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문에서 CVID 빠진 이유 “트럼프의 통 큰 양보”

김창준 전 미 연방 하원의원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갖고 비핵화를 통한 새로운 출발을 전 세계에 약속했다. 하지만 뒤이어 발표된 합의문이 논란이 됐다. 언론들은 그동안 미국이 주장해 왔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문구가 들어가지 않았다며 북미정상회담이 과거 유사한 회담과 비교해 퇴보된 성명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 한미군사훈련 축소 등과 관련된 발언을 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본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왔다.
 
美 CVID 요구에 北 “우리 보고 항복하라는 거 아니냐”
김정은 못 믿겠다면 “미국을 믿어라, 트럼프를 믿어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정치인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철저한 비즈니스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북미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는 각종 이슈들을 철저하게 주도했다. 합의문이 완성되기까지 북한과 수차례 만남을 가졌을 만큼 공을 들였다. 하지만 정상회담 종료 후 ‘이번 회담의 승자는 김정은이다’ ‘CVID가 빠졌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일요서울은 공화당 출신으로 미국 정치에 정통한 김창준 전 미 연방 하원의원에게 북미회담과 합의문의 담긴 의미를 물었다.
 
회담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사실, 아찔했다”

 
김창준 전 하원의원과의 인터뷰는 15일 오전 10시 여의도 전경련회관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김 전 하원의원을 만난 기자는 먼저 북미회담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김 전 하원의원은 “정확하게 CVID라고 없다고 비판들을 하는데 비판하려면 끝이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잘했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트럼프 대통령이 다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는 사실, 아찔했다”며 북미회담을 지켜본 소감을 전했다.

이어 “만났다는데 의의가 있다. 서로 평화를 약속한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 있는 미국인 등이 전쟁 위험으로) 우린 미국을 가야 하는 거 아니냐, 당장 북한이 쳐들어오는 거 아니냐라는 말을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또 “(북미회담 이후) 평화 분위기는 조성된 것 같다. 이런 마당에 김정은이 무력은 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전 하원의원은 합의문에 ‘CVID’라는 문구가 빠진 데 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건 우리 보고 항복하라는 거 아니냐, 내 체면도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는 얘기에 마지막에 조정을 한 거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추가로 트럼프 대통령이 통 크게 양보한 대신 잔여 재임기간인 2년 반 안에 비핵화를 이행하도록 미국과 북한이 서로 뜻을 맞췄다고도 말했다. 기자는 정보의 출처를 물었으나 김 전 하원의원은 노코멘트라고 밝혔다.

실제 이날 국내 한 언론은 대북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첫 실무회담 당시 북한 실무협상단이 미국 협상단에 지난달 27일 “CVID는 북미대화 의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며 이후 실무협상은 김영철 북한 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미국을 방문할 때까지 재개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북한이 CVID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회담 승자 김정은?
“그건 잘못된 이야기”

 
기자는 김 전 하원의원에게 언론에서는 이번 북미회담의 승자는 김정은이라고 말한다고 하자 그는 “그건 잘못된 이야기다. 회담에서 누가 패하고 이기는 게 어디 있냐”라며 “패하고 이기는 것은 전쟁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하마터면 전쟁을 할 뻔했다. 조마조마한 순간을 넘어서 화해를 하고 평화를 발표 했는데 누가 이기고 지고가 있나. 설사 트럼프가 졌다고 한들 그게 진짜 진 건가”라며 되물었다.

그는 괌과 오키나와에 있는 전략자산무기들을 예로 들며 실제 북한이 도발할 경우 미국이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김 전 하원의원은 이런 상황을 빗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안 되는 게임이다”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서는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하자 김 전 하원의원은 “김정은이 이제는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왔을 때는 비장한 각오를 한 거다”라며 “마지막 결심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 많다고 전하자 그는 “그러면 미국을 믿어라, 트럼프를 믿어라. 미국이 책임질 거다. 미국과 우리는 동맹이지 않나”라며 “믿을 수 없다면 대안이 있냐”고 되물었다.

그는 “주한민군 철수는 금방 안 한다. 언젠가는 하자는 얘기다. 평화가 왔는데 전쟁연습하면 신경을 건드리는 거 아닌가. 돈이 많이 들어가니 그런 말할 수 있지 않나”라며 “주한미군이 철수한다고 해서 우리를 돕지 않는 게 아니다. 우리는 동맹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전쟁이 나면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서로 갖고 있는 무기들을 다 알고 있는데 보여주기 위한 전쟁연습이 왜 필요한가”라고 전했다.
 
보수 세력 믿게 하는 일
“문재인 정부가 할 일”

 
김 전 하원의원은 일명 보수 세력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믿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두려워서 그렇다. 전쟁에 대한 공포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을 아직 믿지 못하는 거다”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북한에) 갖다 바치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사람들을 믿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조언했다.

김 전 하원의원은 남북평화분위기 속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북지원에 대해서도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정부 주도의 대북지원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것이 설사 도로, 철도, 항만 등의 사회간접시설일지라도 정부가 지원하는 자금은 국민들의 세금인 만큼 국민들의 허락이 없이는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대신 민간주도의 대북지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부는 일반 기업 등의 대북지원을 원활하게 조율하고 관리 감독하는 게 주 임무지 자신들이 나서서 대북지원을 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적극적인 비핵화 행보를 보여주기 전에 이미 많은 양보를 하고 있다. 이번 회담이 과연 평화로 가는 길이 될지는 이제 전적으로 북한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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