분증도 몇 번 사용한 뒤 버리기 때문에 증거를 찾기도 어렵다”고 했다.

 
 위조업자에게
접근해보니

 
청소년은 물론이고 가짜 신분증을 원하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신분증을 위조해 주겠다는 위조업자(이하 업자)까지 덩달아 늘어나는 모양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신분증 위조와 관련한 키워드를 검색하자 1000여 건에 달하는 게시물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민증위조’, ‘면허위조’, ‘여권위조’, ‘졸업증 위조’, ‘신분증 전문제작’ 등의 문구를 내걸고 홍보를 하고 있다.

기자는 위조업자에게 연락을 해 봤다. 위조업자는 기자에게 “반갑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양식을 주면 작성 및 결제를 한 뒤 택배로 물품을 전달받으면 된다”고 했다. 이들이 주민등록증을 위조하면서 받는 금액은 6만 원. 양식에는 ‘이름’, ‘원하는 주민등록번호’, ‘연락처(배송 시 필요)’, ‘사진’, ‘거주지’, ‘배송지’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기자는 업자에게 ‘유의사항은 없느냐’라고 질문하자 “경찰을 조심해라. 그래서 항상 구매자든 판매자든 거래 후에는 이러한 거래내역을 없애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상담(?)을 하면서 기자는 더 충격적인 내용을 듣게 됐다. 청소년 주류 제공으로 인한 단속 피해가 늘면서 신분증감별기(이하 감별기)를 도입하는 편의점이 늘고 있다. 기자는 업자에게 ‘위조한 신분증이 감별기에 걸리지 않느냐’라고 묻자 “감별기에 안 걸리게 하는 것은 2만 원의 추가금이 붙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재차 ‘안 걸릴 수 있느냐’라고 묻자 “충분히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했다.

현재 감별기는 2초 만에 모든 검사가 가능한 시스템으로 지문검사를 통해 본인 신분증 사실 여부를 검사할 수 있다. 업자는 기자에게 지문을 찍는 가이드라인까지 친절히(?) 제시했다. 더 자세한 내용을 듣기 위해 업자에게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자 연락이 두절됐다. 업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분증 위조 실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다른 업자들에게도 문의해 본 결과 위조 방식과 비용은 대부분 비슷했으나 감별기에 대한 세부적인 질의를 하자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현재 가짜 신분증으로 인한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이런 가짜 신분증을 검사하기 위한 감별기마저도 제 기능을 못할 가능성이 관측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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