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왔다. 이번 주총에서는 경영권, 불법 대선자금 제공 및 부실경영 등과 관련해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불법·부실 경영 의심을 받고 있는 대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현재 관심의 대상은 SK(주)와 현대엘리베이터, LG·삼성그룹 주총 등이다.바야흐로 정기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왔다. 정기주총은 기업이 주주들에게‘1년간의 기업 현황’을 공식적으로 보고하는 자리. 기업으로서는 가장 긴장되는 연중행사인 셈이다.지난해 실적이 좋은 기업들은 주총이 기다려지겠지만, 실적이 저조했던 기업들은 주총에서 주주들의 따가운 심판을 받아야 한다.특히 최근 굴지의 대기업들이 불법정치자금 제공, 부실경영 등의 논란에 휩싸이면서 이번 주총은 그 어느 때보다 파란이 예상되고 있다.우선, SK(주)주총이 최대 관심거리로 부각되고 있다.

SK(주)의 2대주주인 소버린 자산운용이 주총에서 이사진 교체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소버린측은 불법 정치자금과 분식회계, 회사자금 유용 등의 책임을 물어 최태원과 손길승 회장, 김창근 사장 등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버린측은 “SK(주) 경영진의 그릇된 행위로 인해 지난해 1조원의 손실을 입혔다”며 “이에 경영진은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며 이번 주총에서 표대결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현재 SK(주) 지분율은 최태원 회장 일가, SK계열사 지분, 우호적 국내외 기관투자가 등 총 35% 수준이다. 이에 반해 소버린은 보유주 14.99%와 헤르메스 자산운용 등 외국계 펀드 지분 등을 합쳐 20%대의 우호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에 따라 이대로 주총이 열릴 경우, SK측이 유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변수도 있다. 40%대에 이르는 국내외 투자자 및 소액주주들의 지분 향방이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주식시장에서는 상당수의 외국 투자자들이 소버린쪽에 우호적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버린측이 이들 외국인 지분 가운데 15% 정도만 우호지분으로 끌어들여도 SK그룹과 거의 비슷한 지분율을 갖게 된다. SK가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현재 SK와 소버린은 주총까지 남은 기간에 소액주주 등을 상대로 한 적극적인 홍보전과 표심잡기를 통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다는 전략이다. 소버린은 이와 관련 최근 “독립적 이사회를 구성, 새 이사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자”며 신문광고까지 동원하고 있다. 또 국내외 소액주주지원센터를 마련하는 등 지지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SK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SK는 최근 기업설명회에서 “경영진이 물러난다고 해서 경영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점차적으로 기업지배구조를 바꾸겠다”며 경영진 퇴진 요구에 맞서고 있다.

SK 측은 “경영권을 외국인에게 넘겨줄 수 없다”며 국내 투자자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SK와 소버린간 총성없는 대결의 결과는 오는 3월 12일 주주총회에서 판가름나게 된다.현대엘리베이터의 주총 결과도 관심의 대상이다. 이번 주총에서 조카며느리와 시숙사이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간에 치열한 경영권 다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현재 지분현황은 현 회장측 우호지분 30%, 정 명예회장측이 37%, 범 현대가 15%선으로 KCC가 유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소액주주들과 KCC측의 공시위반 건에 대해 증권선물위원회가 어떤 판정을 내릴지가 변수다. KCC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중 뮤추얼펀드와 사모펀드를 통해 매입한 지분 20.78%가 ‘5% 룰’(특정회사 지분취득이 5%를 넘으면 5일이내에 공시해야하는 규정)을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문제의 지분 20.78%가 의결권이 제한될 경우,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회장측이 승기를 잡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다. 범 현대가가 KCC 손을 들어준다면 양측간 지분율이 다시 비슷해져, 이번 주총에서 표대결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현대와 KCC는 양측 모두 소액주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 범 현대가에서 조만간 중재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LG그룹도 이번 주총에서 수난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LG그룹 주총에서는 불법 대선자금 조성경위 등에 대한 주주들의 집요한 추궁이 예상되고 있는 것. 여기에 LG카드에 대한 자금지원 문제를 놓고 (주)LG 등의 주총장에서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이와 함께 대주주들이 미공개정보를 이용, LG가드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는 LG 일부 계열사들도 곤욕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도 이번 주총이 반가울 리 만무하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불법대선자금 조성 경위 및 제공을 주도한 구조본 핵심인물들에 대해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로 재선임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에 따라 사상최대 순이익을 낸 삼성전자 역시 이학수 구조본 부회장의 이사 재선임 문제 등의 난관에 봉착해 있다.이밖에 현대차, 롯데, 금호, 한화, 동부 등 불법대선자금 조성에 연루된 기업들도 이번 주총에서 자금 조성경위 등에 대해 주주들의 거센 공세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정치권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현실론과 대주주의 개인자금으로 지원했다’는 주장을 펴며 적극 방어할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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