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외환거래(속칭 환치기)가 날로 증가하며, 그 수법 또한 다양해지고 있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최근 한 증권사 직원이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법인계좌를 이용해 거액을 중국에 불법송금해 온 사실이 서울 세관에 의해 적발되었는데, 연루된 사람들 가운데는 수출입업체 뿐만 아니라 해외에 자녀를 둔 학부모, 불법 체류자 등 다양한 계층이 포함되어 있어 가히 충격적이다.K씨는 국내 유수 증권사인 Y증권에 근무하던 지난 2001년 6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1년 동안 짭짤한 부수입을 얻게 되었다. 그가 선택한 부업은 다름 아닌 환치기.그는 Y증권 명의의 법인계좌를 포함해 총 6개의 계좌를 개설, 900여회 동안 중국으로 불법외환거래를 알선했다. 같은 기간 그의 계좌를 이용한 사람은 399명. 오고간 금액은 무려 126억원에 달했다.

K씨 계좌를 이용한 사람들 대부분은 수출입업체들이었지만, 일부는 중국에 유학자녀를 둔 학부모들도 있었다. 문제는 K씨가 자신의 회사인 Y증권 명의를 이용한 점. 관세청 외환조사과 김영균 과장은 “증권회사 법인계좌를 이용한 이번 불법외환거래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신종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김 과장에 따르면, 이러한 방식의 환치기는 통상적인 방법과는 달리 세관당국이 해당계좌 입·출금 내역을 조사하더라도 입·출금자가 개인이나 수출입업체로 표시되지 않고 정상적인 증권투자로 위장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사과정에서 쉽게 간과할 수도 있는 수법이다. K씨는 환치기를 통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 계좌 이용 고객들의 돈을 자신이 유치한 위탁자금으로 허위 보고해 실적을 올렸는가 하면 송금되는 자금 중 일정 금액을 원금보장형상품 등에 넣어두고 이자 수익을 챙기기도 했다.

그러다 K씨가 꼬리가 밟힌 것은 지난해 3월. 세관당국은 지난해 3월 모 무역회사에 대한 불법외환거래 혐의를 조사하던 중 이 업체와 관련된 환치기 계좌를 발견, 계좌 추적에 들어갔다. 이 계좌에 입금한 업체 중 증권회사 법인계좌가 발견되어 조사를 해 본 결과 Y증권 직원 K씨가 관리하는 계좌임을 확인, 덜미를 잡은 것이다.국내 수입업체 A인더스트리는 K씨의 계좌를 통해 52억원을 불법 송금했고, B실업과 C무역 등도 K씨의 계좌를 이용해 수출대금을 결제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들은 지난해 모두 고발됐다. 당국은 이밖에 K씨의 계좌를 이용한 타 업체들을 대상으로 해외재산도피, 자금세탁 혐의 여부를 계속 조사중이다. K씨는 현재 불구속 입건된 상태로 서울지검 외사과에서 수사중이다.

K씨가 근무했던 Y증권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K씨의 행위는 증권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예전 직원의 개인비리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했다.특히 세간에 제기되고 있는 증권사의 조직적 개입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법인계좌를 이용하다보니 자연스레 회사명의가 도용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현재 Y증권 고위층은 직원들에게 이번 사건에 대해 함구령을 내린 상태다. 한편 K씨는 환치기 알선업을 그만둔 뒤, 국내 최대 증권사인 S증권에 태연히 입사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K씨는 현재 S증권의 지방영업점에서 정식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S증권 관계자는 K씨의 행위에 대해 “당혹스럽다”고 밝히며, “우리도 피해자라 생각한다. 검찰에서 조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인사조치를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환치기 왜 증가하나?
관세 탈루가 주목적 … 환전·송금 수수료 절약 차원서도속칭 환치기 불법외환거래는 2개국에 상호신뢰를 가진 두 사람(혹은 조직)이 외국환은행을 통하지 않고 외화를 송금하는 방식을 말한다. 환치기는 국제적인 자금세탁의 대표적인 수법으로 통용되며, 외국환은행을 통해 지급할 수 없는 불법자금 등을 송금할 경우에 이용된다. 특히 밀수자금이나 수출입 대금의 이면결제 또는 불법행위를 한 자가 금융기관을 정당하게 이용하지 못할 경우, 수입가격을 저가로 조작하여 관세를 탈루하고 차액대금을 송금하는 경우에 널리 통용된다. 이밖에 금융기관의 환전·해외송금수수료를 절약하기 위해서도 빈번히 이용되는데, 이번 경우와 같이 해외유학송금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환치기는 관세 및 내국세 포탈, 자금 은닉, 송금수수료 절약 등의 이점 때문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무역업계에서는 관행적으로 환치기를 통한 거래가 조직적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한 수출업체 종사자는 “업계 관행상 수입업체와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도 환치기를 통해 대금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수입업자는 물품가격을 적게 신고함으로써 각종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이점 때문에, 노골적으로 (환치기를 통한 결제)요구 한다’고 말했다. 즉 거래선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환치기가 널리 애용(?)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상 ‘환치기’ 계좌주는 중국에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관세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에 적발된 사례만 보더라도 총 7,295명(또는 업체)이 1,000억원 가량을 중국 등지로 불법송금하였다.참고로 이번 K씨와 같이 환치기 계좌를 운영하는 계좌주는 그 혐의사실이 드러날 경우, 외국환거래법에 의거 3년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 환치기계좌를 이용한 입·출금자는 동 법령에 의거 2년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이하의 벌금형을 선고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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