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베를린 장벽에 그라피티 그린 까닭은?

문장과 형형색색의 문양 그라피티가 새겨진 서울 청계천 소재의 베를린 장벽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한밤과 새벽 사이 서울 청계천에 전시됐던 베를린 장벽에 형형색색의 그림이 그려졌다. 그라피티 예술가 정태용 씨가 분무 페인트를 이용해 그라피티를 그린 뒤 자신의 SNS에 그것을 찍어 올리며 사건은 일파만파 퍼졌다. 이것이 지난 2005년 독일로부터 기증받은 ‘실제’ 베를린 장벽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야기됐다.
 

2005년 독일에서 기증받은 실제 ‘베를린 장벽’에 그라피티
정 씨 “11년 만의 남북회담 영감 메시지 전달 순수한 퍼포먼스”



서울 청계천에 놓인 베를린 장벽에 그라피티(Graffiti·벽이나 그 밖의 화면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가 그려져 사회적 반향을 불러왔다.

해당 그라피티를 그린 그라피티 예술가 정태용 씨는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입장문을 게재한 상태다.

정 씨는 이 글에서 “먼저 독일정부에서 선물을 받은 베를린 장벽을 훼손한 점에 대하여 깊은 반성을 하고 있다. 죄송하다”면서 “기존 상태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한) 나의 행위에 대해 잘못된 점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사과 의지를 표명했다.

이와 더불어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에 관해 “11년 만에 남북이 만나는 회담이 나에게 영감이 됐고 끝내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순수하게 그런 퍼포먼스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지난 12일 베를린 장벽을 분무 페인트로 훼손한 혐의(공용물건손상)를 갖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마친 상태다. 해당 조사는 오후 2시부터 7시 20분 정도까지 5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먼저 인지수사에 돌입한 경찰 측은 전날인 11일 오전 11시경 해당 시설물의 관리를 맡은 서울시 중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를 대상으로 대략 40분 간 참고인 조사를 실시했다.

지난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베를린 장벽 조각에 태극기 그려 넣는 등 대형 그라피티한 사람 조사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에는 게시일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15일까지 총 1만3410명이 서명했다.

해당 청원인은 “이 사람의 SNS에 베를린 장벽에 그라피티하는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다”며 “독일(이 기증한) 선물에 (서울시) 공무원의 허가 없이 크게 그라피티를 그려 세계 망신이 될 것 같다”고 우려를 표했다.

앞서 같은 날 정 씨가 베를린 장벽에 그라피티를 그린 뒤 자신의 SNS에 해당 사진을 게시한 것이 논란의 시초가 됐다. 해당 일을 벌인 건 이보다 2일 전인 6일이다.

정 씨는 그라피티로 뒤덮인 베를린 장벽 사진과 함께 “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현재와 앞으로 미래를 위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태극기 모서리의 4괘를 담아 표현했다”는 취지의 글을 함께 올렸다.

이 게시물이 도화선이 돼 베를린 장벽 그라피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자 정 씨는 자신의 SNS계정을 잠시동안 비공개 상태로 전환하기도 했다.

 



‘통일 염원’ ‘분단 아픔’
베를린 장벽 숨은 뜻
 

이 사건이 실제 베를린 장벽에 그려졌다는 것도 주요 쟁점이다. 과거 독일이 동·서독으로 나누어졌을 당시 베를린 장벽은 분단선 역할을 했다. 1989년 독일 통일 당시 해당 장벽을 허물면서 베를린 장벽은 ‘분단의 아픔’ ‘통일 염원’ 등의 상징성을 띠게 됐다.

이것의 일부를 지난 2005년 독일이 청계천 복원을 기념하고 한국의 통일을 기원하는 의미로 서울시에 기증한 것이다. 중구청 공원녹지과는 시로부터 2015년 2월 1일자로 베를린 장벽에 대한 관리를 이관받았다.

이 장벽의 가장 큰 특징은 ‘앞’과 ‘뒤’가 다르다는 것이다. 당시 서독 주민들은 통일을 동독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반면, 동독 주민들은 엄격한 통제 하에 있었다.

때문에 베를린 장벽에도 서독 측 벽면에는 메시지가 새겨져 있지만 동독 측 벽면은 비교적 깔끔하다. 이 차이를 통해 당대 사회적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는데 그라피티가 이를 모두 덮어버렸다는 것이 지적의 이유다.

베를린 장벽을 관리하고 있던 중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베를린 장벽은 (통일을 바라던) 서독 사람들과 (그들이) 쓴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의 낙서가 돼 있던 것 자체가 가치 있다 보고 원형 그대로 가져왔다”며 “그 위에 (정 씨가) 덧씌워 작업을 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지우려면 원래 있던 것들도 지워져 원형 그대로 복원은 어렵지 않나 싶다”고 전했다.

정 씨 역시 양 벽의 각각 다른 그라피티를 그렸다. 그는 동독 방향 쪽에는 검은색 분무 페인트로 ‘HIDEYES(숨은눈)’ ‘날 비추는 새로운 빛을 보았습니다. 내 눈을 반짝여줄 빛인지…’ ‘LOOK INSIDE(내면을 봐라)’라는 세 가지 문구를 적었다.

이와 달리 서독 방향의 장벽에는 파란색, 노란색 등 원색을 이용해 배경색을 칠하고 흰 색으로 무늬를 그려 넣었다. 또한 하단부에는 ‘SAVE OUR PLANET(우리의 지구를 구해주세요)’라는 문구를 썼다.

정 씨는 입장문에서 “동독 방향 쪽은 당시 삼팔선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3개의 문구가 합쳐진 시적인 표현”이며 “서독 방향 면의 자유로운 표현은 민주주의이지만 무언가에 가려진, 하지만 언젠가 자유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태극기의 건곤감리 4괘의 상징적인 심오한 뜻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예술이냐 범죄냐
시각 차이 있어
 

해당 그라피티를 ‘예술’로 볼 것인지, ‘범죄’로 여길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다. 먼저 유럽 등은 그라피티 문화가 발달한 나라에 속한다.

현재 미학(美學)계에 종사하며 후학을 양성하는 A교수는 “그라피티라는 게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예술의 한 형식, 거리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면서 “(그라피티는) 독일이나 유럽 등에서는 상당히 일반화 돼 있어 (그라피티를) 허용하는 공간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유럽이라 할지라도 기념물로 지정된 곳이거나 공공의 목적으로 설치해 놓은 조형물에 그라피티를 하는 경우엔 당연히 제재가 있다”고 전했다.

그라피티는 1960년대 말 무렵부터 반항 청소년과 흑인, 푸에르토리코인(人)이 주도해 형성된 문화다. 이 때문에 그라피티는 ‘거리의 예술(street art)’라 불리며 자유와 저항, 반(反)사회적·반체제적이라는 해석을 얻었다.

이와 관련해 A교수는 “미술이라는 행위는 시민들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공간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의식적으로 범법을 했을 것 같은데, 자신이 나타내고픈 뭔가가 있었겠지만 시민사회 안에서 인정받기는 어렵다”고 봤다.

뒤이어 A교수는 “예술은 어떤 경우에도 시민사회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행위가 일어나야 한다. 불법이면 예술로서의 평가를 받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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