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의 비애

현재 정돈이 되지 않은 궁중족발 자리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건물주를 상대로 둔기를 휘두른 A씨가 살인미수 및 특수상해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 사건 뒤에는 지난하게 끌어온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5년밖에 보호해주지 못하는 현 상가임대차보호법과 둥지 몰림의 그늘이 있었다.

‘뜨는’ 동네 되면 터 잡은 소상공인들 쫓겨나기 일쑤
경제 상황 고려 않는 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촉구


건물주와 임대차 갈등을 겪던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에 위치한 ‘본가궁중족발’ 사장 A씨가 지난 15일 강남경찰서에서 서울구치소로 이송됐다.

같은 날 국회 정론관에서는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이하 맘상모)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박주민 의원실 등의 공동 주최로 ‘제2의 궁중족발 사태 방지를 위한 상가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루 전인 14일 A씨의 부인인 윤경자 씨는 청와대 분수대에서 상가법 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시작했다.

A씨는 지난 7일 건물주인 B씨를 상대로 둔기를 휘둘러 살인미수 및 특수상해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B씨는 어깨, 손등 등에 부상을 입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선 4일에는 건물 소유주가 낸 부동산 인도단행가처분 신청을 강제 집행을 위해 궁중족발을 찾아 온 집행관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활동가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져 활동가 1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도 있었다.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시위 중인 윤경자 씨의 모습

임대인·임차인 갈등
2016년부터 시작돼
 

해당 사건이 더욱 주목받은 이유는 세입자였던 A씨가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둘렀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사건의 전모를 듣기 위해 윤 씨를 만났다.

윤 씨에 의하면 A씨가 여느 때와 같이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그 곳을 가던 중 “(관련 인물들을) 모두 구속 시키겠다”는 B씨의 협박과 폭언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행동이었다. A씨는 건물주가 소유한 다른 건물 앞에서 2달 반에서 3달 정도 1인 시위를 이어왔다.
이와 더불어 보도에서는 A씨가 B씨에게 망치를 휘두르는 자극적인 장면이 강조됐지만 A씨 역시 폭행당했음을 털어놨다.
윤 씨는 “보도 영상은 앞부분만 나온 것”이라며 “B씨가 손가락으로 (A씨의) 눈을 찔러 혈관이 파열됐다”고 말했다.
분쟁의 발단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씨가 처음부터 ‘궁중족발’이 있던 건물의 주인은 아니었다. 그는 2016년 1월에 해당 건물을 매입했다.
궁중족발을 운영하던 A씨와 윤 씨 부부는 그보다 앞선 2014년에 기존 건물주와 2년 단위의 재계약을 체결해 계약서를 작성했다. 당시 2016년 5월이 계약 만기일로 예정돼 있었다.
윤 씨에 따르면 B씨가 건물을 매입하면서 부부에게 “5월까지가 만기니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297만 원(보증금 10%포함)인 지금 금액 그대로 장사를 하려면 만기일까지만 하고 나가라”고 말했다.
또한 윤 씨는 “(B씨가 계약 기간 이후로도) 더 장사를 하고 싶으면 보증금 1억, 월세 1200만 원을 내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각각 3배, 4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를 거부한 부부를 상대로 B씨는 명도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이후 2017년 10월 10일부터 올해 6월 4일까지 강제집행이 12차례가량 진행됐다.
이와 같은 논란에 관해 B씨는 “계약기간이 끝나니 나가달라고 한 것”이라며 “월세를 올린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법의 사각지대
젠트리피케이션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사각지대도 현 상황을 야기하는 데 일조했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은 계약 후 5년까지만 보장한다. 

B씨가 명도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이유도 궁중족발이 2009년 개업해 2016년 당시 7년째를 맞아 보호 대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 선고된 1심 판결문에도 “상가임대차법 제10조 제2항에 의하면 임차인의 갱신요구권은 최초의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이 5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는데, 앞에서 인정한 바에 의하면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기간이 만료되는 2016년 5월 20일에는 피고의 이 사건 점포에 관한 전체 임대차기간이 7년이어서 피고는 위 법 조항에서 정한 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피고에게 위 법 조항에서 정한 갱신요구권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고 적혀 있다.

윤 씨는 “재판 진행 당시 ‘(B씨가 우리와) 계약서를 안 써줬고, 등기부등본 상에 명의 이전을 해놨지 않느냐. (B씨가) 매입한 건 사실이지만 우리와 계약서를 안 썼으니 기존의 건물주에게 인수인계·승계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대차기간 5년이 넘어 법적 대응력이 사라져 재판부가 “(현행법상) B씨가 말하는 게 맞고 그게 합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법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원인에는 악화된 경제 상황도 있다. 해당 법안이 2013년 개정될 당시에는 여러 가지 경제적 이윤을 따져봤을 때 5년 정도면 적절하다고 판단됐지만, 그 후 5년이 지난 현재 경제 상황이 더욱 안 좋아져 보호 기간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맘상모 쌔미 조직국장은 “2018년 1월에 법이 개정돼 임대료나 보증금을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됐다”면서도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는 5년이 지나게 되면 4배든, 40배를 올리든 임차상인은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현 경제 상황을 고려했을 때 10년 정도로 보장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둥지 몰림)’ 현상도 주목된다. 이것은 낙후됐던 지역이 번성해 여러 사람이 몰리며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이르는 용어다.

윤 씨는 “2014년도에 적금 해약하고 대출 받은 3500만 원으로 (가게) 전체 리모델링을 했다”며 “(이 곳에 정착할 생각으로) 재투자를 한 거다”고 호소했다. 

뒤이어 “(재투자 후) 2년 장사하고 나서 이렇게 됐다. 보증금 3000만 원 받고 나가라는데 어떻게 나가냐”고 덧붙였다.

이러다 보니 소위 말하는 ‘뜨는’ 동네가 되면 기존에 터를 잡고 있던 소상공인들은 떨기 일쑤다. 임대료를 올린다 해도 보호 기간인 5년이 넘을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렇게 자신의 둥지에서 쫓겨나게 된다. 터전이자 보금자리였고, 생존이 달려 있던 그 곳을.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