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부호들은 거대한 하나의 혼맥도에 포함돼 있다’.최근 상류층의 ‘혼맥’이 집중조명 받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100대 부호 가운데 무려 60여명이 단 하나의 혼맥도에 포함돼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일요서울>은 대주주 지분 정보제공업체인 에퀴터블이 지난 2002년 발표한 ‘한국의 100대 부호 혼맥도’를 토대로 한국 부호들의 거대한 혼맥도를 추적했다.최근 방송 등을 통해 한국의 상류층의 결혼실태가 공개되면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MBC TV 팀과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가 ‘52개 재벌가의 혼맥관계’를 조사, 방대한 ‘혼맥도’를 만들어낸 것(참조 508호).이에 일요서울에서는 지난호에 이어 이번 509호에서는 한국의 부호들은 어떤 혼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이와 관련, 지난 2002년 대주주 지분 정보업체인 <에퀴터블(www.equitables.co.kr)>에서는 ‘한국의 100대 부호 혼맥도’를 발표했었다. 지난 2002년도에 조사한 것이므로 2004년 현재의 100대 부호와 다를 수 있지만, 한국의 부호들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에퀴터블의 혼맥도’는 상당한 분석가치가 있다는 것이 공통된 시각이다.이 자료에 따르면 국내 100대 부호 가운데 60여명이 단 하나의 혼맥도 안에 포함돼 있다. 즉 100대 부호 가운데 60%이상이 다시 한국의 100대 부호와 사돈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이 혼맥도에는 50년간 한국 경제성장의 주역(?)이 되어온 수많은 재벌그룹 오너 일가와 한국의 3대 일간지 조선·중앙·동아일보의 일가, 그리고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포함한 권력층이 다수 망라돼 있다.

이는 혼맥에 의해 소위 한국의 상류사회가 형성돼 왔다는 사실이 이번 혼맥도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 100대 부호 리스트 가운데 20%를 차지하고 있는 LG그룹의 구씨·허씨 일가의 경우, 재계 ‘혼맥’의 중심에 서 있다. LG의 구씨·허씨 일가는 이병철 삼성그룹 일가를 비롯, 정주영 현대그룹 일가, 최종현 SK그룹 일가, 조중훈 한진그룹 가문 등 내로라 하는 국내 재벌들과 혼맥이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또 내로라하는 정·관계 인사들에까지 골고루 뻗어 있어, 한국 상류사회 혼맥의 핵으로 불린다. LG 그룹 고 구인회 창업주의 3남 자학씨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차녀 숙희씨와 결혼했으며, 자학씨의 차녀 명진씨는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아들 명호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지난 96년에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 일선씨와 구태회 LG창업고문의 손녀 은희씨가 결혼, LG와 현대도 사돈지간이 됐다.또 LG일가는 대림 이준용 가문과 대한펄프 최병민 가문, 한국타이어 조양래 가문, 대한전선 설원량 가문 등과도 혼맥으로 연결돼 있다. 현대그룹 정주영 가문의 혼맥도는 비교적 ‘연애결혼’을 한 케이스다. 그러나 역시 재벌들과의 혼맥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아들인 의선씨는 얼마전 정도원 강원산업 회장의 딸 지선씨와 혼사를 치렀고, 정 명예회장의 장남 몽필씨의 둘째딸 유희씨가 김석원 전쌍용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혼례를 올렸다. 현대 역시 한 다리 건너뛴 사돈 관계로는 삼성 이병철 일가는 물론 LG 구인회 일가, 롯데 신격호 일가 등과 모두 연결된다. 삼성도 역시 혼맥도를 따라가다 보면 여타 그룹 일가와 비슷하게 복잡하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상그룹과의 혼사.‘삼성의 황태자’이자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아들 재용씨는 98년 6월 임창욱 대상그룹명예회장의 장녀 세령씨와 결혼했다 이와 함께 삼성가는 김용대 동방그룹 회장,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조내벽 전 라이프그룹 회장, 홍진기 중앙일보 창업주, 구자학 아워홈 회장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SK의 경우, 최태원 회장이 노태우 전대통령의 딸인 소영씨와 결혼, 권력층과 든든한 유대관계를 유지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SK그룹은 비자금 등의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어,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SK는 노 전대통령의 장남 재헌씨가 신동방 신명수 회장의 장녀 정화씨와 결혼, 신동방과도 연결된다. 이와 같이 한국의 부호들은 복잡하게 얽힌 혼맥관계를 기반으로 보통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는 요새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그 요새의 성벽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튼튼해지고 있다는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에퀴터블측은 “2002년 당시 100대 부호 혼맥도에 나타나지 않은 사람들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배중호 국순당, 변대규 휴맥스 사장 등 최근 자수성가한 코스닥 기업의 대주주가 대부분”이라며 “이에 따라 이러한 재계의 방대한 혼맥 네트워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단순한 질시뿐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풍토가 과연 경쟁적일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 마련”이라고 밝혔다. 에퀴터블측은 “한국 사회에 재력에 의한 계급이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계급의 존재는 국민통합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더욱 큰 해악은 혼맥으로 뭉친 이들이 경제력을 독점하고 공정경쟁을 방해할 때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퀴터블은 또 “과거 한국 자본주의를 돌아보면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던 것이 엄연한 현실”이었다고 강조하고 “한국 100대 부호의 혼맥에는 수많은 화살표가 그려져 있지만, 이는 약 반세기를 거쳐서 나타난 혼인관계를 한꺼번에 표시했기 때문에 복잡해 보일 뿐이지 실제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수많은 화살표 가운데 경제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것이 상당수”라고 주장했다.가령 혼맥도의 핵심인 다섯 일가, 즉 구인회·이병철·정주영·조홍제·신격호 일가는 모두 직접적인 사돈이거나 또는 사돈의 사돈 관계다.

하지만 LG·삼성·현대·효성·롯데그룹에서 누가 봐도 서로 ‘돕고 사는’ 사돈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찾기 힘들다고 에퀴터블은 분석했다. 도리어 전자·유통·건설 등 주력 분야에서 라이벌 관계에 있으며, 삼성 이병철 회장이 사돈기업인 금성(현 LG)사의 텃밭이었던 가전산업에 전격 진출했듯이 혼맥 관계가 비즈니스에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 예가 수도 없이 많다는 것. 이에 대해 에퀴터블측은 “복잡하게 얽힌 재계의 혼맥이 단순히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여 한국 경제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 또한 쉽게 증명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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