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둘러싼 불공정 평가 기준·가격담합

<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대한적십자사가 혈액백 공급계약 논란에 휩싸였다. 30년간 이어온 공개입찰, 반독점 공급 과정에서 이뤄진 평가의 불공정성을 근거로 적십자사가 혈액백 납품 업체와 ‘혈(血)맹’을 맺고 있다는 제보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적십자사 측은 해명자료를 내놨지만 이후 혈액백 규격 허가 주무부처인 식약처가 정반대 입장을 내놔 궁지에 몰리고 있는 모양새다.


- 적십자사 “포도당과 과당을 구분한 뒤 포도당만의 결과값 반영”
- “포도당과 과당을 합하는 게 맞다”…주장 뒤집은 식약처

 

적십자사는 헌혈자의 혈액을 보관, 운반의 용도로 사용되는 혈액백을 경쟁입찰 방식으로 구매하고 있다.

혈액백은 국민이 헌혈한 혈액을 담는 용기로 적혈구를 보관하는 ‘메인백’(주백), 혈소판과 혈장을 보관하는 ‘트렌스퍼백’(보조백)으로 구성된다. 내부에는 구연산과 포도당, 인산염 등 혈액보존액이 들어간다.

혈액백은 제조 목적에 따라 이중백(320㎖·400㎖)·삼중백(320㎖·400㎖)·사중백(400㎖) 등으로 분류된다. 전혈(Whole Blood)로 신선동결혈장과 농축적혈구만을 제조할 경우 이중백을 사용해 채혈하며 농축혈소판, 신선동결혈장, 농축적혈구 세 가지를 제조하고자 한다면 삼중백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접십자사는 입찰 참가 업체의 생산능력에 따라 업체가 희망하는 단가와 수량을 입찰하는 ‘희망 수량 단가제 계약’으로 진행한다.

지난 1월 30일 적십자가 낸 ‘혈액백 공동구매 단가 분류별 입찰’에 따르면 혈액백 구매 배정예산은 이중백 2종, 삼중백 2종, 사중백 1종 등 약 160억 원 규모였다. 구매 수량은 약 200만 개다.

이번 입찰에는 국내 의료품 제조업체 A사, B사와 독일계 의료기기·의약품 제조 다국적 기업 C업체가 참여했으며 지난 4월 10일 A사가 최종 낙찰자로 선정됐다. 최종 낙찰 규모는 100억 원대 규모로 전해졌다.

하지만 보건의료시민단체 건강세상네트워크(이하 ‘건세’)가 받은 제보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올해 종료된 입찰까지 모든 입찰에서 낙찰자로 선정된 A, B업체의 입찰 단가는 마지막 ‘1원’까지 똑같았다. A업체가 전체 공급량의 70%에 해당하는 혈액백을 적십자사에 납품한다면 B 사는 30%를 납품하는 형식이다.

강주성 건세 대표는 “이는 해당 업체들이 공정거래법 제19조 제1항 제8호에서 금지하는 입찰 또는 경매에 있어 낙찰자 또는 투찰가격을 정하는 사항을 결정하는 행위를 담합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행위”라며 “제보 자료이기 때문에 공식문서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녹집자사와 적십자의 관계를 봤을 때 충분히 담합이 예상돼 지난 8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민원을 제기했다”라고 밝혔다.

A업체 측 관계자는 가격 담합 의혹과 관련해 “우리 사와 B 업체가 사용하는 필터는 다르다. B사 측은 국내 필터로 알고 있는데 우리는 외제사 필터를 사용한다. 원가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단가가 같은 수 없다”라고 못 박았다.

B업체에도 연락을 취했지만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수상한 포도당 결과값,
수혈자 건강 문제 유발키도

 

그는 적십자사가 최종 선정한 A업체 혈액백이 부적격 제품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핵심 쟁점은 혈액백 내 혈액보존액 구성 성분인 ‘포도당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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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는 물론 세계 대부분 의료제품은 미국 약전(USP)에 따라 제조된다. USP를 기준으로 ‘적격’ 혈액백(CPDA-1)의 포도당 함량 적정 범위는 30.30~33.50g/ℓ다.

적십자사가 공고한 ‘혈액백 품질평가 안내문’에도 USP를 따르고 동일한 범위값이 명시돼 있다. 만약 이 기준치가 변하면 세균의 번식으로 인한 수혈자의 건강상 문제를 유발할 수 있어 엄격히 다뤄져야 한다.

A업체 혈액백 포도당 함량 수치는 31.07~31.75g/ℓ로 ‘적합’ 판정을, C업체는 28.58~28.97g/ℓ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시험 방법은 고속액체크로마토그래프(이하 ‘크로마토법’, HPLC)이며 판정 기준(30.30~33.50g/ℓ)은 USP를 따랐다.

하지만 적십자사가 이번 입찰 참여업체들에게 제출하도록 한 자체 시험결과보고서에는 두 업체 모두 포도당 함량 수치가 판정 기준에 부합했다.

강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포도당 결과 값은 A업체의 경우 31.823g/ℓ, C업체는 30.94g/ℓ였다. 두 업체 시험 방법은 환원당법(USP법)으로 동일했다. 환원당은 포도당을 비롯한 모든 단당류를 포함하는 당을 의미한다.

USP법으로 시험했을 경우 두 업체의 결과 값은 ‘적합’이었는데 적십자사의 크로마토법으로 했을 때 A업체는 ‘적합’, C업체는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다.
 

크로마토법 의해
결과 값 반영

 

이에 대해 적십자사 측은 HPLC 검사법은 공인된 방식이며 USP도 ‘비고’란에 기재했다고 반박했다. 적십자사 측은 포도당 수치에 대해 “포도당은 혈액백 증기멸균 과정에서 일부(10% 이하) 과당으로 변성되는데 탈락한 C업체의 식약처 허가 시의 자료는 포도당과 과당을 합산(당 정량법)한 것이었다”며 “우리 사는 입찰공고 내용과 같이 USP에 따라 더 엄격하게 포도당값(HPLC법)만을 기준으로 적부 판정을 했다. 이에 포도당과 과당을 구분한 뒤 포도당만의 결과값을 반영했다”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적십자사 측은 “표준업무지침에 의하면 포도당 함량시험은 HPLC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 사는 표준업무지침에 따라 품질평가를 한다고 공지하였을 뿐 USP검사법에 따라 품질평가를 한다고 공지한 바 없다”며 “다만 안내문 중 평가항목 및 기준을 나타내는 표 비고란에 ‘USP’라고 기재돼 있다. 이는 우리 사 혈장분획센터 표준업무치침 상 평가방법이 미국약전(USP)에 따라 작성됐음을 의미한다”라고 밝혔다.

USP 방법과 HPLC법은 모두 세계적으로 공인된 포도당 함량 시험법이다.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분석방식만 다를 뿐 결과치는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십자사가 진행한 HPLC의 검사결과는 USP 방식의 결과값과는 다르게 나왔다. 결과치를 해석하는 기준을 멋대로 정했기 때문이라는 게 강 대표의 지적이다.

그는 “‘비고’란에 USP라고 기재해놓고서는 실제 시험방법은 HPLC법을 사용했다. 설령 이렇게 했어도 뒷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 했다면 검사방법과 검출기준을 명확히 명시했어야 했다”라고 말해 한동안 적십자사의 ‘혈액백 계약’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혈액백 규격허가를 내는 식약처는 적십자사와 정반대 의견을 내놨다. 식약처는 “혈액백 중 포도당은 멸균 과정에서 일부가 과당으로 이행하지만 포도당과 과당 모두 에너지 공급원이다. 이에 과당은 불순물로 판단되지 않고 포도당 정량 시에는 포도당과 과당을 합한 결과값으로 하는 것이 맞다”며 “미국 약전 항응고액항의 포도당 정량법에서도 포도당과 과당을 모두 합한 환원당 총량으로 측정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과당을 빼고 포도당 수치로만 품질평가를 진행했다는 적십자사 주장에 정반대되는 입장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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